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시절이다. 그때 나는 무엇이든지 부딪혀 보자는 것을 모토로 움직였다. 면접시험을 볼 때, 상사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일단은 최대한 해보고 안되면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와 생각해 보면 그 답변은 상당히 위험 천만한 생각이었다. 수익성을 따지는 회사에서 무모한 시도를 한다는 것은 비록 신입사원이라도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다.
직장에서 어떤 일이 주어 졌을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할 수 없는지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신입사원과 대리시절에는 이 문제를 풀기 어려워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당시 일은 해보아야지 이게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알 수 있는 것이지 해 보지도 않고 미리 결론을 내리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을 감독하는 관리자입장에서는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주요관건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집착한다. 그래서 결과를 미리 예상하고 일을 진행한다. 즉, 그물을 미리 쳐놓고 물고기를 몰아가는 방식을 선호한 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알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마음고생도 많았다.
막상 과장이 되어보니 신입사원과 대리시절에 내가 했던 행동 등이 좋은 면도 있었지만 나쁜 점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일을 진행할 때도 답을 미리 정해놓고 그 쪽으로 몰아가는 요령도 터득했다. 그런데 복병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회사와 나의 비젼이다. 연봉계약이 종료되는 시점인 12월이 되면 이직을 하는 동료들이 있다. 송별회를 하면서 느끼는 점인데 그들이 고민했던 것은 과연 이 회사와 오랜 기간을 함께 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 더 많은 연봉을 향한 도전이 주된 이직사유이다. 회사에서도 유능한 사람을 붙잡아 두기 위하여 연봉을 올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회사에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을 잡아두기 위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헤드헌터로 부터 이직제의를 받으면 상당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만큼 내가 고용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을 시사해 주기 때문이다. 나도 대리시절에 더 좋은 조건의 스카웃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당시 주식시장은 매우 호황이었다. 그리고 펀드라는 금융상품의 인기가 매우 좋았기 때문에 펀드를 전담하여 분석 및 연구하는 사람의 몸값(?)은 상당히 괜찮았다. 당시 펀드평가사에서의 과장급들이 증권사나 은행으로의 이직이 많았다. 평가사입장에서는 어렵게 성장시킨 인재를 대형사에 뺏기는 입장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헤드헌팅이 비밀리에 이루어 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상사가 그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점이다.
비밀이 없는 곳이 고용시장이다. 경력직 일수록 과거직장에서의 성과와 평판조회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자신을 철저하게 포장하고 있는 사람에게 헤드헌터는 진실을 캐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점을 제 입으로 말하려는 사람이 있겠는가? 회사는 진정성 있는 사람을 원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을 발견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건 회사의 존립이유가 '이윤추구'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즉, 처음부터 도덕성과 윤리는 없다는 가정에서 시작한 것이다. 모든게 치밀하게 계산된 경제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곳이 직장이고 사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