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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병소에서 미칠뻔한 이야기.
게시물ID : humorbest_7216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eio
추천 : 107
조회수 : 7403회
댓글수 : 1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7/30 11:59:27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7/30 04:53:40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고 해안에 들어갈 준비를 하면서 나의 마지막 대대생활이 끝나갈 때 쯤
난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지루함 때문이었다. 그 당시 난 남들과는 조금 다른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위병조장 근무를 섰기 때문에 이틀에 한번 꼴로 밤을 새야 했고 그러다보니 남들 자는 시간에 활동하고
남들 활동하는 시간에 잠을 잤다. 물론 좋은점도 있었다. 점호 열외에 모든 훈련 열외. 하지만 대대 자체가
별로 크지 않은 탓에 출입하는 차량이나 인원도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밤이 되면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나는 지루함과 외로움에 몸서리 쳐야만 했다. 위병소에 있는거라곤
책상과 총기함이 전부였다. 처음엔 책을 읽었다. 휴게실에 있던 소설책들을 모두 독파하고 심지어 나중엔
볼게 없어 전술교범을 읽기도 했다. 그마저도 다 읽고나니 그때부턴 정말 할게 없어졌다.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새벽 2~3시 쯤 이면 대략 정신이 멍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졸음과의 싸움이었다.
그럴땐 가끔 엎드려서 자거나 졸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당직사령이 작전장교인 경우에는 불가능 했다.
다른 장교들은 지통실에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지만 작전장교는 툭하면 몰래몰래
뒷문을 통해 위병소로 갱을 오는 육식 당직사령이었기에 그마저도 쉽지가 않았다.
 
그러다 하게 된것이 학접기 였다. 유년 시절을 김영만 아저씨와 함께 했지만 학같은건 접어본 적이 없었기에
수많은 기형 학들을 만들고 나서야 제대로 된 학을 접을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턴 학을 접기 시작했다.
솔직히 즐겁거나 재미있진 않았지만 무언가 몰두할 것이 필요했기에 나는 미친듯이 학을 접어댔다.
그렇게 난 베트남에서 운동화를 만드는 미취학 아동처럼 쉬지않고 학을 접기 시작했고 얼마 되지 않아 학이 쌓이기 시작했다.
학이 2천마리 가량 쌓여 있으니 그걸 처리하는 것도 문제였다. 내무실에 짱박아 놨지만 훈련이 시작되면 어차피
다 쓰레기통으로 갈 물건들이었고 이걸 어떻게 처리하나 고심하고 있을 때 쯤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곧 휴가를 나가는 고참이 자기 여자친구에게 자기가 접었다고 줄거라며 학을 달라고 했고 그냥 주기엔 배알이 꼴려
난 얼마 까지 알아보고 오셨냐고 물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2만원에 합의를 보았고 싱글벙글 하며 휴가를 나간 그
고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 학들은 사랑이나 설레임따위의 달달한 감정으로
만든게 아니었으니.. 어쩌면 내 분노의 결정체 같은 요사스러운 물건을 건네줬으니 그 둘간의 사이가 잘 될리가 만무했다.
 
학접기도 질려갈 때 쯤 휴게실 구석에서 네모네모로직이라는 책을 발견했고 난 유레카를 외쳤다. 이것만 있으면 새벽도
두려울 것 같지 않았다. 그날은 여느날과 달리 가벼운 발걸음으로 위병소로 향할 수 있었다. 밤이 되고 나는 설레는
맘으로 책을 꺼내 들었지만 난 이내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난 내가 게임방법을 모른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인지할 수 있었다.
누가 찢어갔는지 앞부분은 찢어져 있었다. 아마도 그 찢어진 부분에 게임방법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리라...
다음날 부대를 샅샅이 뒤졌지만 게임방법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고 난 더 큰 절망에 빠져들고 말았다.
매일 밤 알수없는 숫자들과 모눈종이를 쳐다보며 씨름해봐도 도저히 게임 방법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슬슬 이성의 끈을
놓아갈 때 쯤 나를 다잡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려 노력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생각으로 내가 선택한 것은 그 모눈에 오목을 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작은 문제가 있었다.
같이 둘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결국 난 혼자서 오목을 두기 시작했고 이게 의외로 할만하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었다. 나란 놈은 꽤나 만만치 않았고
결국은 종이를 다 채우고도 승부가 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즐거움에 커질수록 나는 점점 정상인의 범주를
벗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어느날 근무교대를 하는 후임에게 혼자 오목을 두는 걸 들킨 이후로는
이마저도 접게 되었다. 후임의 말에 의하면 나혼자 멍하니 펜을들고 앉아서는 삼삼은 안돼 반칙이야라고 중얼거리고 있었
다고 한다. 나를 B사감 보듯 쳐다보는 그 후임은 그이후로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이런 시간들이 계속되다 보니 어느새 분대원들에게도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분대장이 됐을때만 해도 여우같은 부분대장과
토끼같은 분대원들을 데리고 남은 군생활을 알차게 보내자 다짐했지만 이것 또한 쉽지는 않았다. 생활하는 시간이 틀리다보니
뭘 같이하거나 대화를 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졸지에 기러기분대장이 되어버린 나는 자연스럽게 분대원들에게 신경쓰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었다. 분대장이 항상 부재중이다 보니 짬에서 밀려 보급이나 작업을 할때도 불이익을 받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아침에 근무가 끝나고 복귀하면 항상 분대원들은 쪼르르 달려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고 피곤함에 쩔어있던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괜시리 넌 도대체 뭐하는 거냐며 부분대장을 질책했다. 부분대장도 지지않고 바락바락 대들며 바가지를 긁곤 했다.
그럴때마다 분대 꼴 잘 돌아간다며 내가 빨리 제대를 하던지 해야지라며 외치고 지긋지긋한 내무실을 박차고 나가 깡맛스타를 들이키고
옆소대 내무실로 가 잠을 청하곤 했다.
 
대대생활이 끝나고 해안에 들어가서야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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