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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잡는 법
게시물ID : economy_53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단해요
추천 : 0
조회수 : 96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1/12 13:42:02
우리는 무엇인가가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그것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변하지 않는 것들도 매우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지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상의 분주함에 빠져서 알맹이가 없는 삶을 살기도 한다. 어떤 스님이 말했다. 무엇을 자꾸 가지려고 하지 말고 버리는 습관을 가져보라고 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고 말이다. 정말 그러하다. 무언가가 나에게 없어져야 그 소중함을 비로소 깨닫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원숭이를 사냥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원숭이가 좋아하는 바나나가 보이는 투명한 통을 만든다. 그리고 거기에 원숭이 주먹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구멍을 뚫는다. 그 통에 바나나를 담고 원숭이가 잘 다니는 길에 둔다. 시간이 지나면 바나나가 먹고 싶은 원숭이가 나타나 바나나가 담긴 통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마침내 손을 집어넣어 바나나를 움켜쥔다. 이것을 보고 사냥꾼은 원숭이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원숭이는 바나나를 꼭 붙잡고 있는 채로 팔을 빼려고 한다. 그러나 뚫어놓은 구멍이 너무 작아 바나나를 꺼낼 수가 없다. 원숭이는 사냥꾼이 자기를 잡을 때 까지도 바나나를 놓지 않고 팔을 빼려고 낑낑거리다 결국 생명을 잃게 된다.
 
우리도 원숭이처럼 현실의 달콤함에 빠져서 더 큰 재앙이 다가옴을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근로자들 중에는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일과를 마치면 고단한 육체노동으로 뭉친 근육을 풀기위해 술을 마신다. 그런데 이것이 반복되다보니 술에 중독된다. 그리고 마시는 술의 양이 늘어난다.
 
여성들 중에는 명품을 구입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할부로 카드를 긁는 일들이 다반사이다. 급여가 들어와도 카드결제대금으로 곧바로 빠져 나가버린다. 결국은 저축을 하지 못하고 빚더미에 올라 앉는다. 남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취직하면 할부로 자동차를 구입한다. 그리고 대출받아 신혼집을 마련한다. 각종 보험에 가입하여 보험료가 상당하다. 그냥 월급받아 생활비와 자녀교육비 그리고 이자 상환하는데 모두 탕진한다. 그렇다고 평생직장이 보장된 것도 아니다. 이게 우리의 모습이다.
 
물가는 계속 오른다. 많이 벌어도 씀씀이가 커지다 보니 노후를 위한 저축은 꿈도 꾸지 못한다. 화폐경제이론에 의하면 경제시스템은 부채(빚)에 의하여 생산을 하게 되는 구조로 되어있다. 자기자본이 충실한 기업은 드물다. 개인도 앞서 말한 바와 같다. 교육에 의한 학력인플레이션 현상도 심각한 수준이다. 박사학위를 받아도 취업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이다. 꿈은 애당초부터 없었을지 모른다. 그냥 배부르고 등 따뜻한 것이 희망사항이 되어 버렸다. 정치인들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한다. 그런데 국가도 국민 역시 빚에 허덕인다. 주요 선진국의 기준금리는 상당히 낮은 편이다. 그 이유는 경제시스템이 대출에 의하여 돌아가기 때문에 저금리기조를 유지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현상을 유지하려는 미봉책이다.
 
우리경제는 이미 돈이 돈을 버는 사회에 매우 깊숙이 진입하였다. 노동의 생산성보다 자본의 수익성이 더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다 보니 대출은 너무나 일상화되어 버렸다. 일자리의 생산성은 매우 낮다. 어디를 가도 사람이 넘쳐 난다. 창조경제의 시대라고 정치권은 떠들어 댄다. 그러나 이 말은 별로 의미가 없다. 창조라는 단어는 자유 경쟁 경제시스템에서 이미 논해졌던 것이다. 그러니 정치권은 더 이상 창조경제를 모토로 하는 바보같은 소리 그만했으면 좋겠다. 빈곤문제를 말하고 논하는 사람들은 넘쳐났다. 그러나 그것을 해결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다같이 함께 살자고 하는데 경제는 그런 것이 아니다. 경제에서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무엇을 희생해야 효율성을 달성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욕망을 달성한다는 것은 정치적 속임수일 뿐이다. 정치인들은 폴리스(polis)가 오이코스(oikos)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평균적 정의는 정치이념의 상징이었고 배분적 정의는 경제체제의 근간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과연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가 균형을 이루었던 사회가 단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정치권력은 전쟁을 정당화시켰고 경쟁은 탐욕을 미화했다. 인간은 전쟁과 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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