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그 ‘저주여자’가 무서워, 야구방망이, BB탄 총 등을 챙겨왔다.
산 입구까지 도착했을 때,
“아직 그 여자가 있을지도 몰라.”라는 신의 말에
우리는 평소와는 다른 길로 산을 올랐다.
낮이라 산속도 밝고 매미의 울음소리도 들려와서,
지난밤의 일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저주여자’와 만났던 지점에 가까워질수록 긴장이 더해갔다.
우리는 말이 없어졌고, 발걸음도 무거웠다.
간밤의 일들이 다시금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 자리에 도착할 즈음에는
방망이를 쥔 손에 땀이 흥건해져 있었다.
나무가 보였다. 여자가 무언가를 박아대던 그 나무.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서, 우리는 할말을 잃었다.
나무에는 어린아이의 사진(네다섯 살 정도의 여자아이)에 못이 잔뜩 박혀있었다.
아니, 놀란 것은 그 때문이 아니다.
나무의 뿌리 앞에, 심하게 훼손된 해피의 시체가……
온 몸은 피투성이에, 혀를 축 늘어트린 채, 이마에는 대못 하나가 박혀있었다.
우린 순간 숨이 멎었고, 가까이 들여다 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본 적도 없는 벌레들과 파리가 꼬여있는 모습에,
우리는 죽음의 의미를 처음으로 실감했다.
난 해피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저주여자를 또 만나게 된다면 내가 해피처럼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당장에라도 집에 가고 싶었다.
그 때 쥰이
“다치……다치가 없어! 다치는 살았을지도 몰라!” 라고 외쳤다.
나도 다치만은 살았기를 바라며 우리는 비밀기지를 향해 달렸다.
비밀기지가 보이는 곳까지 달려왔을 때, 신이 갑자기 멈춰 섰다.
나와 쥰은 ‘저주여자?!’하는 생각에 얼른 몸을 숙였다.
조용히 신을 올려다보자, 신은
“…………뭐……뭐야…저게?” 하며 기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랑 쥰은 천천히 일어나 기지 쪽을 보았다. 뭔가 기지에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뭔가…………기지 지붕에 뭔가가 있다……
조금 더 가까이 가자, 그곳엔 어젯밤 잊어버리고 왔던 쥰의 준비물주머니가
(쥰은 과자를 항상 준비물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기지의 지붕 밑에
무수히 많은 못으로 박혀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들은 경악했다.
비밀기지도 저주여자에게 들켰구나……
신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방망이를 고쳐 잡고 기지의 문 쪽으로 다가갔다.
나와 쥰은 조금 뒤에서 BB탄 총을 겨누었다. 기지 안에 저주여자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신은 천천히 문에 손을 뻗다가, 문고리를 잡음과 동시에 벌컥 열어젖혔다.
“으앗-!!!”
무언가를 보고 놀란 신이,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고는
앉은 채로 슬금슬금 우리 쪽으로 물러났다.
나와 쥰은, 신이 뭘 보고 놀랐는지 알지 못한 채,
일단 총을 겨누고 기지 안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았다.
그곳엔……살해된 다치의 시체가 있었다……
“우와-앗!!!”
우리도 신과 같은 반응을 했다.
역시 다치도 해피처럼 이마에 대못이 박혀있었다.
순간 나는 생각했다. ‘그 여자……미쳤어……’
웬만해선 이런 짓 안 하잖아!
‘끔찍한 인간한테 걸렸구나’ 라고……지난 밤 이 산에 온 것을 사무치게 후회했다.
한동안 우리 셋은 다치의 시체를 보며 멍하니 서있었다.
그러던 중 신이, “야……!! 저거…………!!”
나와 쥰은 조용히 신이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기지 안……벽과 바닥이 뭔가 이상했다……무언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찬찬히 살펴보았다.
쥰저주한다죽어라쥰저주한다죽어라쥰저주한다죽어라쥰저주한다죽어라쥰저주한다죽어라
쥰저주한다죽어라쥰저주한다죽어라쥰저주한다죽어라쥰저주한다죽어라…………
쥰, 저주한다, 죽어라……
온 벽과 바닥에, 못으로 새겨져 있었다.
난 질려버린 나머지 그 자리에 굳었다.
아니, 그보다도 당황스러웠다. 어째서 이름을 들킨 거지??
그 순간 신이 외쳤다.
“준비물주머니야!! 거기 써있는 이름을 본 거야!!”
…!!!......
난 지붕 밑에 못박힌 준비물주머니를 보았다.
