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을 일으킨 백모씨(30)가 디씨인사이드 정치사회갤러리에 올린 글 목록. 백씨는 '진보성향'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동안 올린 글들은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찬양 및 전라도 혐오성 게시물이 많아 '일베' 사용자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사진=디씨인사이드 캡처
인터넷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에서 만난 인연이 만든 살인사건은 이념 차이가 아닌 '고소 협박'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살인을 저지른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정치적 성향이 달라 생긴 갈등으로 범행했다"고 진술했으나 그동안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전두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등 비슷한 정치색을 보여온 증거가 나왔다.
18일 부산 해운대경찰서에 따르면 백모씨(30·무직)는 지난 10일 밤 9시 10분쯤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 김모씨(30·여)의 집 앞에서 김씨를 흉기로 9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백씨는 경찰에서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김씨가 날 조롱하고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하려고 해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일부에서는 "인터넷 이념 갈등이 살인까지 불렀다"며 두 사람의 사건을 진보-보수 대립구도 또는 "광주 남자가 부산 여자를 죽였다"는 지역감정 구도로 몰고 갔다. 두 사람의 갈등을 1년여간 지켜본 디씨인사이드 정치사회갤러리 사용자들은 이에 "둘 다 전땅크(전두환 전 대통령을 지칭하는 은어) 지지자였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이날 머니투데이가 입수한 백씨와 김씨의 아이디는 각각 '자중하는ㅇㅇ'와 '비제의카르멘'(비제로 변경)이다. 2011년 디씨인사이드 정치사회갤러리(정사갤)에 처음 등장한 김씨는 얼굴, 주민등록증, 가슴 사진 등의 인증사진을 올리며 남성 사용자가 많던 정치사회갤러리에서 일약 유명인이 됐다.
김씨와 백씨 모두 '진보성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씨는 진보세력에 대한 비판 등을 올려 보수 색채가 지배하던 정사갤의 '여신'이 됐다. 백씨도 마찬가지. 전남 광주에 살면서도 '홍어' '민주화' 등 호남 비하발언을 하며 '탈라디언'(정체성을 부정하는 호남 사람을 뜻하는 은어)을 자칭했다.
백씨는 정치성향이 비슷한 김씨와 친목관계를 유지했으나 종종 김씨를 성적으로 비하하는 듯한 게시물과 댓글을 올렸다. 이에 김씨가 화를 내며 고소장을 작성한 사진을 올린 것이 수많은 게시판 사용자들에게 목격됐다.
백씨는 친필로 사과문을 써 게시판에 올리고 김씨가 사는 부산 해운대경찰서 앞에서도 '인증 사진'을 찍어 사과글을 올렸으나 김씨는 오히려 "우리 동네까지 와서 이러는 게 소름끼친다"며 고소 강행의사를 보였다.
김씨는 백씨 외에도 여성비하발언을 일삼거나 자신에게 모욕적인 글을 올린 정치사회갤러리 사용자들에 대해 수차례 고소 의사를 밝혔다. 많은 사용자들은 "비제(김씨)가 여신 취급해줬더니 너무 막나간다"며 힐난했다. 인터넷에서 맺어진 인연은 그렇게 정리되는 듯했으나 백씨의 앙심이 문제였다.
수차례 사과의사를 밝혔음에도 용서 받지 못한 백씨는 앙심을 품고 최근까지 김씨의 집주소, 얼굴사진 등을 구해와 게시판에 꾸준히 올렸다. 많은 게시판 사용자들은 "자중이(백씨)가 그렇게 비제(김씨)한테 집착하더니 결국 일을 냈다"며 이번 사건이 예견된 것임을 시사했다.
한편 백씨는 경찰에 붙잡힌 뒤 여전히 "나는 진보 성향의 네티즌"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