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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19주, 여러분, 응원 부탁드려요 (__)
게시물ID : gomin_9745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알수없다,
추천 : 13
조회수 : 1514회
댓글수 : 104개
등록시간 : 2014/01/17 16:20:14
 
 
 
 
 
 
 
  아마 임신을 안 해보신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임신을 하면 몸이 정말 자기 몸이 아니고 신생아처럼 잠 쏟아지고 몸 무거워지고 먹는 것도 많이 먹게 된다는 점은
  임산부라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모든 어머니들은 위대하다 생각했고,
  단지 낳기만 한다 해서 어머니나 아버지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지난 달 중순에야 하도 몸이 이상해 병원에 갔더니 임신 15주라 하더군요.
  참 자기 몸에 대해 관심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는지 헛웃음과 함께 걱정부터 되더라고요.
 
  28살 때 사고로 골반골절-치골결합과 뒷쪽의 천장관절 골절-로 7개월 넘게 입원했었는데
  퇴원 무렵 애 가지기도 힘들고 갖는다 하더라도 10개월 동안 누워 있어야 하고 제대로 낳기도 힘들다는 말을 들었더랬죠.
 
  다섯 살 때부터 결혼 안 한다, 결혼은 하더라도 애는 절대 안 낳는다,
  커서는 이미 나와 비슷한 유전자들이 수없이 많을 텐데 이 땅에 내 유전자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한 번도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죠.
 
  아이는 이미 15주이고 자꾸 대퇴신경이 당기면서 아프길래 왜 그런가 했더니 임신 때문이더라고요.
 
  무척이나 겁도 나고 내가 과연 엄마가 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도 하고
  임신 초기로 추정되는 시기에는 약도 먹고, 담배도 피우고, 커피, 탄산음료, 초콜렛, 술까지 아이에게 나쁘다는 것은 다 했기에 더 걱정이 됐습니다.
 
  노산인 데에다 초산이고 골반까지 문제가 많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 달여가 흐른 지난 주부터 심각하게 애 아빠와 고민했습니다.
  내가 너무 아파 움직이지도 못하고 겨우 일어나 화장실만 가기도 하고 그런 상황이 되더라고요.
  너무 아프니 내색하지 않더라도 내적 스트레스는 계속 쌓이고 아가에게도 안 좋을 수밖에 없고
  과연 내 몸이 견딜 수 있을까 싶어 그게 더 걱정이었는데 다리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그 아픔과 골반 뒷쪽 천장관절이 다시 부서지는 듯한 통증은 정말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어느 정도 아기가 크면 병원에 입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잘 키우려 했는데 내가 간과한 사실이 있더라고요.
  아가들은 진통제-타이레놀이나 게보린 같은 약을 두알 정도만 먹어도 사산이 되거나 뇌발달이 안 된다는데
  입원한다 하더라도 진통제는 맞을 수 없다는 사실을요[초기 때는 위험하지만 중기로 접어들면 타이레놀은 괜찮다고도 하는데...].
  더구나 입원 시 맞았던 진통제가 마약류 진통제라 더더욱 안 좋을 수밖에 없어 진퇴양난이었습니다.
 
  아가는 이미 손가락 발가락까지 꼼지락거리고 있고, 얼굴까지 봤는데 내 몸이 견디지를 못해 도저히 낳을 수가 없을 듯했습니다.
  사흘 동안 정말 집안 일도 하나 안 하고 화장실만 가고 너무 누워만 있어도 아프니 앉아 있다 누워 있다 하는 수밖에 없었더랬죠.
 
  하다 못해 동네 길냥이나 옆집 개가 죽어도 가슴 아프고 왠지 미안하고 안타까운데
  질기게 엄마가 그 나쁜 것들 섭취했어도 생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강하면 지금까지 살아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니 차마 어찌할 수도 없이 시간만 보내다 너무 늦어도 안 될 듯해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병원도 산부인과에서는 정형외과를, 정형외과에서는 신경외과를, 신경외과에서는 산부인과를 가라고 서로 미루기 바쁘고
  여성전문병원에 갔더니 말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자기네 병원은 수술 안 한다면서 방법이 없다는 말만 하다 상담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다시 한 번 자기네는 수술 안 한다는 말을 하더군요.
 