수 많은 못이 박혀있는 주머니에는 분명히 [5학년 3반 - ○○ 쥰] 하고 쓰여있었다.
쥰은 울음을 터트렸다,
나도 신도 울 것 같았다. 학년과 반, 이름이 저주여자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다 틀렸다. 나도 신도 금방 잡힐 것이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우리들 전부 해피랑 다치처럼, 이마에 못이 박혀 죽게 되겠지.
신이 말했다.
“경찰에 알리자! 방법이 없어! 이제 도망칠 수 없다고!”
난 혼란스러움에,
“경찰에 말했다간, 비밀기지 이야기도 해야 되는데,
어제 거짓말하고 여기 온 것도 다 들켜서 엄마아빠한테 혼날 거 아냐!”
라고 말했다. 냉정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또, 당시에는 무엇보다도 부모님한테 혼나는 것이 가장 무서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 동안에도 쥰은 계속 울고 있었고, 우린 어떤 할말도 찾지 못했다.
쥰은 말없이 준비물주머니를 뜯어내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우리는 대화가 없어진 채, 일단 산을 내려왔다. 쥰은 여전히 울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에도 저주여자가 어디선가 우릴 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흠칫흠칫 떨었다.
산을 내려오자 신이 말했다.
“이제 이 산에는 오지 말자. 당분간 근처에도 안 오면 저주여자도 우릴 잊어버릴 거야.”
나는,
“그래, 그렇게 하자. 그리고 이 일은 우리끼리 비밀로 하자.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걸 그 여자한테 들키면 죽을지도 몰라.”
신은 끄덕였지만, 쥰은 아직도 눈물을 훔쳐가며 울고 있었다.
그 날은 그렇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 셋이서 만나는 일은 없었다.
그로부터 2주 뒤 개학. 그런데 쥰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신은 있었다. 나와 신은
‘쥰 녀석 혹시……저주여자에게……’ 하는 걱정이 들었고,
우린 하교 길에 쥰의 집에 들렀다.
현관 벨을 누르자 밝은 목소리로 ‘네~’ 하며 쥰의 어머니가 나오셨다.
내가 “쥰은요?” 하고 묻자
아주머니께선 “일부러 병문안까지 와줘서 고맙다. 쥰 지금 방에 있으니까 들어와.”
라고 하셨다. 나와 신은 쥰의 방으로 갔다.
“쥰, 들어간다.” 하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쥰은 침대에 누워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생각 외로 멀쩡해 보이는 쥰을 보고 나와 신은 조금 마음이 놓였다.
신: 오늘 왜 안 나왔냐?
나: 걱정했잖아! 감기 걸린 거야?
쥰: …………
쥰은 말없이 만화책을 덮고는 침울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쥰의 어머니께서 과자와 음료수를 들고 들어오셔서
“한 열흘 전부터였나, 두드러기가 안 없어지는구나. 불량식품을 너무 먹어서 그런 건지.”
라고 말씀하시고는 웃으며 방을 나가셨다.
나랑 신은
“뭐-야 두드러기였어?! 사람 놀래키기는! 뭐 떨어진 거 주워먹었냐?”
하고 낄낄거렸지만, 쥰은 고개를 숙인 채로 웃지 않았다.
신이 “야……왜 그래?” 하고 묻자 쥰은 티셔츠를 벗었다.
몸에는 두드러기가 퍼져있었다.
내가 “두드러기잖아. 약 바르면 낫는 거 아냐?” 라고 말하자
쥰은 “이거……그 여자의 저주야” 라며 등을 보여주었다.
물론 등에도 두드러기가 많았다.
신이 “뭐가 저주야! 좀 잊어버려!” 라고 말하자 쥰은
“오른쪽 옆구리 좀 봐봐!” 라고 조금 목소리를 높였다.
오른쪽 옆구리……확실히 두드러기가 가장 심한 부위이긴 했지만
왜 그걸 저주하고 연결 짓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쥰이 “잘 봐봐! 이거 얼굴이잖아!” 라는 것이다.
다시 한번 살펴본 뒤 나랑 신은 둘 다 놀랐다.
분명 직경 5cm 정도로 사람얼굴……아니, 여자얼굴형상처럼 피부가 상해 부어있었다.
나랑 신이
“야, 네가 너무 과민한 거야. 물론 뭐……얼굴로 보자면 얼굴 같기는 한데……” 라고 하자
“딱 봐도 얼굴이잖아! 역시 나만 저주를 받은 거야!” 라고 말했다.
신과 나는 쥰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쥰의 분위기가 너무 심각했다.
