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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3일
게시물ID : freeboard_3436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니아찌
추천 : 3
조회수 : 160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9/06/03 11:10:53
2009년 5월 23일은..
제 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였고, 잊혀질 수 없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그 날.. 제가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금년 5월중.. 단 하루 밖에 없었던 주말 길일..
많은 커플들이 결혼을 했죠.
아침 일찍.. 가족의 축하를 받으며 아내와 웨딩스튜디오로 향했고..
아내.. 당시까지는 여자친구와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던 중..
웅성웅성 거리는 스튜디오.. "자기야, 누구 중요한 사람이 돌아가셨나봐? 사람들이 뭐라 그래.." 하는 아내
그리고 뒤이어지는 아내의 말.. "자기야..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하셨데.."

당연히 저는 믿지 않았고.. 치.. 누가 그런 소리를 해.. 라고 애써 무시했지만..
곧이어 켜진 티비에서 나온 속보들..
놀라움 자체였습니다.

평소 정치적 성향이 비슷했던 우리.. 아니 저보다도 더 강했던 아내..
촛불집회에도 몇 차례 나갔던 아내.. 데이트로 봉하마을 가보자던 아내..
그래도 정신도 없고 중요한 결혼식이기에.. 서둘러 준비를 끝내고 예식장으로 향했습니다.
라디오 뉴스들... 침울한 차 안 분위기..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바로 신혼여행을 떠나던 중.. 석간신문이라도 볼 수 있을지 찾았지만,
비행기내에 비치된 신문들은 조간뿐.. 추가적인 소식을 접할 수는 없었습니다.
신혼여행지 인도네시아 발리..
거기서도 한국관련 방송을 보면서.. 어떡해..를 반복하는 아내..
참 서글펐습니다.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얼마나 현실에 대해 암울해하셨으면..
가장 행복해야할 신혼여행과.. 가장 답답한 우리나라의 현실이.. 교차하는 그 현실이.. 참 서글펐습니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양가 부모님들께 간단히 인사만 드리고.. 신혼집으로 바로 왔습니다.
뉴스를 틀어놓고 짐을 정리하면서.. 아내는 추모행사에 가자고 하더군요.
29일.. 저희가 수원에 살기에, 화장터가 가까왔고.. 거기를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뉴스를 보던 아내는, 덕수궁 대한문앞에서 분향도 하고, 노제에 참가하자고 해서 지하철을 탔습니다.
검은 옷을 입을까.. 했으나 더운 날씨도 있고 해서.. 흰 커플면티를 입었었죠.
작년에 샀던.. 미친소 커플티..ㅡㅡ;;
혹시 노제에서 미친소 커플티 입은 남녀를 보셨다면.. 저희들입니다..

경복궁을 먼저 향하려 하였으나, 시간이 좀 지체되어서 바로 시청광장을 향했습니다.
엄청난 인파들.. 그리고 광장쪽에 자리잡은 사람들.. 서로 생수를 나누며 노랑 풍선과 모자를 나누며..
햇볕이 강했기에.. 모자를 얻어서 아내에게 씌웠고.. 아내는 영구차가 오면 날리자며 풍선을 건넸습니다.
김제동씨가 진행했던 식전행사.. 전화기 DMB로 보던 경복궁에서의 추모행사...
예정보다 늦게 시작했던 노제.. 그리고 행진.. 행진 전엔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에 들러 분향도 했습니다.
영구차에라도 가까이 다가가려는 사람들과.. 그럼에도 질서를 지키고.. 지나간 뒤에 쓰레기를 줍고..
참.. 이게 진짜 우리나라 국민인데.. 이런 모습이 진짜인데..
끝내 울음을 터트리는 아내에게 물티슈를 건내면서.. 같이 우리나라의 현실과 안타까움에 슬퍼했습니다.

이어지는 서울역까지의 행진. 교통통제를 안해서 차와 사람들이 얽히는 위험한 상황..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시민들을 향해 경적을 울리는 경찰..
서울역 근처의 YTN건물 앞에서.. 힘내라를 외치는 시민들과.. 노란색 종이가루로 답해주는 어느 YTN 직원..

수원으로 돌아오면서.. 아내는 화장터에도 가보자고 했으나..
결혼식과 신혼여행에 이어진 추모제 참가까지.. 너무도 지쳐버린 아내에게 그만 쉬자고 했습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기에.. 뭐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아내가 좋아하는 치킨집에 갔습니다.
오랜만에 낮술을 먹었네요. 참.. 

며칠 전의 이야기이지만.. 평생 잊혀질 수 없는 기억입니다.
오열하는 아내와 시민들, 그리고 그 다음날 뉴스에서 본.. 우리가 분향했던 시민분향소가 처참하게 
철거된 모습을 보고.. 다시 흐느끼는 아내의 어깨를 감싸주며 생각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그래도 우리에게 남겨준 숙제가 있다고.
당신의 죽음은.. 세상을 피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 아니고..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라고..
뜨거운 화장터의 불꽃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육신과 함께.. 
안이하고 무심했던 우리 국민들의 이기적인 생각도.. 함께 타버렸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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