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일 수도 있고, 쓸데없이 긴 글일 수도 있습니다.
필승전략에 대한 글은 아닙니다. 다만 좀 더 오래 생존하며 싸워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쓴 글입니다.)
방송에 나온 레이저 장기의 룰 설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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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역할
1. 레이저 - 이동불가, 무적, 자신의 턴 종료시 레이저 발사. 1개
2. 스플리터 - 레이저를 직진투과 시키며 반사함(두개로 분리), 무적. 1개
3. 왕 - 어느 면이든 레이저를 맞으면 바로 제거되며 그 순간 게임 종료. 1개
4. 세모기사 - 거울로 레이저 반사, 거울이 없는 면에 레이저를 맞으면 제거됨. 5개
5. 네모기사 - 거울로 레이저 반사, 거울이 없는 면에 레이저를 맞으면 제거됨. 2개
자신의 순서에 할 수 있는 행동은 두 가지 중 하나.
1. 이동 - 말 하나를 상하좌우 대각선으로 한 칸 움직임. 단, 레이저는 이동시킬 수 없음.
2. 방향전환 - 모든 말의 방향 전환 가능. 단, 레이저는 게임 판의 바깥쪽으로는 방향 전환 할 수 없음.
말의 이동이 끝나면 자동으로 해당 플레이어의 레이저 발사. 먼저 왕이 제거된 플레이어는 최종 탈락자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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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설명에서 '단, 레이저는 이동시킬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네모기사와 왕 역시 이동이 가능한 말이라는 건데
어제 데스매치에선 두 사람 모두 네모기사와 왕은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네요. 방향전환조차 없었습니다.
위 그림은 임요환이 스플리터를 임윤선의 왕 쪽으로 옮기고 턴이 막 끝난 시점입니다. 이제 임윤선이 말을 움직일 차례였죠. 룰에
따르면 왕과 네모기사 모두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이 턴에서 1번 네모기사를 시계방향으로 돌려놓는다면 이후에 이어질 공세를
1의 좌우 이동과 3번 세모기사로 방어할 수 있고 여차하면 왕이 피신을 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네모기사와 왕의 이동을
고려 해 두지 않았는지 레이저를 돌리거나 애꿎은 스플리터를 움직이며 턴을 낭비했죠. 이후에도 의미 없는 수나 자충수를 두며
위기에 몰리게 됩니다. 임윤선의 탈락이 더 아쉬운 이유는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탈출구는 있었기 때문입니다.
임윤선의 턴입니다. 앞서 임요환의 스플리터가 자기 왕 앞으로 왔고 세모기사 두 기가 임윤선 레이저 주위에 위치한 상황입니다.
이 턴에서 임윤선은 2번 세모기사를 임요환의 레이저 쪽으로 이동시키는 수를 택했습니다. 만약 이 턴에서 1번 네모기사를 화살표
방향으로 옮겼다면 레이저의 방향이 고정된다는 약점은 있지만 일단 위기상황에 미리 대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턴에 임요환이
A를 스플리터 방향으로 돌린다 해도 이 턴에선 임윤선의 레이저가 발사되지 않기 때문에 1번 네모기사는 안전합니다. 이후 임윤선의
턴에 1을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방어가 가능하구요.
또는 1의 이동 없이 거울이 위로 오도록 시계방향으로 방향전환만 해준다면 A와 스플리터를 이용한 임요환의 전략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턴 직후엔 자신의 레이저만 발사되기 때문에 임요환이 A를 방향전환 시켜도 그 다음 턴에 임윤선의 레이저를 1 방향으로 돌리면
왕은 물론 1도 지킬 수있게 되는 거죠. 후에 임요환 스플리터의 움직임에 따라 왕이 위기에 처하거나 네모기사를 잃게 되는 경우가 생길수도
있지만 직접 해보니 극복 가능한 상황들이 나오더라구요.
(원본 화면에선 바로 직전에 있었던 임윤선의 행마(2)를 적용하지 않아서 제가 수정했습니다.)
임요환이 A 세모기사의 방향전환을 하자마자 이두희가 "오, 끝나겠다."라고 말합니다. 이어 임윤선은 레이저를 돌려 자신의 네모기사를
죽이게 되구요. 바로 "아, 저쪽은 답이 없네. 외통수였던 거 같아요, 상황이."라는 임요환의 내레이션이 나온 뒤 임윤선이 패배를 인정하고
자신의 레이저를 돌려 게임을 끝냅니다. 출연진들이 무의식중에 '왕과 네모기사는 이동이 불가능하다'라고 착각한 것으로 보이는 장면
입니다. 물론 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이 몇 가지 안 되는 건 사실입니다. 왕은 아예 이동불가 상태이고 1번 네모기사는 왼쪽으로
이동해봐야 자폭이거든요. 네모기사를 움직여서 자폭을 하느냐, 레이저를 움직여서 자폭하느냐의 차이였습니다. 하지만 두 수 모두
이후의 턴에서 왕의 활로를 열어줄 수 있는 수가 됩니다.