항상 온화하고 착하던 쥰이…………좀 달라져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눈빛도 힘이 없다. 분명 심적으로 쇠약해진 것이겠지.
나와 신은 그곳에 있기가 뭐해져서 집에 가려고 일어섰다.
돌아오는 길에 난 신에게 “넌 어떻게 생각해? 정말로 저주는 아니겠지?” 라고 물었다.
신은 “세상에 저주 같은 게 어디 있냐?!” 라고 말했다.
왠지 그 말에, 나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3일이 지났다. 쥰은 여전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나도 신도, 쥰에게 전화하기가 그래서, 쥰의 상태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선생님이 ‘쥰은 풍진 때문에 당분간 학교에 못 나옵니다’ 라고 반에 전했고,
우린 그 말에 안심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학교에 기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학교 근처 길에서, 트렌치 코트에 샌들을 신은 웬 아줌마가
오가는 아이들 얼굴을 노려보듯이 쳐다보고 서있더라’ 는 소문이……
방과후, 그 소문을 들은 나는 심하게 동요했다.
그 여자가 내 얼굴만 확실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신에게 이야기했더니,
“괜찮아! 밤이라 잘 안보였을 거야. 그리고 봤었다 한들 잊어버렸겠지!” 라고 했다.
날 진정시키려고 그랬던 것인지 의외로 침착했다.
무엇보다 불안했던 건, 신하고 내가 집에 가는 길이 정반대라는 점이다.
쥰은 나하고 집이 가깝지만 지금 집에서 쉬고 있으니, 나는 혼자 가야 하는 것이다.
“당분간 집에 같이 가자! 무서워!” 라고 신에게 부탁했다.
신은 조금 답답하단 듯한 얼굴을 하더니 “쥰이 올 때까지만이야.” 라고 말했다.
그날은 트렌치코트여자(저주여자로 추정되는)와 마주치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여전히 트렌치코트여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신과 함께 하교한지 5일째가 되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쥰의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
선물로 학교급식에 디저트로 나온 오렌지젤리를 가져갔다.
쥰의 집에 도착해 벨을 눌렀다. 여느 때처럼 아주머니께서 밝게 맞아주시며
우리를 안내해주셨다.
쥰은 여전히 기운이 없었다.
두드러기는 거의 없어졌지만, 쥰은 “옆구리에 얼굴이 갈수록 커져가” 라며 걱정이었다.
하지만 나와 신이 보기에는 오히려 전보다 나아져 보였다.
정신적으로 시달리고 있는 것일 테지.
우린 트렌치코트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집을 나서려는데 쥰의 어머니께서 뒤따라오시더니
“쥰, 혹시 학교에서 누가 괴롭히는 거니?” 하며 걱정스런 얼굴로 물어보셨다.
물론 부정했지만, 진짜 이유를 말씀드릴 수가 없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로부터 3일 뒤, 그날은 우연히 나이토, 사사키, 나, 신 이렇게 넷이서 집에 갔다.
나이토는 덩치가 컸으며 사사키는 키가 작았다. 마치 만화의 콤비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저주여자’는 나와 신에게서 서서히 잊혀지려 하고 있었다.
소문의 트렌치코트여자도, 실재한다 한들 다른 사람일거라고 생각했다.
가는 길에, 역 앞에 있는 오락실에서 놀기로 하고
우리는 평소와 다른 길로 걷기 시작했다.
넷이서 즐겁게 이야기하며 걷던 중에
“엇?! 저거……트렌치코트여자 아냐?” 라고 사사키가 말하자, 나이토도
“으아!… 진짜다! 뭐냐…짜증나게……” 라고 중얼거렸다.
난 트렌치코트여자를 힐끔 보았다. 속으로 다른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여자는 한 손에는 마트의 봉투를 들고
아직 더워가 남아있는 아스팔트 길 위에 우뚝 서있었다.
얼굴을 숙이고 있어서 표정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신은 여자를 경계하는 듯, “눈, 마주치지 마!” 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조금씩 여자와의 거리가 좁혀져 간다. 긴장감이 엄습했다.
여자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얼굴을 숙이고 있었다.
거리가 5미터 정도 되었을 때, 갑자기 여자가 고개를 들어
우리들 네 명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우리의 가슴 쪽을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이름표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당황했다.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필사적이었다.
얼굴을 한번 본 것만으로, 그 날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나며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틀림없다. ‘저주여자’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스쳐 지나갔다.
언제 덮쳐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3편에 계속....
출처 : 네이버블로그 - 드세요닷컴과 무서운이야기 -
번역 : 솔개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