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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훈민정음` 중 정인지의 서문
게시물ID : humordata_7156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일런트힐
추천 : 5
조회수 : 138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1/01/20 05:11:51
  
   
세종 113권, 28년(1446 병인 / 명 정통(正統) 11년) 9월 29일(갑오) 4번째기사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 어제와 예조 판서 정인지의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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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예조 판서 정인지(鄭麟趾)의 서문에, 
“천지(天地) 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 자연의 글이 있게 되니, 옛날 사람이 소리로 인하여 글자를 만들어 만물(萬物)의 정(情)을 통하여서, 삼재(三才)4094) 의 도리를 기재하여 뒷세상에서 변경할 수 없게 한 까닭이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風土)가 구별되매 성기(聲氣)도 또한 따라 다르게 된다. 대개 외국(外國)의 말은 그 소리는 있어도 그 글자는 없으므로, 중국의 글자를 빌려서 그 일용(日用)에 통하게 하니, 이것이 둥근 장부가 네모진 구멍에 들어가 서로 어긋남과 같은데, 어찌 능히 통하여 막힘이 없겠는가. 요는 모두 각기 처지(處地)에 따라 편안하게 해야만 되고,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동방의 예악 문물(禮樂文物)이 중국에 견주되었으나 다만 방언(方言)과 이어(俚語)만이 같지 않으므로, 글을 배우는 사람은 그 지취(旨趣)의 이해하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사람은 그 곡절(曲折)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로워하였다. 옛날에 신라의 설총(薛聰)이 처음으로 이두(吏讀)를 만들어 관부(官府)와 민간에서 지금까지 이를 행하고 있지마는, 그러나 모두 글자를 빌려서 쓰기 때문에 혹은 간삽(艱澁)하고 혹은 질색(窒塞)하여, 다만 비루하여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사이에서도 그 만분의 일도 통할 수가 없었다.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殿下)께서 정음(正音) 28자(字)를 처음으로 만들어 예의(例義)를 간략하게 들어 보이고 명칭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하였다.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하고, 소리에 인하여 음(音)은 칠조(七調)4095) 에 합하여 삼극(三極)4096) 의 뜻과 이기(二氣)4097) 의 정묘함이 구비 포괄(包括)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로써 전환(轉換)하여 다함이 없이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로써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으며, 이로써 송사(訟事)를 청단(聽斷)하면 그 실정을 알아낼 수가 있게 된다. 자운(字韻)은 청탁(淸濁)을 능히 분별할 수가 있고, 악가(樂歌)는 율려(律呂)가 능히 화합할 수가 있으므로 사용하여 구비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비록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울음소리나 개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 수가 있게 되었다. 마침내 해석을 상세히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이해하라고 명하시니, 이에 신(臣)이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최항(崔恒), 부교리(副校理) 박팽년(朴彭年)과 신숙주(申叔舟), 수찬(修撰) 성삼문(成三問), 돈녕부 주부(敦寧府注簿) 강희안(姜希顔), 행 집현전 부수찬(行集賢殿副修撰) 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과 더불어 삼가 모든 해석과 범례(凡例)를 지어 그 경개(梗槪)를 서술하여, 이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연원(淵源)의 정밀한 뜻의 오묘(奧妙)한 것은 신(臣) 등이 능히 발휘할 수 없는 바이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殿下)께서는 하늘에서 낳으신 성인(聖人)으로써 제도와 시설(施設)이 백대(百代)의 제왕보다 뛰어나시어, 정음(正音)의 제작은 전대의 것을 본받은 바도 없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졌으니, 그 지극한 이치가 있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인간 행위의 사심(私心)으로 된 것이 아니다. 대체로 동방에 나라가 있은 지가 오래 되지 않은 것이 아니나, 사람이 아직 알지 못하는 도리를 깨달아 이것을 실지로 시행하여 성공시키는 큰 지혜는 대개 오늘날에 기다리고 있을 것인져.”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4책 702면 
【분류】 *어문학-어학(語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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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4094]삼재(三才) : 천(天)·지(地)·인(人). ☞ 


[註 4095]칠조(七調) : 칠음(七音). 곧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의 다섯 음(音)과 반치(半徵)·반상(半商)과의 일곱 음계(音階). ☞ 


[註 4096]삼극(三極) : 천(天)·지(地)·인(人). ☞ 


[註 4097]이기(二氣) : 음양(陰陽). ☞  


요약

자신의 말은 많아도 문자는 없는 나라가 많아 중국의 문자를 빌려쓰는데,
이건 둥근 장부가 네모난 구멍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맞을리가 없다.

그러다보니 글을 배우기가 어렵고 신라의 설총이 글을 만들었으나
이 역시 빌려쓴 것이다 보니 제대로 뜻이 통할리가 없었다.

우리 조선의 수준이 중국에 뒤떨어지지 않는데 유독 글만 없으니
이걸 보다 못한 우리 전하께서 28자의 글을 만드셨고
총명한 사람은 반나절,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이면 그 뜻을 익힐 수 있을 뿐더러
바람소리, 학 우는 소리, 닭, 개 우는 소리까지 모두 표현이 가능하다.

동방의 국가(한반도)의 역사가 짧지 않은데 필요성을 인지하시고 실제로 성공한
우리 전하는 진실로 하늘이 내린 성인이신 거 같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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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역사 게시판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근데 그럼 또 환빠들에게 점령당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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