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여름이었나 그랬습니다. 시험기간이라 학원에서 10시? 좀 넘어서까지 공부하다고 친구들하고 돌아가는 길에서 헤어지기 아쉬워 수다떨다가 겨우 헤어졌습니다. 왜 그 때 애들 그렇잖아요 ㅋㅋ 막 서로 데려다 주다가 시간 다 가거나 아님 헤어지는 어귀에서 한시간 가까이 수다떨다가 겨우 헤어지거나 ㅋㅋ 암튼 그러고 혼자 집으로 가는 골목에 딱 들어섰습니다. 집으로 가려면 큰 길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초등학교 앞을 지나는 골목을 지나가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엄마는 항상 큰 길로 다니라고 하셨는데, 그 날은 엄마가 큰이모댁으로 오라고도 하셨고 (골목을 통해 집으로 가는 길에 이모댁이 있었음)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골목으로 간 거죠.
초등학교 앞 문구점들이 보통 9~10시쯤 문을 닫는데 역시 시간이 시간인지라 가게들도 다 닫고 생각보다 더 캄캄해서 무서웠습니다. 으스스하니 빨리 가야지 하고 걸음을 재촉하는데, 뭔가 쎄~한 느낌? 누가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딱 들어서 뭐지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초등학교 입구 앞에 어떤 남자가 모자를 쓰고 서서 주위를 둘러보더라구요. 불안한 마음도 들지만 '에이 설마' 하고는 제 갈 길을 갔습니다.
그 때 제가 연기에 좀 심취해있었어요. 긴장이 풀린 저는 당시 최근에 봤던 유리가면의 한장면이 떠올랐죠. 주인공이 다리에 깁스를 한 엑스트라 연기를 위해서 실제로 다리를 묶어뒀나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저도 막 그런 걸 하고 싶은 거에요. 그래서 길에서 그 야밤에 팔이 빠진 연기를 했어요ㅋㅋㅋㅋㅋㅋ 아 지금이니까 웃으면서 얘기하지 진짜 어휴 ㅋㅋㅋㅋㅋ 흑역사도 이런 흑역사가 ㅋㅋㅋㅋㅋ 아무튼 팔 빠진 연기를 하면서 가로등 불빛에 비친 제 그림자를 감상하면서 집으로 가고 있었어요. '음 이정도면 진짜 빠진 것 같은데?' 이러면서 그림자를 계속 보고 있는데, 제 발 밑으로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더라구요. 순간 팔이고 뭐고 긴장이 확 되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이렇게 터벅 터벅 터벅 터벅 하는 식으로 규칙적으로 걸으면 뒤에서는 터벅 텁.. 텁 터벅 하는 식으로 좀 불규칙적으로 걷고 뭔가 이상했어요. 일부러 제 보폭을 맞추는 느낌? 규칙적인 제 발소리랑 불규칙한 발소리가 골목에 울리는데 소름이 끼치더라구요. 발 밑으로는 계속 다른 사람의 머리 그림자가 보이고 ㅠㅠ
첨에 말씀드렸다시피 시험기간이었던 지라 제가 매고 있던 스포티백 안에는 책이 엄청 들어있었어요. 진짜 무게가 한 10키로는 족히 나갈 것 같은 그런 가방이었는데, 그 어깨에 걸쳐진 가방을 양손으로 꽉 잡고
'오기만 와바라 내가 이걸로 확 후리쳐야지'
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누가 저를 붙들더라구요 ㅠㅠ 진짜 팔까지 같이 붙들어서 휘두르려던 가방을 휘드르기는 커녕 옴짝달싹도 못하고 한 손으로는 제 입을 막아서 진짜 정신이 와... ㅠㅠ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아찔해요 ㅠㅠ 친구 중에 검도하면서 호신술을 배운 친구가 있었는데, 걔한테 배운 호신술이 진짜 하나도 기억 안나고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할 수 있는 건 진짜 소리지르는 거 하나밖에 없었어요 ㅠㅠ
