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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능동적 허무주의에 대한 관점
게시물ID : phil_71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Kierkegaard
추천 : 2/8
조회수 : 2799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3/10/19 09:06:31
절망하는 자기가 능동적일 결우 설사 그것이 무엇을 기도하든, 아무리 크고 경탄할 만한 것을 깊이있게 
계획한다 하더라도 자기는 본래 언제나 실험적으로만 자기 자신에게 관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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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기는 파생적인 자기인 이상, 자기는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을 통해 자기 자신 이상인 것을 자기 자신에게 
줄 수는 결코 없다. 자기는 변함없는 자기 이므로, 자기를 이중화해 본다손 치더라도 자기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자기는 자기 자신이고자 바라는 절망적 노력을 하면서 오히려 상반되는
것을 향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므로, 실제로 그것은 자기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 자기의 행동범위인 모든 변증법속에는
확고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즉 영원히 자기가 있는 바의 것, 그것은 어떤 순간에도 확고하게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부정적인 형태는 매듭짓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과 동시에 '푸는 힘'으로도 작용하는 것인데, 이 자기는 언제
어느 때라도 마음먹은 대로 처음부터 시작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의 사상이 아무리 오래 추구된다고 하더라도, 그
행동 전체는 가설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이 자기는 점차적으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가설적
이라는 것이 차츰 명백해지는 것뿐이다. 

이 자기는 말하자면 절대적으로 자기 자신의 주인이다. 그리도 이것이야 말로 절망 외에 그 무엇도 아니다. 
좀 더 주의해서 살펴보면, 이 절대적인 지배자는 국토 없는 국왕임을 곧 알게 된다. 사실상 그는 아무것도 
통치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의 지위, 그의 지배는 어떠한 순간에도 반란이 합법적이라는 변증법에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자의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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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절망하는 자기는 끊임없이 다만 공중누각을 지을 뿐이고, 끊임없이 공중을 향해 헛되이 칼을 휘두르고 있을 뿐이다.
이런 모든 훌륭한 실험은 시각적으로는 참으로 근사하다. 그것들은 한 순간 동양의 시 처럼 사람을 매혹한다. 그와 같은 자체,
그와 같은 의연한 태도, 그와 같은 부동의 마음 등은 거의 지상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의
근저에는 무가 있는 것이다. 자기는 절망해서 스스로를 자기 자신으로 하고 자기 자신을 전개하며, 자기 자신이라는 만족을 만끽
하려 한다. 자기는 자기 자신의 이해정도를 나타내는 이같은 시적인 탁월한 구상을 자랑하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자기가 자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결국 영원한 수수께끼인 것이다. 자기가 전당의 구축을 완성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자기는 제멋대로 전체를 무로 해소할 수가 있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 쇠얀 키르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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