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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꿈을 꿨습니다(긴 글)
게시물ID : sisa_4793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릴라콩
추천 : 0
조회수 : 29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1/06 15:46:26
제가 평소에 꿈을 실감나게 꾸고 잘 기억하는 편입니다. (잠을 잘 못자요 ㅜㅜ)
각색해서 소설처럼 써 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별 희한한 꿈이라고 고시원에서 혼자 얼마나 멘붕이었는지 ㅋㅋㅋㅋㅋ



  학교 축제에 모두 들떠 있었다. 축제를 알리는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들으러 우리는 운동장에 모였다. 
조회대에는 평소와는 달리 단상이 두개 나란히 놓여있었고 그 뒤로 황금빛 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학교 축제치고는 과하게 꾸몄다고 생각했다. 
교장선생님은 단상 옆에 마련된 조촐한 사회자 석에 자리잡고 말했다.
 
"오늘은 특별히 대통령께서 축제를 축하해 주러 오신답니다. 모쪼록 학생 여러분, 즐거운 축제 즐기기를 바랍니다."

  훈시는 간결했고 학생들은 환호했다. 조회대에 나란히 놓인 화려한 두개의 단상은 환호에 답하는 듯 더욱 위용을 뽐냈다. 
하지만 대통령은 일정상 늦는다는 말만 남기고  단상에는 오르지 않았다. 조회대에는 깃발만이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전교생은 강당에 모였다. 강당에는 교실처럼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었고 우리는 각자 자리를 잡았다. 각 반에서 앉던 자리 그대로였다.
사회자가 축제 일정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오,
이런.
전부 대통령의 독무대였다.

 첫번째 무대는 대통령의 춤 공연이었다. 대통령은 최신곡에 맞춰 화려한 몸놀림을 선보였다. 춤이 생각보다 절도있고 흥겨워 나도 모르게 집중했다. 
몇몇 신난 학생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으나 이내 선생들이 그들을 조용히 시켰다. 우리는 흥겨운 춤 공연을 그저 묵묵히 지켜보았다.
보다 못한 나는 옆 친구에게 말했다. 
"야, 완전 유신이야, 유신!" 
그러자 친구는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해보이며 뒤쪽을 가리켰다. 그 곳에는 넓적하고 커다란 머리를 한 사람 수 십명이 열심히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머리 위쪽으로 퍼렇고 희뿌연 글자들이 나타났다가 곧 사라졌다. 친구는 축제 안내문 한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실시간으로 코멘트가 달렸는데 첫 번째가 '야, 이게 뭐냐?'였고, 두번째가 '유신, 유신, 유신!'이었다. 보아하니 내가 두번째 코멘트의 주인공이었다. 뒤쪽의 이상한 사람들이 한 일일까? 아무튼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무대가 끝났을 즈음에는 안내문의 절반 정도가 코멘트로 채워졌다. 거의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선생들은 막간을 이용해 코멘트의 주인공들을 불러내었다. 십여 명의 학생들은 전교생의 앞에서 꾸중을 들었다. 
그때, 이미 무대에서 내려간 줄 알았던 대통령이 무대 끝에서 활기차게 뛰어나왔다. 참 세련되게도 대통령은 스타강사처럼 무선마이크를 들고있었다. 

"선생님, 이 좋은 날 학생들에게 너무 하시네요. 저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몇몇 있는 것 같아 즉석에서 그들과 대화의 장을 열려합니다. 학생들도 그 편이 좋겠지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자, 그럼 저에게 궁금하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는 학생들은 앞으로 나와주세요. 자자, 창피해하지말고 어서요."

가볍고 자유로운 분위기였으나 강당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이윽고 몇몇 학생들이 당당하게 나가자 내 옆자리에 있던 친구, 가만히 축제를 지켜보던 누군가도 일어섰다. 나는 '이것 참 민주적이고 훌륭한 사고방식이다. 근데 어버버대면 괜히 창피만 당할텐데.'하는 걱정이 앞섰다. 대통령은 자기는 문제 없다는 듯 여유만만이었다. 몇몇 학생들이 똑부러지게 대통령의 문제점을 지적했으나. 다수 학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대통령은 그들의 지적에 방어할 모든 대책을 가지고 있었고, 민주의 장은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나는 끝까지 단상에 설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 우리들의 조용한 축제는 저녁늦게까지 계속됐다.

 그렇게 1년, 2년...여러 해가 지났다.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돈을 아끼려 친구와 둘이 회기동에 방을 잡고 살았다. 물가는 비쌌고 그나마 자취생들 사이에서 저렴하기로 소문난 마트는 안암동에 있었다. 당연히 거기까지 장을 보러갔다. 이제는 마트 점원도 내 얼굴을 알아보았다. 폭탄세일 코너에서 먹을거리를 고르고 있는데

"저기, 혹시 김형?" 

나는 죄진 사람마냥 화들짝 놀라 뒤돌아 보았다. 군대 가기 전 알고 지내던 동생이었다.

"오, 뭐야. 너도 자취하냐?"

"예, 형 전 바로 요 앞에 살아요. 아, 이젠 뭐 해먹기도 귀찮아 죽겠어요~"

과연 그의 바구니에는 즉석식품이 가득했다.

"아참, 형. 그 왜, 안 형있잖아요. 그 형 감옥 간 얘기 들었어요? 뭐 이상한 소리 하고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그 형 그렇게 안 봤는데 좀 소름끼치기도 하고...아무튼 형은 어디 살아요?"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어, 나 왕십리 살아. 은근 가까워서 마트 오기 좋아. 야, 나 빨리 가봐야 돼서 먼저 갈게 담에 봐!"

나는 급하게 마트를 빠져나왔다. 계산을 마친 라면 한 묶음을 두고 나온 것도 몰랐다. 
그가 말한 안은 재작년 나와 같이 집회에 참가했던 친구였다. 동생에게 거짓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역으로 향했다. 좌우로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고, 오늘따라  노을 진 하늘은 왠지 황금빛으로 보였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밤에는 어찌나 중간중간 깨던지 꿈자리가 굉장히 뒤숭숭했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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