그것도 입을 막고 있으니까 어떻게는 소리 질러야겠다 싶어서 그놈의 손가락을 진짜 인정사정없이 잘근잘근 씹었어요. 그렇게 손가락을 씹어대면서 소리를 진짜 아악!!!!!!!!!!!!!!!!!!!!!!!!!!!!!악!!!!!!!!!!!!!!!!!!!!!!!!!!!!!!!!!!!!!!!!!!!!!!!!!!!악!!!!!!!!!!!!!!!악!!!!!!!!!!!!!!!!!!!!!!!! 하고 그냥 진짜 소리 질렀거든요 그러니까 뒤에서 "조용히 해라" 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리는데 진짜 소름이 쫙 돋으면서 '와 씨 이거 진짜 꿈이 아니구나' 싶었죠 ㅠㅠ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는데, 눈 앞에 있던 빌라 4층 쯤에서 창문이 열리는거에요 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와 살았다 싶어서 더 소리를 질렀는데... 참... 랜턴으로 골목 아래를 좀 비춰보더니 그냥 문을 닫아버리더라구요 ㅠㅠ 진짜 순간 가슴이 철렁 하더라구요 ㅠㅠ 그 순간에 힘이 다 빠져서 소리도 안 질러지고 ㅠㅠ 손가락만 물어뜯고 있었어요 ㅠㅠ 그러는 동안에도 그 괴한을 저를 계속 골목 안쪽으로 끌고 가려고 하고 ㅠㅠ (그 길도 골목이지만 그 옆에 샛길이 있었거든요, 거기는 진짜 빛 하나도 없는 골목이었어요 ㅠ)
근데 제가 계속 버둥거리고 손가락도 물어뜯고 하니까 "야 ㅆㅂ 놔라 ㅆㅂ 놔라고" 이러는 거에요. 근데 또 저는 멍청하게 어? 사촌오빠 목소리랑 비슷한데? 사촌오빠가 장난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ㅡㅡ 어휴 ㅡㅡ 그게 말이 되냐고 ㅡㅡ 지금 제가 생각해도 너무 바보 같았던 듯 ㅠㅠ 너무 무서우니까 그 상황이 비현실인 걸로 착각하는 거죠 ㅠㅠ
그래서 엉겁결에 입을 놔버렸어요. 그랬더니 그 놈이 손을 몇번 털고는 그대로 돌아서 다시 초등학교 쪽으로 가더라구요. 뛰지도 않고 걸어서 엄청 유유히 ㅠㅠ 억울해 뒤짐 진짜 쫓아가려고 했는데 발이 안 떨어짐...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발이 안 떨어지다니 그게 가능하구나 하면서
그러고 나니까 바로(진짜 그놈 돌아서서 떠나니 바로 ㅡㅡ) 옆에 있던 대문이 철컹 열리더라구요 그 문으로 할머니 한 분께서 나오시더니 왜 남의 집 앞에서 소리를 지르냐고... 혼을 내시더라구요 ㅠㅠ 진짜 서러웠음 ㅠㅠ 그래서 제가 "저기 저기 가는 저 남자가 ㅠㅠ 저를 잡아가려고 했어요" 하면서 막 우는데, 할머니께서 진짜 골목 끝을 한번 쓱 보시고는 (그 때까지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음...ㅂㄷㅂㄷ) "빨리 집에 가라" 하시면서 문 닫고 도로 들어가시더라구요 ㅠㅠ 진짜 너무 서러웠음 ㅠㅠ 그자리에서 계속 울다가 이모집으로 향했어요 ㅠㅠ 이모집이 진짜 그 장소에서 한 20m?정도밖에 안 떨어져 있었는데 가는 길이 천릿길 같더라구요 ㅠㅠㅠㅠ
외가 친척들한테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골목에서 울다가 눈물 다 닦고 이모집에 들어갔어요.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친척들이 제가 가니까 왤케 늦었냐구 언능 와서 이거 먹어 하는데... 와 ㅠㅠ 진짜 엄마 얼굴보니까 눈물이 왁 쏟아지려는 거에요 ㅠㅠ 그거도 들키기 싫어서 엄마 뒤에 앉아서 등에다 얼굴 묻고 숨기려고 했는데 제가 막 들썩들썩하니까 친척들이 다 왜 그러냐고 엄마한테서 떼어내서 얼굴을 봤더니 애가 막 펑펑 울고 있으니까 사촌오빠들이랑 이모부랑 난리남 왜 그러냐고 막 ㅠㅠ 그래서 울면서 아까 있었던 일을 얘기했더니 오빠 한 명은 얘기 끝나기도 전에 그 골목으로 쫓아 나가고 다른 오빠랑 이모부랑은 제 얘기 듣고 인상착의 확인하고 같이 나갔어요 ㅠㅠ 저는 계속 울고 외할머니랑 이모랑 엄마는 괜찮다고 해주시는데 ㅠㅠ 그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ㅠㅠ 얘기하길 잘했다 싶고
조금 지나서 오빠들이랑 이모부께서 돌아오셨는데, 그 초등학교랑 근처 골목 다 돌아봤지만 사람 하나 없더라구 ㅠㅠ 결국 그놈은 못 잡았지만, 저는 아직도 두려움에 살아요 ㅠㅠ 뒤에서 발소리만 좀 나면 계속 확인하게 되고 가끔은 제 가방에 달린 고리가 가방에 부딪혀서 제 걸음 맞춰 절걱절걱 소리나도 흠칫흠칫 놀라곤 해요 ㅠㅠ 엄마는 제가 막 오바한다 과민반응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안심이 되니까요 ㅠㅠ
그날 저녁에는 집에 돌아가서 진짜 양치를 몇번이냐 했나 몰라요. 진짜 그 더러운 놈의 손을 입에 물었다고 생각하니 진짜 더러워서 잇몸에서 피가 나도 계속 닦았어요 ㅠㅠ
피해자한테는 이렇게 충격적인 일입니다. 저는 미수에 그쳤지만 (인신매매 납치든 성폭행이든) 실제 피해자분들은 얼마나 힘드실지 ㅠㅠ 다른 글 댓글에 보니까 두려움에 떠는 여성분한테 막 함부로 하셨다는 분도 계시던데 진짜 그러지 마세요. 평생 트라우마로 따라갑니다. 장난으로라도 그러지 마세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