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새벽의 짙은 어둠이 지나가고 군청색의 하늘이 밝아오면, 모든 사물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사지를 뒤틀고 연해질 하늘을 동경하며 기다린다.
그 찰나적 기다림에 과연 어떠한 미묘함이 이토록 나를 흔들어 놓는 것인가.
모든 사물이 조용히 멈춘듯, 영원히 시간이 멈춘듯, 아무런 미동도 없는 느린 새벽에 칼바람이 창을 통해 몸을 지나간다.
나는 마치 아주 오래전 처음 느꼈던 심장이 아픈 기쁨을 다시금 느낀다.
어디서부턴가 날아온 바람이 내게 묻는다.
-누구십니까.
나는 그 물음에 답하지 않는다. 구름은 차갑게 스쳐지나간다.
나는 묻는다.
-살아있습니까?
아주 오래된 피아노가 내는 새된 비명처럼 그녀의 입에서.
-아, 아, 아아, 아.
하고 신음이 나온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의자에 앉아 묻는다.
-살아계십니까?
그녀의 눈은 새빨갛게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한 줄기로 눈물이 흐른다.
그녀의 미동은 점차 사라진다.
-아, 아, 아아, 아...
나는 그녀에게 살짝 허무한 듯이 실소를 지으며 묻는다.
-지금, 살아있습니까?
어디선가 낙엽을 쓸어담는 소리가 들린다. 병원은 참 느리고 지루하다. 하지만 청소부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빠르고 부지런한 듯 싶다.
느린 생명이 살기 위해, 작은 생명이 살기 위해 더 빠르게 심장이 뛰듯, 그녀의 심장은 격렬히 뛴다. 그리고 이내 낙조처럼 느껴지는 일출하는 빛에 발광하여 그녀의 심장이 고동을 멈추기 시작한다.
이 모든게 하나의 이어진 선이라니. 이 모든 인생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니. 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아, 아아, 아!
나는 밝은 빛에 눈을 찡그린 채 그녀를 돌아보지 않고 묻는다.
-살아계십니까?
-네.
어디선가 환청이 들린 모양이다.
아, 당신은 살아계십니까?
아... 아아...
-네.
태양이 밝고 아침이 왔다.
그녀의 선은 일직선. 이제 더이상 미동하지 않는다. 저것이 내가 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나는 그녀에게 묻는다.
-정말로 살아계십니까?
그럴리 없는 그녀의 눈에서 남은 눈물이 흐른다
출처 - 소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