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28일 오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이리 시에 있는 한 은행에
40대 남자가 짤막한 지팡이를 짚고 들어왔다.
이마 위의 머리가 빠져 없고 두꺼운 안경을 쓴 이 남자는
창구로 다가가서 직원에게 종이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은행 금고를 열 수 있는 직원을 불러 신속히
이 가방에 25만 달러를 채우시오.
허용된 시간은 단 15분이오."
은행 강도였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무기를 꺼내 보이지 않았고 별다른 위협적인 행위를 하지도 않았다.
그가 쪽지를 내밀며 창구 직원에게 한 행동은 입고
있던 티셔츠를 걷어 올려 보여준 것뿐이었다.
이 남자의 목 밑 옷 속에는 무언가 두툼한 것이 달려 있었다.
티셔츠를 걷어 올리자 나타난 것은 금속으로 된 작은 상자였다.
은행 직원은 지금 당장은 금고를 열 수 없다고 말하고,
수납대에 있던 현금을 모아 남자가 갖고 있던 가방에 8,702달러를 채워 돌려주었다.
남자는 가방을 받아들고, 창구 앞에 있던 막대 사탕을 쪽쪽 빨며 은행을 나갔다.
그는 자신의 낡은 지오 메트로 자동차에 올라 은행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그는 그다지 멀리 달아나지는 못했다.
연락을 받고 긴급 출동한 경찰이 남자를 발견한 것은
그가 은행을 떠난 지 20여 분 가량 지나서였다.
도주하는 차량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의아스럽게도 그는 교외의 한적한 도로에 차를 세우고 밖에 나와 서 있었다.
이리떼처럼 몰려든 경찰은 그의 손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우고 길에 주저앉혔다.
즉시 연행하지 못한 것은 그의 목에 달린 폭탄 때문이었다.
경찰은 이게 진짜 폭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남자가 폭탄이 곧 터질 것이라고 다급하게 말했기 때문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남자는 당시 46세로 '마마 미아 피자집'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던 브라이언 웰스였다.
그는 같은 가게에서 30년 가까이 배달원으로 근무해 온 성실한 종업원이었다.
과거 10년 동안 그가 업무 시간을 어긴 일은 단 한 번인데,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가 죽었을 때였다.
웰스는 경찰에게, 자신이 은행 강도가 아니라 인질이라고 말했다.
그가 현장에서 다급하게 설명한 사연은 다음과 같았다.
주문을 받고 피자 배달을 갔다가 흑인 세 명에게 인질이 되었다는 것,
그들이 총으로 위협하며 자신의 목에 폭탄을 부착했다는 것,
그 상태로 은행에 가서 돈을 가져오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
돈을 가져오고 지시에 따르면 폭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지시를 어길 경우 언제든지 목 밑의 폭탄이 터지게 된다는 것.
"이건 진짜에요! 곧 터지게 된단 말입니다!"
그는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경찰은 웰스를 길 위에 앉혀둔 채, 폭발물 처리반을 부르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911로 '폭탄으로 무장한 은행 강도' 신고가 들어온 지 30분이 지나서였다.
자신들은 거리를 둔 경찰차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웰스는
"사장님에게 연락했나요?"
하고 소리쳐 묻기도 했다.
근무 이탈을 한 것으로 오해할까봐 걱정한 것이었다.
이러는 동안
25분
이 지나갔다.
주저앉아 있던 웰스의 목 밑에 달린
금속 상자에서
갑자기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경보음은 조금씩 빨라졌다.
웰스는 무의식적으로 엉금엉금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그러나 폭탄은 그의 목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윽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폭탄이 터졌다.
폭탄은 진짜였던 것이다.
웰스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그의 가슴에는 주먹만한 구멍이 뚫리고 피가 솟구쳤다.
그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폭발물 처리반이 도착하기 3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경찰은 웰스의 차를 수색하여 증거물을 찾기 시작했다.
그가 은행 강도를 할 때 짚고 있었던
지팡이
가 나왔다.
이 지팡이는 정밀하게 개조된 샷건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차 안에서 발견된 범행 지시서였다.
손으로 공들여 쓴 이 지시서는
폭탄에 묶인 웰스가 스스로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떻게 지시를 따라야 하는지를
아주 세밀하게 명시하고 있었다.
