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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빙과 - 차 (이리스x호타로)
게시물ID : animation_1710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k201
추천 : 1
조회수 : 348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1/12 20:47:19
대설이 조금 지난 겨울, 나는 여느 때와 같이 부 활동을 위해 4층에 있는 고전부의 부실로 향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겨울이라는 계절의 분위기를 적당히 살려주고 있었다. 내 옆에 사토시가 있었다면 이 방정맞은 녀석은 분명히 이를 주제로 몇분이고 나불댈 테지만...글쎄, 나한텐 이런 낭만적인 것들
이 잘 와닿지는 않는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문득 입학했을 당시에 내가 사토시에게 말했던 잿빛을 떠올렸다. 잿빛, 그런건가. 난 아직까지도 나의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이 점은 꽤나 놀라운게  당장 주위만 둘러 보더라도 치탄다 에루, 그 휘날리는 벚꽃 같은 녀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향에 취하지 않고 내 자신만의 무채색이
물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좋아하기는 아직 이르다. 상대는 호기심의 화신이라 불리는 치탄다 에루다. 언제 생길지 모르는 변수에 대비해야만 한다.
 
"...."
 
나름의 다짐을 하며 계단을 올라가던 차, 나는 이 계절과 무서우리만큼 어울리는 사람과 마주쳤다.
 
"오랜만이야, 오레키군"
 
이리스 후유미, 고드름같이 날카로운 인상에 금방 쌓인 눈과 같은 새하얀 피부는 말 그대로 겨울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다만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진 게 코가 벌게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제는 그다지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식으로 마주치니 껄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먼저 인사를 걸어왔으니 어쩔 수 없이 대답을 내뱉고
이내 적당히 이 상황을 빠져나갈 변명거리를 생각해 내기 시작했다. 이리스가 내게 이유없이 말을 걸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미 한번 당한 이력이 있기
는 하지만 이리스의 수완이라면 다시 한번 휘둘리는 것도 불가능한 게 아니었다.
 
"아, 오레키군. 잠시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도와줄 수 있겠어?"
 
역시...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군. 이렇게 된다면 내가 할 대답 또한 정해진 수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리스 선배, 죄송하지만 부 활동 때문에 시간을 내어 드릴 수 없습니다"
 
좀 더 강한 어투로 말할 수도 있었지만 예의 상 최대한 격식 있게 대답했다. 그래도 통하지 않는다면 더욱 말의 강도를 높일 수 밖에.
 
"그렇게 어려운 부탁이 아니야. 아주 조금의 시간이면 돼"
 
예상 외로 이리스 쪽에서 한 수 접고 들어갔다. 물론 이 것도 이리스의 수완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다지도 나한테 의지하려 드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 부탁이라는 건 도대체 뭐죠?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직구로 나가는 수 밖에 없다. 이리스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쉽게 입을 열었다.
 
"내가 속해 있는 다도부에서 차 시음회를 하고 있어. 네가 거기에 꼭 참가해줬으면 해"
 
시음회라, 지난 번 일도 상영회를 미끼로 한 일이었는데 똑같은 수가 통할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다른 의도는 없어. 말 그대로 시음만 해줬으면 고맙겠어"
 
..아예 못을 박아버리는군. 별 대단한 이유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나를 끌어드리려고 하는 거지.
 
"일단 가드리긴 하겠습니다만.. 전 별로 차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제게 이런 기회를 주시는 거죠?"
 
"지식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저 기본적인 맛만 평가받으면 그만이니까 말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제가 아닌 다른 동급생이나 선배에게 부탁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까지 몰아세우니 이리스는 다시 한번 고민에 빠졌다. 표정에선 여태껏 유지하던 냉철함이 꺾여진 기색이 역력했다.
 
"..마침 시음회에 참가 할 사람들을 찾을려고 나왔던 참이야. 그리고 우연히 널 본 것 뿐이고. 오레키"
 
여제라 불리는 자의 말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았다. 평소 이리스의 일 추진력이라면 분명히 시음회에 참가 할 사람들을 미리 뽑아 놓았을 터, 그리고 결정적으로 금방 나왔던 사람의 코가 저렇게 벌게져 있을 리가 없다. 분명 어떠한 목적이 있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안내해 주시죠"
 
내심 이리스의 속내가 궁금하기도 해서 승낙해 버렸다. 만일 이리스가 날 또 이용하려 든다면 단칼에 거절 할 준비도 되어 있고 내가 고전부 부실에 늦게 가더라도 나를 질책 할 사람은 이바라 밖에 없어서 였다. 
 
