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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오늘날의 행정구역
게시물ID : history_71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저윤
추천 : 12
조회수 : 1700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3/01/10 16:40:43

1914년 일제는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합니다. 이 개편은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을 거쳐 만들어진 행정구역을 대대적으로 바꾼 것이고 현재까지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연구자료에서 이것에 대해서 수없이 다루고 있어서 큰 차이가 없긴 하지만 제가 공부하고 정리한 자료를 토대로 이 개편의 과정과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왜 일제는 행정구역 개편이 필요했을까?


조선총독부(이하 총독부)는 1914년 3월 1일 부제 실시를 전후로 해서 전체적인 부·군·면폐합을 단행했습니다. 그래서 11개의 부가 새로 설치되고, 317개였던 군이 220개로 줄어들었습니다. 또한 4,322개였던 면이 2,521개로 통폐합되었습니다. 이러한 군면의 폐합을 위해 총독부가 내세운 명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전의 행정구역이 그 지역, 인구, 재정에 대한 심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조정이 필요

둘째, 시정의 편의와 경비의 절약이 필요


이러한 폐합의 기준으로 군은 면적 40방리(사방으로 1리(里)가 되는 넓이), 인구 남부지역은 10만 명, 북부지역은 5만 명, 1군 당 10개 면 정도로 했고, 면은 면적 4방리, 호수는 800호 정도로 했습니다.


즉,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서 식민지 통치의 효율을 기한 것입니다.


당시 어떻게 일을 진행했는지는 국가기록원에 있는 부군폐합, 면폐합관계서류 등의 문건철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집중해서 보았던 전라남도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수백년 동안 유지된 행정구역을 순식간에 바꾸는데는 많은 문제가 우려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병합한지도 몇 년 되지도 않았구요. 그래서 1913년 총독부는 모든 하위 기관을 통해서 이 행정구역 변경으로 발생하는 동요 또는 소란에 대한 정보를 취합했습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보면, 동복군과 능주군이 화순군으로 합병되는 지역에서는 양반, 유생 등의 지역 유지들이 선동하여 반대의 소리가 있지만, 큰 동요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이 지역의 헌병분대장이 보고 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목포부, 곡성군수, 곡성경찰서장, 순천헌변분대장 등 거의 모든 행정, 경찰, 군사 등의 기관에서 행정구역 변화에 대한 민심의 동요 상황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일합병 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각 지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큰 변화에 반응하는 민심을 총독부가 예의주시한 것입니다.


1913년 8월에 전라남도 장관은 정무총감에게 부군폐합에 관한 의견을 보고했습니다. 이 의견은 총독부가 제시한 기준에 맞추어 작성되었는데, 총 16개 항으로 군의 폐합을 결정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평군은 면적이 17방리, 호구 수 역시 6천 4백여호이기 때문에 독립하여 존치할 필요가 없고, 과거 나주군에 속한 연혁이 있기 때문에 나주군에 병합하여 시정의 편의를 도모할 필요가 있고,


창평군의 경우는 본래 창평군과 옥과군이 합쳐진 것이기에 창평군에 속한 12개 면은 담양군에, 옥과군에 속한 6개면은 곡성군에 편입해 그 구역을 넓히며,


동복군은 17방리 5천 6백여호에 불과한 작은 군이기 때문에 독립 존치가 필요치 않고, 능주군과 합병해 화순군을 두는 등으로 면폐합의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반면에 폐합표준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존치해야할 지역을 세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정리 후 면적 40방리 미만으로서 호구 수 1만 이상인 지역을 선정했는데, 광주, 곡성, 여수, 흥양, 장흥, 강진, 영암, 함평, 영광, 담양, 완도 11개 군이 여기에 해당되었습니다. 이 지역이 인구의 밀도가 높고, 군청의 사무 역시 빈발하며, 지형상 폐합이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둘째, 호구 수가 1만여 미만이지만 면적이 4만 방리가 넘는 지역으로 구례가 있는데, 이곳은 지역이 협소하지 않고, 산악지방이 면적의 10분의 4나 되며,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와 경계를 이르면서, 한 면은 섬진강에, 곡성군과 순천군의 경계에 접하기 때문에 지형상 폐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셋째, 면적 및 호수는 모두 표준에 미달이 되는 곳으로 광양과 진도가 있었습니다. 광양군은 섬진강 동쪽에서 경상남도 하동군과 경계를 이루며, 서쪽으로는 순천군에, 남쪽에는 바다, 북으로는 산악지방으로 구례군에 접하여 지형상 폐합할 수 없으며, 진도군은 전라남도의 서남해의 도시지방이기 때문에 폐합할 수 없다고 명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군의 행정구역 변경과 함께 면의 구역 역시 변경이 이루어졌습니다. 면폐합의 경우는 그 내용이 더욱 상세하고 분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여기에 일일이 소개하긴 어렵습니다. 일부만 소개하자면, 광주군의 경우 41개면에서 갈전면과 대치면은 담양군에 편입되고, 함평군에서 편입한 오산면을 포함 40개면을 15개면으로 변경했습니다. 또한 기존의 부동방면, 공수방면, 기례방면을 분할해서 시가지세령 시행지역 외에는 다른 면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리고 곡성군은 원래 8개면이었으나 창평군 일부와 구례군 일부가 포함되어, 11개면이 되었고, 담양군 역시 원래 13개면에 창평군 일부와 장성군 일부가 편입되어, 28개 면에서 13개면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전라남도 군 예하의 대부분의 면이 주변 면과 합병되면서 그 규모가 커지면서, 인구 및 면적이 증가하는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각 지방에서는 구역 변경에 관해 주민들은 수정 및 변경을 요청하기 위한 일종의 청원서를 전라남도에 제출했습니다.

원래 광주군에 속해 있었던 갈전면과 대치면에서는 담양군으로 변경되는 것에 대해 개선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그 이유로 과거부터 이 지역이 계속 광주군에 속해 있었고, 거리상 광주군청이 담양군청보다 가깝고, 교통상으로도 담양군청까지 가기에는 지형 및 지세가 험난하지만 광주군에 이르는 거리는 거의 평지이기 때문에 행정상의 장점이 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즉, 지리적 위치로 볼 때 담양군보다 광주군에 속하는 것이 지리, 행정, 사회, 경제적 면에서 낫기 때문에, 거주민들도 대부분 광주군에 속하길 희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는 상세한 지형도 또는 지적원도가 제작되는 시기였고 사실상 같은 시기에 진행되어 자료가 빈약한 관계로 총독부는 면적이나 인구 등의 통계를 활용한 기준을 따라서 지형 또는 지세를 고려하지 않고, 행정구역 개편을 실시했는데, 이것이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물론 주민들의 이러한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총독부의 구상대로 행정구역 개편은 그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행정구역은 벌써 약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형태가 큰 변경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일제가 식민지 통치의 효율을 위해 단기간에 인위적으로 만든 행정구역은 해방 이후에도 당시 사회적 혼란기를 거치면서 그대로 유지되었고, 대규모 개발사업이 없는 한 지금까지 거의 변경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문제제기와 변경 논의가 계속 나타나곤 있지만, 이 행정구역에 익숙해진 우리는 또다른 변화를 바라지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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