1번 네모기사 자폭의 경우 네모기사가 사라지면서 왕이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생겼습니다. 임요환 입장에선 일단 A와 B 그리고 스플리터를
이용해 왕을 고립 시켜두고 추가로 다른 말을 이동해서 점점 조이는 식으로 운영할 수 밖에 없구요. 문제는 근처에 있는 임윤선의 3번
세모기사입니다. 대각선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왕이 레이저 경로 위에 있지 않는 이상 단 두 턴 만에 레이저 경로를 차단하러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임요환이 왕을 고립시키더라도 현재 말들의 위치상 완전한 고립은 불가능하고 상하 이동만 반복하더라도 죽음은 피할 수
있는 상황이 됩니다. 같은 수를 반복적으로 두는 걸 제한하는 룰이 없는 이상 임윤선의 왕이 상하 이동을 계속 반복하고 이에 맞춰 임요환도
반복수만 두게 되면 영원히 게임이 끝나지 않게 되는거죠. 치사하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룰에 위배되지도 않고 생존도 보장해주는 수입니다.
스스로 '이런 생존은 비굴해서 싫다'라고 생각해서 반복수를 멈추지 않는 이상 임윤선은 반복수를 포기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반복수를
포기하는 순간 게임이 끝나게 되니 그걸 제외한다면 둘 중 하나가 되는 거죠.
영원한 반복수 배틀 또는 임요환의 포기.
그리고 임요환이 반복수를 포기하는 순간, 드디어 3의 이동이 시작 됩니다. 일단 레이저 쪽으로 한 칸 움직이기만 하면 이후에 임요환의 말이
어떻게 움직이든 3은 레이저를 차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3의 방향전환으로 임윤선의 역습이 시작 될 수도 있구요. 적어도
'뭘 하더라도 자기 말, 자기 왕을 죽일 수밖에 없는 외통수'는 아니었다는 거죠. 스스로 고립되기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닌 이상 언제든 탈출
가능한 수가 생깁니다.
레이저의 팀킬을 택한다면 왕의 생존뿐만 아니라 추후 반격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네모기사를 전부 희생해야 하는 선택이지만
어쨌든 왕은 살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은 왕이 죽어야 끝나는 게임이니 왕의 생존을 최우선시 해야 합니다. 그리고 희생한 만큼 얻는 것도 있습니다.
네모기사가 제거 된 상황에서 A와 스플리터를 그대로 두면 게임이 끝날 거라고 생각한 임요환은 두 말을 제외한 다른 말을 움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상태에서 A 또는 스플리터를 이동하거나 방향전환을 하게 되면 상대를 돕는 행위가 되니까요. 실제로 임요환은 자신의 레이저를
돌려서 턴을 넘겼습니다. 그렇게 다시 임윤선의 턴이 됐을 때 왕을 위나 아래쪽 대각선으로 이동 시키면 3번 네모기사가 제거되고 왕은 살아남게
됩니다. 이후엔 임요환이 어떤 말을 움직이든 4번 세모기사를 시계방향으로 돌려 추후 공격의 활로를 열 수 있게 되구요. 네모기사 두 기를 잃은
대신 왕의 활로와 새로운 공격 경로를 얻었습니다.(물론 여기까지 진행된다면 임요환이 다시 벙커링으로 레이저를 막아버리겠지만, 어쨌든 왕은
생존하고 게임은 이어집니다)
상대방의 레이저를 이용한 작전은 레이저 주도권이 상대방에게 있기 때문에 본인 턴에 경로를 설정해놔도 간단한 행마로 공격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임요환의 말들을 이용해 왕을 레이저 안에 고립시키는 전략을 써봤지만 끝을 내기 위해 추가적인 말을 움직이는 동안 임윤선의 말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방어가 가능했습니다. 그만큼 상대의 레이저를 이용한 전략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죠. 직접 해보니까 생각보다
왕을 죽이기 어려운 게임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턴 수의 제한이나 턴 당 시간제한이 없기 때문에 오래 끌고자 한다면 한없이 오래 끌 수도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되네요.
수많은 카메라와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하는 게임과 편하게 집에서 해법을 찾아가며 하는 게임은 양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건 알지만
왕이나 네모기사의 이동은 전혀 고려해보지 않고 너무 일찍 포기했다는 느낌이 들어 아쉬운 맘에 끄적여 봤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론 임요환 선수의
팬인지라.. [임]의 생존이 더 반갑긴 합니다만...ㅋㅋ
이 게임을 나중에 또 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럴 생각이 있다면 시간제한이나 턴 수 제한 등의 추가 룰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모티브가
된 KHET처럼 벙커링 방지 시스템이 필요해 보이네요.(방금 떠오른 생각이지만..임요환의 벙커링을 보기 위해 그 시스템을 삭제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ㅋㅋㅋ) 한가지 더, 게임 판의 색을 바꾸든지 해서 말과 게임 판의 구분이 좀 더 쉬워지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의도적으로
혼란을 주기 위한 게 아니라면 말이죠.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상황은 눈에 잘 들어오는데 가끔 위에서 본 시점의 화면이 나오면 헷갈리기도 하더라구요.
이상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