"여기야"
 
지금은 무슨 용도로 쓰이는지 모르는 교실에 멈춰 선 이리스는 교실 문을 가리켰다. 다도부는 처음 들어보는 부 였지만 이 곳은 부 활동의 전당인 카미야마 고교였기 때문에 금방 수긍해 버렸다. 이리스가 문을 열고 들어가고 그 뒤를 내가 따라 들어갔다. 차 냄새는 안나더라도 어느 정도 습한 온기를 느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다도부의 부실 안은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저기 부원은.."
 
게다가 부원이 한명도 없었다. 쥬몬지의 경우에도 혼자 점술 연구회에 소속되어 있기는 했지만 이리스 같은 경우는 좀 의외였다. 그 능수능란한 수완으로 부원 한두명 정도는 두어도 이상할 게 없는데 말이다.
 
"차를 마실 때는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는 걸 싫어해서 부원은 받지 않고 있어"
 
그럴 거면 집에가서 마시면 될 텐데. 그리고 혼자서 운영하고 있는 거라면 굳이 시음회라는 거창한 명칭을 쓸 필요도 있을까. 
 
나는 이리스가 안내한 자리에 가서 앉은 다음 조금 기다렸다. 창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눈발이 운동장이며 화단이며 할 것 없이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바깥 풍경들을 점차 자신의 색깔로 덧칠해 나가고 있었다
 
그 사이, 이리스는 따뜻한 김을 내뿜는 찻주전자를 가져오고 연이어 찻잔을 가지고 왔다. 찻주전자와 찻잔은 이리스에게 어울리는 고풍스런 분위기가 났다.
 
쪼르륵
 
먼저 내 찻잔에 차가 담겨졌다. 차의 수위가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 화한 향기가 더욱 짙어져 갔다. 이리스가 자신의 찻잔에 차를 담자 부실 안은 어느새 화한 향기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내가 차에 대한 조예는 그다지 깊지는 않지만 이런 향기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차가 어째서 매력적인 기호식품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얼핏 들었던 방법대로 찻잔을 코에 가까이 가져가 그 향기를 맡아보았다. 
 
"그렇게까지 정중해 할 필요는 없어. 넌 그저 차를 마시러 온것 밖에 없으니까"
 
이리스는 피식 웃으며 내게 말했다. 나는 머쓱해 하며 차를 내려놓았다. 그냥 좀 내버려 두면 될 것을..
 
후루룩
 
후루룩
 
나와 이리스가 동시에 차를 들이켰다. 내가 차를 마시는 자세가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마주 보고 있는 이리스의 자세는 마치 신부 수업을 완벽하게 마친 부잣집 아가씨 같아 보였다.  뭐, 실제로도 부잣집 아가씨긴 하지만 말이지.
 
"..눈이 많이 오네"
 
차를 계속 마셔가던 도중에 이리스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러게요.."
 
대답을 안 할 수가 없어서 가장 무난한 대답을 했다.

이후 별 오가는 대화 없이 몇분 동안 부실 안은 이리스와 내가 차를 홀짝이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눈발은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끊임없이 내려 바닥을 도화지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가보겠습니다"
 
차를 4잔 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정도면 차릴 격식도 다 차렸고 이리스도 아까 한 말이 있기 때문에 쉽게 나를 붙잡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마웠어. 그리고 이거 받아"
 
이리스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게 한 주머니를 건넸다.
 
"이게 뭐죠?"
 
"방금 마셨던 차의 찻잎이야"
 
주머니를 만지작 거리니 바스락 거리는 느낌이 나는 게 찻잎이 맞는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찻잎 주머니를 받아들고 부실을 나섰다. 부실을 나오니 화한 향기와 온기는 사라지고 냉기만이 내 주위를 감돌았다.
 
상당히 의외였다. 이리스는 무슨 특별한 목적이 있는 줄 알았지만 정말로 차를 마시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아무리 머리를 헤집어 봐도 그럴싸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왜 라는 이유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나조차도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의 심리야 오죽하겠는가. 그냥 마음의
변덕 정도로 치부하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그 차, 향기가 좋던데 이름을 모르겠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이리스가 준 찻잎 주머니를 살펴보다가 나는 주머니 입구 부분에 적힌 짤막한 글자를 보았다.
 
M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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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주말을 불태웠지만 결과는 똥망입니다. 그래도 안올리자니 주말이 아까워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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