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하, 추억, 오래도록 아픔
사랑이라는 이름보다도
늘 아픔이란 이름으로 다가오던 그대
살다 보면 가끔 잊을 날이 있겠지요
그렇게 아픔에 익숙해지다 보면
아픔도 아픔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겠지요
사랑도 사랑 아닌 것처럼
담담히 맞을 때도 있겠지요
사랑이란 이름보다는
아픔이란 이름으로
그대를 추억하다가
무덤덤하게 그대 이름을
불러 볼 수 있는 날이 언제인지
그런 날이 과연 오기는 올는지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언제쯤 그대 이름을
젖지 않은 목소리로
불러 볼 수 있을지
사랑은 왜 이토록 순간적이며
추억은 또 왜 이토록
오래도록 아픔인 것인지
김영달, 그 사람 가버리니
정돈 되어지지 않은 마음으로
바라보는 그대 뒷모습은
차마 참기힘든, 견디기 힘든
절망의 벽같은 것이었습니다
카멜레온 같은 사랑과 동거했던 이별은
그렇게 아프고 아프기만 합니다
서 있지도, 앉지도 못한채
하늘 끝을 뛰어다니고 땅끝을 뛰어다니며
미쳐가는 이마음 진정 시켜보지만
역시나 아픔입니다
준비하지 못한 이별앞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것만 같아
겨우, 겨우 나를 진정 시켜보지만
아픈 이별입니다 아픈 이별
당신 떠난자리
그곳에는 꽃도 피지않고
서슬퍼런 그리움만 뒤엉키어
하루, 하루 이사람의 육신을 찔러댑니다
그 사람 가버리니
고정희, 지울 수 없는 얼굴
냉정한 당신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얼음 같은 당신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불 같은 당신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무심한 당신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그윽한 당신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따뜻한 당신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내 영혼의 요람같은 당신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샘솟는 기쁨 같은 당신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아니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당신이라고 썼다가
이세상 지울 수 없는 얼굴 있음을 알았습니다
최승자, 외로운 여자들은
외로운 여자들은
결코 울리지 않는 전화통이 울리길 기다린다
그보다 더 외로운 여자들은
갑자기 울릴 때 자지러질듯 놀란다
그보다 더 외로운 여자들은
결코 울리지 않던 전화통이 갑자기 울릴까봐
그리고 그 순간에 자기 심장이 멈출까봐 두려워 한다
그보다 더 외로운 여자들은
지상의 모든 애인들이 한꺼번에 전활할 때
잠들은 채 하고 있거나 잠들어 있다
안희선, 그대를 잊는다는 건
아마, 안녕이란 마지막 말은 못할거에요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던 약속(約束)의 시간들이
오늘도 가슴 조이는 순간으로 남는 것을 보면
침묵의 가느다란 그물을 통해서
소진되는 따뜻한 혈관(血官)이 눈물겨운 날
이 차가운 세상이 눈 흘기더라도
행복한 날들의 낯익은 얼굴은 잊지 못할거에요
아, 희미하게 잠드려는 창백한 기억 속에서
고요히 떠오르는 그대의 미소, 혹은 나의 미소
맑은 시냇물 속에서 어른거리는
지난 가을의 낙엽같은 추억이
아직도 나에게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보면
죽음이란 오랜 이별 앞에서도
아마, 안녕이란 마지막 말은 못할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