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참 많아서(아니 어쩌면 세상이 사람들에 비해 너무 좁아서) 우리는 참 다양한 일을 겪으며 살게 된다.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우리는 조금씩 약아지고 똘똘해지고(적어도 그렇다고 믿게 되고) 단단해지고, 그리고 겁이 많아진다.
어떤 예상치도 못한 일이 어떤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닥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
조심성은 딱 그만큼의 방어력과 소심함을 동반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공공연히 조조가 되어야 한다고, 유비로 살면 당할 뿐이라고 되뇐다.
'세상 모두를 배신하는 한이 있더라도 세상 누구에게도 배신당하지는 않겠다'며 여백사 일가를 몰살한 조조는 이제 더 이상 잔혹하고 비열한 책략가가 아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조조같은 처세술도 없다.
그래서 자꾸만 사람들은 속을 드러내고 발톱을 세운다.
뭐 하나라도 손해 보지 않는 것이 이 시대의 '호구'가 되지 않는 방법이다.
그것은 우리의 잘못은 아니었다, 애초에는.
실제로 우리가 살아남아야 하는 이 현실은 <지니어스 시즌2>와 다를 바 없는 왕따와 절도와 거짓맹세와 다수와 권력과 물질과 인맥이 지배하고 있는 곳이 맞다(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담당pd와 이상민의 의견이 들어있는 말이다. 그들은 지니어스 시즌 2가 사회를 반영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힘'을 획득, 혹은 이용한 사람들이 성공한(여기서의 성공은 세속적인 것만을 뜻한다) 사례가 힘을 휘두르지 않고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에 비해 월등히 많다는 것은 어떤 도표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권력자를 떠올려보자).
사람은 힘을 욕망한다.
힘을 가지지 못한 자는 남의 것을 착취하지 못하는 건 차치하고 내 것까지 빼앗길 수 있기 때문.
그리고 원래 힘을 가지고 있었든 힘을 길렀든 혹은 힘을 가진 자의 힘을 이용하든, 힘을 가진 자는 힘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힘이 없었을 때 착취당했기 때문이다.
당한 만큼 갚아주어야 하는 것은 모두의 욕망이다.
복수. 얼마나 달콤한 단어인가.
그래서 법이 생겼다.
힘이 있든 없든 모든 이들은 가능한 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기로 약속했다.
그렇지 않으면 가장 힘 센 자가 맨 위에 서서 모든 이의 힘을 빼앗게 되거나, 힘 센 몇 몇이 끊임없이 결투를 벌어야 하기 때문이며 둘 중에선 후자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
법은 사실 힘 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힘 있는 자들끼리의 무한 경쟁은 결국 제살 파먹기니까.
그리고 어차피 그들에게 유리하게 만들면 되니까.
여기서부터 그 집단의 수준이 달라진다.
법을 얼마나 공평하게 만들고 지켜내는지는 집단마다 다르다.
<지니어스 시즌1>과 <시즌2>의 질적인 차이는 바로 여기에서 온다.
시즌1의 출연진과 시즌2의 출연진은 물론 달랐으나, 시즌1과 시즌2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법의 수준차이였다.
시즌1에서는 첫 화부터 절도와 폭력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했으며, 게임은 초반 서너 회는 정치게임(연합으로만 가능한 게임), 후반부에는 대부분 전략게임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매 회 최종 탈락자를 가리는 데스매치는 대부분 전략게임이었다.
그래서 시즌1의 참가자들은 초반 서너 회 이후에는 굳이 연합이필요하지도 않았고, 연합에서 밀려나 데스매치에 가게 된 경우에도 연합 멤버 중 한 명을 골라 게임을 할 수 있었다(일대일, 머리로).
김구라 같은 안하무인에 정치적이고 게임실력은 없으며 개인감정을 게임에 고스란히 투사하는 참가자마저 게임 전체를 흔들 수 없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김구라가 시즌2 참가자보다 더 프로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러나 시즌2의 게임은 대부분 심지어 데스매치까지 정치게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말은 연합에서 밀려난 이들은 복수의 기회도 없이 게임에서 탈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연 연합은 갈수록 공고해진다.
또한 이들은 공공연히 절도를 하고, 수없는 사기를 쳤으며(시즌1에서 역시 매 회 참가자들은 배신을 저질렀으나, 그것은 ‘가넷’을 얻기 위해서라거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였지 시즌2와 같이 ‘원래 친해서, 혹은 우리는 연예인이라서’가 아니었다), 왕따를 주도했다.
그러나 진짜 책임은 바로 법을 설정하고 집행하도록 되어있는 제작진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시청자들은 예능을 원했고, 제목 그대로 지니어스를 보길 원했으나, 제작진은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고 했나? 처음부터?).
그래서 대다수의 힘을 가지지 못한 우리들은 암에 걸려버렸....... (이힛)
우리는 한없이 나약하다.