마치 영화 <쏘우>의 게임
지시문 같은 이 지시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이 해야 할 일:
XXXX 거리에 있는 OOO 은행으로 갈 것.
은행 안내원이나 창구 직원에게 요구 조건이 적힌 쪽지를 조용히 건넬 것.
경보를 울리지 않도록 주의할 것.
돈이 담긴 가방을 들고 지시된 장소로 서둘러 와서 다음 지시서를 찾을 것.
각각의 장소에는 다음 장소를 알려 주는 지시서가 있으므로 이를 찾아야 함.
그 과정에서 당신은 열쇠 몇 개와 자물쇠 번호를 하나씩 구하게 되며,
이것들이 모두 있어야 목에 달린 폭탄을 제거할 수 있음.
가장 중요한 사항:
그 누구와도 접촉하거나 전화하지 말 것.
당신의 회사, 경찰, 혹은 그 누구에게라도 사실을 알리면 바로 죽게 됨.
우리가 경찰차나 경찰 헬리콥터를 목격하게 되면 당신을 죽일 것임.
당신의 목에 채워진 강력한 폭탄은 오로지 우리의 지시를 정확히 따를 때에만 제거될 수 있음.
스스로 폭탄을 제거하려는 노력은 실패할 것이며,
우리 지시를 따르기 위해 허용된 시간만 낭비하게 될 것임.
꾸물거리지 말 것.
폭탄은 55분 뒤에 폭발함.
은행에서 20분 이상 지체하지 말 것.
다음 지시 장소로 오는 데 25분 걸릴 것임.
따라서 여유 시간은 10분 정도밖에 없음.
이 시간은 다음 지시서를 찾는 데 써야 함.
첫 번째 열쇠를 찾으면 폭발 시간이 연장될 것임.
우리의 지시 사항을 잘 따른다면 열쇠를 하나씩 발견하게 되며,
돈이 우리에게 무사히 전달된 뒤 마지막 열쇠와 자물쇠 번호를 받을 수 있음. ... (하략)
지팡이 샷건에 대한 지시 부분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가 제공한 무기를 갖고 조용히 은행 안으로 들어갈 것. ...
협조하지 않거나 은행을 나가려는 사람이 있으면 무기를 사용할 것.
무기 사용 설명서는 방아쇠 근처에 달려 있음."
지시서의 내용을 읽어 보면 <쏘우>의 지시문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질에게 각 단계별로 시간 제한을 두고 'mission'을 수행하게 한 것이나,
"It is your choice to live or bring death"
같은 문구가 있다거나 하는 점이 그렇다.
게다가 이 첫 번째 지시서의 맨 끝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되어 있다:
"ACT NOW, THINK LATER OR YOU WILL DIE!" 무엇보다,
웰스의 목에 부착된 폭탄이 존 크레이머가 희생자들에게 덧씌운 기기묘묘한 장치와 흡사하지 않은가.
(<쏘우> 1편은 2004년에 개봉되었으므로 2003년에 벌어진 이 범죄와 직접 관련은 없다.)
경찰 조사 결과 이 폭탄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된
사제 폭탄인 것으로 밝혀졌다.
폭탄은 수갑과 같은 형태로 채워지는 강철 고리로 목에 걸리도록 되어 있고,
그 아래 금속 상자에 6인치짜리 파이프 폭탄 두 개를 삽입해 만들어졌다.
내부에는 두 개의 작은 주방용 아날로그 시계와 한 개의
디지털 시계로 이루어진 시한 장치가 복잡한 잠금 장치와 함께 장착되어 있었다.
전기선도 얽혀 있었는데,
이 전선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 오로지 해체하는 사람을 혼동시키기 위해 부착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누가 보더라도 상당한 공학 지식을 갖추고 공작 기계에 정통한 전문가가 공들여 제작한 것이 틀림없었다.
길어도 관심있으시다면 읽어주시길
[공범들]+추가했어요
주모자로 지목된 사람과 실제로 은행 강도를 수행한 사람이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건의 전모는 완전히 암스트롱 한 사람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진술에 따르면
그녀 자신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 방조자에 지나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 수사관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녀는 대체로 신뢰하기 어려운 유형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수사관들은 암스트롱과 함께 수감되어 있던 재소자 등
그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탐문 조사했다.