  서로 떠넘기기 바쁘고 저런 말까지 들으니 도저히 어찌 할 방법이 없더라고요.
  몸은 점점 아프고 스트레스는 쌓이고 그러다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수술을 하기로 하고 다음 날 병원 예약까지 했다가 그날 밤에서야 결심했네요.
 
  며칠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만 했더니 몸도 많이 좋아지고 차마 아이를 보낼 수가 없어서 낳기로 결심하고 애 아빠와 그젯밤에 정말 많이 울었어요.
 
  어제 원래 다니던 종합병원에 가서 상담을 해보니 데메롤이 차라리 다른 진통제보다 낫고, 그건 아이에게 영향이 없으니 정 못 견딜 때가 되면 그때 한 번씩 맞으라 하더라고요. 워낙 참는 일은 자신 있지만 내가 참는다 해서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아닐 테니 그게 가장 큰 걱정이었는데...
 
  혹시라도 조산하게 될 경우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수도 있어서 그것 역시 금전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에 망설였던 부분도 있는데
  애기 아빠와 베프, 동생 등 주변 사람들이 알아봐줘서 국가에서 지원도 되고 태아보험 특약을 넣으면 된다고 해서 정말 무릎 꿇고 누구에게라도 절하고 싶었어요.
 
  어제 병원을 다녀온 후부터 기분 좋게 가지고 아기에게 말도 많이 시키고 혼자 노래도 부르면서 되도록 좋은 생각만 하려 하고 있어요.
  아이가 클수록 자궁이 커지고, 자궁이 커지는 만큼 골반이 벌어지면서 점점 통증도 심해지겠지만 아이가 자신의 의지로 잉태된 게 아니라 해서 마음대로 어찌할 수는 없는 일이라 생각해요.
 
  이토록 강한 생의 의지를 가진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내가 기분 좋게 가지고 잘 버티는 일밖에 없는 듯해요.
  뱃속에서부터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아가이고, 지금도 열심히 자라고 있으니 나도 같이 힘을 내야죠.
  원하는 것, 해주고 싶은 것 다 해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이의 의지를 꺾는 엄마는 되지 말아야 하니까요.
 
  앞으로 어찌될지 솔직히 많이 두렵기도 하지만 힘내라고 응원해주시기를 부탁드려요.
  응원받는 그 마음 하나라도 소중히 간직해서 힘들고 아플 때마다 보고 기운차리고 정신차려서 잘 이겨낼게요.
 
  아가 아빠가 일을 마치고 오면 이것저것 많이 해주기도 하고 어디 나갈 수밖에 없는 일이 있으면 짧은 거리도 택시 타고 다니라 하고 신경도 많이 쓰고 해줘서 고맙고 마음도 좋으니 내가 더 잘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부디 아이가 스트레스로 인해 잘못되지만 않을 정도의 고통만 내게 오고, 아이에게는 아무런 스트레스가 없을 수 있도록 내가 훌륭하게, 자기 최면이라도 걸어 덜 아프고 기분도 마음도 생각도 잘 하고 잘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만이 내게 남아 있는 듯해요.
 
  이렇게 글을 남겨놓으면 나중에라도 힘들어서 혹시라도 원망스러운 생각이 들면 이 글을 읽으며 자기반성과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되겠죠.
  아직 먼 여정이 남아 있지만 되도록이면 조산하지 않고 만삭까지 아이를 잘 키우다 이 세상에 환하게 웃으며 나올 수 있도록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니 오히려 마음이 더 가뿐하고 몸도 오히려 좋아진 듯해서 더 좋네요.
 
 
  더불어 한 분이든 몇 분이든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 미리 드리고
  생을 살아가면서 해주신 응원보다 헤아릴 수 없이 커다란 응원과 힘을 받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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