<아빠 어디가>에 나오는 아이들보다 <지니어스>에 나오는 어른들이 훨씬, 훨씬 나약하다.
우리는 서로를 믿지 못하고, 남이 가진 것을 축하하지 못하고, 내가 못 가진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작은 것에 행복하기 힘들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힘이 없으면 힘을 가진 이들에게 수없이 빼앗겨왔기 때문(혹은 힘없는 자가 힘 있는 자에게 빼앗기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개인은 참 나약하다.
이런 나약한 개개인이 적어도 힘을 가지지는 못할지언정 가진 내 것도 빼앗기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법이고, 이 법이 제대로 서 있을 때 우리는 다시 조금 용기를 내게 된다.
내가 가진 것을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세상에서 옆 사람이 빼앗기는 것에 분노하기는 참 힘들다.
내가 가진 것을 지켜주지는 못하면서 옆 사람과 사이좋게 살아가라고, 열심히 살아가라고, 네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하는 사회는 참 잔인하고 무책임하다.
그리고 ‘이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라고, 지금만큼의 힘을 가진 것도 다 힘 있는 몇 명의 희생 때문이라고, 문제는 힘 있는 자가 아니라 너희들끼리 싸워서 일어난 거라고’ 말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이건 현실과 지니어스 시즌2 어디에 들이대도 마찬가지다, 아 이 얼마나 훌륭한 프로그램인가).
법을 제대로 만들지도, 집행하지도 않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개개인의 책임을 크게 묻는다.
강간범에 대해 한없이 가벼운 형량을 내리는 사회는 미래의 강간범에게 야동을 금지하고, 피해자의 몸가짐에 대해 논한다.
소년범에게 관대한 사회는 가해자에게는 게임을 끊으라고 하고 왕따 당하는 아이들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비난한다.
정치범에게 관대한 사회는 정치인에게 한없이 ‘양심’만을 촉구하며 유권자들을 세뇌시킨다.
사회는 자꾸만 ‘개개인이 양심적으로 살면 사회가 아름다워질 수 있고, 우리의 노력과 희망으로 우리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자기들의 힘을 축소하고 우리에게 짐을 지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원래 세상은 다 그렇다고,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는 사회는 직무태만이다.
직무태만 사회에 ‘안녕한’ 구성원들이 줄어드는 것은, 집단최면의 힘을 빌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안녕하고 싶어서, ‘마음먹은 대로 행복해진다’고 말하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이 곳은 잠시 머물 뿐’이라는 종교에 심취하고, ‘내가 너희들을 이만큼 키웠다’는 그의 이름이 다카키인 것을 외면한다.
나약해서 그렇다. 아니, 살기 위해서 그런 거다.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리고 나약한 것은 개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기본적인 것을 지켜주지 않는 사회 탓이다.
그러나 참으로 억울하게도 잘못한 사회와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나약한 개개인이다.
사회는 그래서 개개인을 갈기갈기 찢는다.
동쪽과 서쪽으로, 남쪽과 북쪽으로, 여자와 남자로, 부자와 서민으로. 그래야 개개인의 힘이 줄어들고 그들이 서로를 미워하게 될 것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 같은 건 없다.
우리는 우리에게서 자꾸만 힘을 빼앗아 가는 것이 누구인지를 직시해야 하고, 그리고 분노해야한다.
사회는 우리의 정당한 분노를 무서워한다.
‘정치 그따위 것’ ‘예능 그따위 것’ 하고 비웃으며 ‘쿨해지자’고 우리를 유혹한다.
분노하는 것이 찌질해보인다고 한다.
분노하는 것이 결국 ‘니가 못살아서’가 아니냐고 되묻는다.
쿨한 건 겁쟁이라서 그렇다.
이도저도 관심 없는 쿨한 모습은 분노하는 게 찌질해 보일까봐 겁나서 그렇다.
분노했는데 보상이 없으면 내가 상처받을까봐 그런 거다.
그러나 상처받지 않으려고 쿨해지는 걸 선택하면 그 다음에는 늦을 거다.
다음번에는 분명 더 많은 힘을 빼앗기게 된다.
공동의 적이 누구인지 자꾸만 잊으면 힘은 쓸데없이 소진된다.
우리가 <지니어스 시즌2>에 분노하지 않고 외면한다면 이런 프로그램은 얼마든 양산될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수정이 일본 예능에서 전치 8주를 입었던 일도 그저 그런 일 중 하나가 될게 분명하다.
뭐, 그때쯤에는 나도 안녕하기 위해서 종교인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 참고로, 이 글은 지니어스2의 간증을 위해 작성된 글임을 밝혀드립니다;;;
반말해서 죄송합니다 ㅠㅠ 여기에 올리려고 쓰기 시작한 게 아니라 그냥 카스에 끄적거리려다가 길어지는 바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