그 결과 네 명으로부터 암스트롱이 웰스 사건의 자세한 세부 사항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는 진술을 받았다.
그 중에는 로드스타인의 집에 시체로 냉동되어 있던 동거남 제임스 로든에 대한 것도 있었다.
로든은 암스트롱과 돈 문제로 다투다 우발적으로 총을 맞고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암스트롱이 재소자 동료들에게 떠벌인 데 따르면,
실은 그 역시 은행 강도의 공모자였으며,
강도 계획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암스트롱이 살해했다는 것이다.
또 피자 배달원 웰스의 목에 맞는 고리를 찾기 위해 웰스의
목 둘레를 잰 것은 암스트롱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증언들은 암스트롱의 주장과는 달리,
그녀가 웰스 사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방증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증언들은 모두 참고 증언이었을 뿐,
사건의 전모를 밝히거나 암스트롱을 이 사건으로 기소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사건은 다시 오리무중으로 들어가는 듯 했다.
피셔 교수에 따르면 로드스타인은 처음부터 경찰을 가지고 놀았다.
웰스에게 넘겨 준 범행 지시서를 통해 경찰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지시한 것이나 다름 없었고,
그렇게 열심히 추적한 끝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는 미궁에 빠지게 만들었다.
냉동된 시체를 신고한 것도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자신이
'아무 것도 숨길 게 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으며,
자기과시형 떠벌이 공범자 암스트롱을 교도소에 처넣음으로써
웰스 사건이 쉽게 누설되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암스트롱 재판의 최후 신문에서 검찰은
이 사건을
"치밀하게 모의하고 공들여 수행했으나
결국 무참하게 실패하고 만 범죄극"이라고 규정했다.
만일 이 범죄의 동기가 돈을 강탈해 내는 것이었다면 검찰의 규정이 맞다.
그러나 다른 동기가 있다면?
피셔 교수는 로드스타인은 처음부터 돈에는 관심이 없었고,
자신의 명민함을 과시하는 데 더 큰 목적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 수완가였으나 인생에서 실패하고 은둔하여 사는 사람으로서 로드스타인은,
자신이 각본을 쓰고 감독한 드라마가 방송의 톱 뉴스가 되고
신문의 1면을 장식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꿈꾸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만 모아 공범을 구성했으며,
그들에게도 범죄의 일부 측면만을 알려주어 전체 구도를 모르도록 했다.
피셔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로드스타인은 웰스 사건으로 수사도 받지 않았고
처벌도 받지 않았죠.
처벌도 받지 않았죠. 완벽하게 경찰과 세상을 속인 겁니다.
그리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죽었습니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이 작자입니다.
모든 비밀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났으니."
이것은 범죄 전문가 피셔 교수의 추정이다.
이것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암스트롱의 주장도 피셔의 추론에 가깝지만,
적어도 검찰과 배심원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과연 실패한 천재 로드스타인이 모든 계획의 주모자였을까.
아니면 검찰의 주장대로 암스트롱이 모든 일을 계획하고 진행한 것일까.
로드스타인이 죽어 버렸으므로 사실 여부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종신형이 선고될 것이 확실한 암스트롱에 대한 최종 선고 공판은 지금으로부터
2주 뒤인 2011년 2월28일에 이리 시 지역 법원에서 열리게 된다.
범죄에 가담한 사람 중에서 가장 끔찍하게 죽은 피자 배달원 브라이언 웰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 중에서 가장 순진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는 한편 범행의 공모자이면서, 한편 피해자다.
사건 직후, 웰스의 건너집에 사는 니버 벨은
그가 은행 강도를 하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
누구나 이웃이 되고 싶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죠.
그는 천성이 조용한 사람이었어요.
물질적인 데는 관심도 없었고요.
그는 그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었어요."
물론 이것은 그가 범행에 가담한 사람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나온 증언이었다.
그러나 그는 30년 동안 피자 배달을 하며 이렇게 조용하고 성실한 이웃으로 살아 왔다.
그가 목에 폭탄을 매단 채 은행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시작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범죄 미스터리 드라마는
이제 영원히 풀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의문 하나를 여전히 남긴 채 막을 내리고 있다.
경찰의 조사 결과 흥미로운
사항들이 밝혀졌으나,
단서는 잡히지 않았다.
출처 : 카카오피아 - WootOp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