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딴지] 꼭 듣지 않아도 될 뮤지션들의 100곡 중, 100.
게시물ID : music_71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v^_^
추천 : 5
조회수 : 113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0/12/18 20:48:49
故김광석 씨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의 가수입니다. 이 분의 곡이 벌써 많이 올라와있지만 글 내용이 꽤 괜찮아서 퍼왔습니다. HTML 소스 적용 환경이 달라서 글이 잘립니다. 원본을 제대로 보려면 아래 주소를 누르세요. ^_^a *출처: 딴지일보 http://www.ddanzi.com/news/52845.html

2010.12.17.금요일

자흔

<꼭 듣지 않아도 될 뮤지션들의 100곡>

'자흔'님이 문화불패에 연재해온 시리즈이다.

근성의 100편 연작 완결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앞으로 더욱 가열한 활동을 종용하는 바이다.

- 편집부 주

그를 추억한다.


까까머리 중학생 3학년 시절이었다.

교복을 양복인양 입고 다니며 사방팔방 뛰어 다니던 시절.

우연히 놀러 간 친구 집에서 처음으로 그를 만났다.

라면 먹으며 씩씩거리고 있을 때, 마루를 가득 메우던 한 목소리

누님 이 가수는 누구이옵니까?

노래 좋으냐, 한번 들어볼래?

나는 쪼그리고 앉아 손톱을 물어뜯으며 앨범 커버를 보면서

1번곡을 들었다. 1번곡이 끝날 때쯤이면, 다시 1번곡을 들었다.

1번곡이 끝날 때쯤이면 다시 1번곡을, 그렇게 다시 1번곡을......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이 이상해졌다.

1번 좀 그만 들어라. 다른 곡도 좋...

누님 이 가수의 이름은 무엇이옵니까?


내 맘대로,

100. 김광석 -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동물원이라는 밴드속에서 처음 김광석을 만났다.

김광석 김광석 한 순간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김광석. 그렇게 줄곧 김광석만 들었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반 친구들 가지고 다니던 마미마이나 워크맨 속에는, 헤비매탈이나 락 음악들만 가득했고, 나 또한 그러했다.

불가항력,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

김광석과는 헤어졌다.

난 책을 접어놓으면 헤비메탈이나 들었다.



너에게

사춘기였다.

부모님의 잔소리는 끝이 없었고,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와 같이 있는 시간보다 혼자인 시간이 더 많았다. 그 어떤 누구도 내 인생에 손을 대면 안되는 시절이었다.

학교 갔다 오면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 쓰고 라디오만 들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이야기를 한다고 한들 이해 해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나는 라디오 주파수와 교신하며 살았다. 신경질적으로 라디오 주파수를 옮겨 다니다가, 우연히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내 노래는 널 부르고 있음을 나는 몰랐다.



그날들

대학 합격자 발표 날이었다. 내가 살아 온 19년 인생과 앞으로 살아 갈 인생 몇 십년이 한 방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았지만, 부모님은 그렇게 믿었다.

부모님은 재수를 원했지만, 난 군대를 원했다.

그 다음날 아침, 죄송하다는 편지 한 장도 없이 가출을 해 버렸다.

대학로라는 곳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 곳에 대한 환상,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서울은 딴 세상이었다. 나와 다른 억양의 사람들, 복잡한 도로, 추운 날씨, 모든 게 낯설었다.

나 또한 그 사람들에게 그랬다.

기어이 찾아 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은행잎은 없었고, 눈만 가득했다.

눈만 가득했던 건 아니었다. 벽마다 김광석 콘서트 포스터도 가득했다. 나는 내 예산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정은 쉽게 내려졌다. 표를 사고 객석에 앉았다. 그 곳은 따뜻했다. 얼었던 몸이 녹는 순간, 모든 게 서러웠다.

그가 무대에 서자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그는 객석을 한 바퀴 둘러보고, 의자를 고쳐 앉으며,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추우시죠. 오늘 날이 참 춥네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나에게 한 말은 아닐 것인데

나를 보면서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인데

그대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그 날이었다.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

직장인이 되었다.

돈을 벌어 방을 얻고 처음으로 혼자만의 공간을 가졌다.

책상을 들여 놓고, 티비를 새로 사고, 혼자서 밥을 지어 먹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퇴근을 하고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내 문 앞에 서서 열쇠를 넣는 소리가

어느 날부터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열쇠를 넣고 돌리면 찰칵 하는 소리 대신에 아무도 없어 라는 소리가 들렸다.

외로웠다.

아무리 친구들을 불러 모으고, 동료들을 불러 모아서 시끌벅적 방 안에 소리를 가득 채워놓아도 그 순간뿐이었다. 그들이 가고 나면 더 외로웠다.

유리처럼 굳어 잠겨있는 시간보다 진한 아픔의 날들이었다.



너무 깊이 생각 하지마

그러나 곧 회복이 되었다. 사회생활에 적응을 하고 외로움도 마찬가지였다.

혼자서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수두룩했었는데, 그런 일들에도 익숙해졌고,

슬프게도, 먹고 사는 일이 더 급해지니 외로움이니 쓸쓸함이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건 오히려 사치였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자기 바빴고 자고 일어나면 출근하기 바빴다.

내가 살아왔던 인생. 내가 살아가야 할 인생 따위,

감상적으로 살다가는 낙오자가 될 것이다. 오로지 앞만 보고 가는 거다.

지난 일에 대한 반성은커녕 앞날에 대한 생각은 하지도 못 했다.

당장 오늘 하루만 생각하니, 살 만 했다.

그냥 스쳐가는 의미 없는 나날들 이었다.


얼른 서른이 되고 싶었다. 서른 서른 서른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다. 그러나

스물아홉. 이맘때쯤. 나는 열병에 시달렸다.

그토록 바라던 서른이 눈앞이었는데, 내 몸은 서른을 거부했다. 내 몸은 알고 있었을까?

변하는 건 없다고, 그저 나이 한 살만 는다는 것을.

서른즈음에

심한 열병을 앓은 뒤 서른이 되었다.

그토록 바라던 서른.

그토록 바라고 또 바랐던 서른.

내 나이 서른이 되면 한순간에 모든 것이 변할 줄 알았다.

나는 유연해지고 중심에 있고 모든 걸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세상은 나를 알아주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아지고 그렇게 여태 살았던 인생의 모습과 확연히 다른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서른.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나에게 서른은 앞으로의 날들을 계획하는 시간이 아니라, 지나온 날들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그렇게 정리를 해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났다.

친구 누나 얼굴도 잊혀졌고, 사춘기도 지났고, 집에 가구도 늘었고, 서른도 넘었다.

진급도 했고, 몇 시간쯤은 시간을 낼 수 있을만큼 여유도 생겼다.

오늘 그를 다시 만난다.

나는 날마다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가고 있는데

그의 주름살은 늘어나지 않고 그대로이다.


그는 시대정신이었다. 시대를 같이 했고 시대를 노래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즐거워했고 용기를 얻었고 슬퍼했고 쓸쓸해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속수무책이었다. 그의 노래들 때문이었다.

슬픔들을 억누르지 못 해 터지는 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내 삶을 견디는 방법과 슬픔의 무게를 지탱하는 방법을 알았다.

그 모든 것을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여한 한다는 것을. 그의 노래들 때문이었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