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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 사람과 어리석은 자, 그리고 노비
게시물ID : sisa_695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크런치
추천 : 10
조회수 : 44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09/05/28 12:28:02
노신 산문집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中에서 발췌했습니다..
 

노비는 툭하면 남에게 신세타령을 하곤 했다.
그러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기도 했지만, 그 외에는 달리 뾰족한 방도가 없기도 했다.
한번은 어진 사람을 만났었다.

 

"선생님!"
그는 울먹이며 말했다.  두 줄기 눈물이 볼을 탔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사는 꼴이 말이 아닙니다.
 밥은 하루한끼 먹을까 말까인데, 그것도 강냉이죽으로, 개 돼지도 거들떠 보지 않을 정도예요.
 게다가 손바닥만한 그릇으로 한 그릇뿐이죠......"

 

"참으로 불쌍하군."
어진 사람은 애처러운 듯이 말하였다.

 

"그렇지요!"
그는 마음이 밝아졌다.

 

"밤낮으로 쉴 새가 없어요. 아침에는 물을 길어야 하고, 저녁에는 밥을 지어야 하고,
 낮에는 심부름에 헐떡이고, 맑은 날에는 빨래하고 궂은 날에는 우산잡이가 되고, 
 겨울이면 탄불 피우랴 여름이면 부채 부쳐 주랴, 
 밤에는 밤참 만들어 주인님 마작하시는 방에 들여 보내랴......
 그런데도 땡전 한 닢은 고사하고 돌아오는 건 매타작뿐이니......"
 
"쯧쯧 저런......"
어진 사람은 한숨을 내쉬었다.
눈시울이 이내 붉어지며 이슬이 맻히는 듯 하였다.

 

"선생님. 이러니 대관절 어떻게 당해 낼 수 있겠어요?
 무슨 다른 방도가 없을까요? 전 어쩌면 좋지요?"
 
"머잖아 분명 좋게 될 것임세."

 

"정말요? 그렇게만 된다면야......
 어쨌든 이렇게 선생님께 제 괴로움을 하소연하고, 
 선생님이 저를 동정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니 마음이 한결 낫네요."
 
그러나 이삼 일이 지나자 다시금 마음이 언짢아져 또다시 신세타령을 들어줄 상대를 찾아 나섰다.

 

"선생님!"
그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제 집은 외양간만도 못하답니다.
 주인은 저를 사람취급도 안해요. 
 저보다 강아지가 몇 천 배 더 귀여움을 받지요."
 
"이런 멍청이!"
듣던 이가 소리를 질러 그는 깜짝 놀랐다. 그 사람은 어리석은 자였다.

 

"선생님. 제 집은 고작 개집 같은 오두막이예요. 
 춥고 빈대까지 우글거려, 자려고 하면 여기저기 물고 생난리지요.
 썩은 냄새로 코가 막힐 지경이구요. 창문 하나 없는 데다....."

 

"주인한테 창문 내 달라는 말도 못해?"

 

"안될 말씀입지요."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가 보자."

어리석은 자는 노비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집에 이르자마자 흙담을 뚫으려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지금 뭐 하시려는 겁니까?"


"자네한테 창문을 내주려고 그러는 게야."


"안돼요! 주인님께 혼납니다."


"괜찮아!"
그는 벽을 헐었다. 

 

"누구 없어요! 강도가 집을 부숴요! 빨리요, 집 다 부서져요."
그는 울부짖으며 펄쩍펄쩍 뛰었다.


노비들이 우르르 몰려와 어리석은 자를 쫓아냈다. 

소동을 알고서 주인이 천천히 나타났다. 

 

"강도가 집을 부수려 했습지요. 제가 소리를 질러, 저희들이 함께 몰아냈사옵니다."
 노비는 공손하게, 그러면서도 자랑스러워 하면서 아뢰었다.


"그래, 잘했다."
주인이 그를 칭찬했다. 

 

그날, 여러 사람들이 찾아와 그를 위로해 주었다. 
그중에는 어진 사람도 있었다.

 

"선생님, 이번에 제가 공을 세웠답니다.
 주인님께서 칭찬해 주셨지요. 지난번에 선생님께서 그러셨잖아요.
 머잖아 잘 될거라구요. 정말 선견지명이셨어요."
 꿈에 부푼 듯, 그는 유쾌하게 떠들었다.


 "암, 그렇고 말고"
 어진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덕택에 자신도 유쾌하다는 듯이,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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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나랑당 지지율이 여전히 1위다.  
지금 대한민국엔 어진 사람과 노비 투성이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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