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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회 현충일 칼럼 - 애국 그 잊혀진 단어에게
게시물ID : sisa_706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안병희
추천 : 2/22
조회수 : 4591회
댓글수 : 24개
등록시간 : 2009/06/06 18:30:17
기억하기만 해도 그것이 애국입니다.

반만년의 찬란한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강대국 대열에 끼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민족이 무능해서? 인물이 없어서? 기반이 안갖추어져서? 물론 이것들이 한 10프로 정도의 요인은 되나 그 전부를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반만여년간 작던 크던 2천여번의 타민족의 외침 때문에 그렇습니다. 북한을 제외한 남한은 반만년 역사 속에서 역사상 유래 없는 긴 평화를 무려 56년이나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학자들은 말합니다. 이렇게 잘나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이민족의 침략에도 버티어내고 끝가지 생존한 작은 나라가 52년의 평화의 시간이라면 과연 그 시간 동안 얼마만큼의 성장을 이루어낼지, 또 강대국으로서의 위용을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할 것 입니다.
그렇게 피 터지게 지켜내고 살아남은 생존력, 그 생존력이 60~70년대 박정희 대통령님을 필두로 저력을 보여 라인강의 기적을 초월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 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교육은 백년 지대계야 라고 합니다. 일정시절 45년대 미국의 극적인 승리로 얻어낸 해방은 핍박받던 젊은세대 어른세대들은 환호했으나, 정작 그 미래를 책임질 국민학생-초등학생으로 바뀌었죠, 중학생, 고등학생들은 책상을 치며, 대일본제국의 멸망을 슬퍼 했다 합니다. 그들이 멍청해서 아님 정말로 황국신민의 2등 국민이라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다 일정의 세뇌교육이 남긴 잔재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우리 역사를 후손에게 남기지 아니하면,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며 정상적인 역사관을 지금 나라를 이끄는 우리가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습니다. 이런 정신적인 부분 말고도, 지금 젊은 가정들은 아이들을 1명 내지는 없이도 잘살자고 합니다. 

늙어서 노동인구는 줄어들고, 아이들과 젊은이의 숫자들이 줄어든다면 젊은이 1명당 부역되는 노인숫자가 5~6이런 식이라면, 그 나라에 진정한 활력 즉,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활력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많은 경재 학자들이 말합니다. 대한민국이 수입 수출 없이도 자생하려면 기본적으로 1억 이상 인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6월 6일 애국충혼을 기리는 날 현충일 입니다.
금일 이곳은 625때 아군의 마지막 방어선에서 목숨을 담보로 유엔군의 참전 시기까지 방어선을 유지해준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다부동 전적지를 방문 하였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이재승씨요 

50년동 1월 입대, 1시단 15연대 3대대 12중대 셨군요.
보병.
 

문 : 다부동 전투때 직접 전투를 참여하신겁니까?

답: 낙동강가에서 일주일정도 전투후 318고지 방어선구축, 기관총 탄약수로 소총소대 지원 28일간 전투했습니다.

문 : 당시 아군상황하고 어떤 마음자세로 싸우셨습니까?

답 : 죽을각오로 방어선을 지키고 배수의자세로 전투에 임했습니다. 1시단 배속지가 개성 부근인데 북한공산군의 파상공세로 총 한번 못 싸보고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면서 눈물을 씹었습니다. 이제 이곳이 제가 총을 쏘고 지키던 그 자리가 내 무덤 자리다 라고는 마음 가짐으로 싸웠습니다.

문: 당시 국군과 미리 먼저 한국에 입항한 동맹군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느나라 무슨 부대입니까?

답 : 미 기갑27사단, 포격지원, 같이 싸우진 않았습니다. 

문 : 당시 치열했던 전투에서 시신들이 산처럼 쌓여서 강물의 변할 정도로 심하였던데 과장된 부분은 없을까요?


답 : 밤만 되면 북한군이 6열종대로 도강을 하여 아군에게 왔는데 기총소사로 수없이 많은 숫자를 죽여도 죽이면서 아침이 되면 적군과 아군이 뒤섞여서 시신으로 진지일대 강일대가 검붉게 물들었습니다. 당시 여름이라서 냄세도 고약했고, 아군의 시신마져도 묻어주지 못할 정도로 시시각각 적의 공격이 지속되었기에, 그들의 시신을 적군의 시체와 같이 낙동강에 떠내려 보냈죠.

문 : 만약 이 방어선이 지켜지지 못했더라면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즉 지금이 있었을까요?

답 : 지금 자유민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이라는 통일된 나라가 하나 있었겠죠. 지금 저랑 이야기하는 안병희군도 두가지 중 하나일겁니다. 부모님이 전쟁포화에 휩쓸려 태어나지도 못했다던가, 아니면 그 김일성 부자한테 위대한 수령님~ 눈물 쏟으며 살고 있겠죠.   

살아계셔서, 그리고 끝까지 나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존경의 뜻을 표합니다.

문 : 성함하고 당시 나이와 소속 알려주시겠습니까?

답 : 이종근, 만 18세, 1시단 11연대 2대대 6중대 1소대 보병

  
문 : 당시 직접 전투에 참여하셨던 분이십니까?

답 : 유학산줄기 고지는 잘기억납니다.

문 : 어떤식으로 전투수행을 하셨나요?

답 : M-1소총사수로서 11연대 배송되서 청평서부터 육로로 후퇴하였고 유학산줄기에서 밀리고 다시 점령하고 수십 차례했고, 밀리면서 사단장이 호통을 치면서 다시 공격해 올라가라고, 다시 재점령했는데, 인민군 15사단,13사단, 3사단 3개 사단이 다부동지부에서 그들과 맞써 싸웠습니다. 
여기는 힘들어서 15사단만 영천으로 우회에서 공격했습니다. 11연대가 15사단을 추적했죠. 영천주둔 하던 아군8사단지원 부대로 배속되었습니다. 선봉대로 착임하시고 백병전도 했습니다. 영천에 15사단이 탱크로 앞세워 공격해들어오는느것을 정면으로 막아내서 아군피해도 심했지만 15사단을 전멸시켰습니다.

문 : 피부가 붉으신데, 혹시 고엽제 같은 것에 의한 피부손상입니까?

답 : 당시 화기와 강한 직사광선에 노출되어 그런 것이라 병원에서 이야기하더군요.

아 영광의 훈장 같은 것이군요. 대단하십니다.

문 : 만약 낙동강 유역 방어선이 뚫렸다면 제 인생 제가 83년생이거든요 제 인생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답 : 2001년도에 내 인생을 돌아볼 때 내가 살아있는 게 나와 함께 전투한 동료들이 전사하였기에 내가 살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위해 대신 죽었기에 제가 살아남은거죠. 아마 제가 죽었다면 전사자중 한명이 제대신 살았을 겁니다.
좋은일 하시는데 우리 후손들에게 전쟁의 아픔과 이 전쟁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게 글도 써주시고 자료도 많이 남겨주십시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안습니다. 우리 후손에게 다시한번 전쟁을 알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깔거리 많은 대한민국이고 신경쓸것도 많은 대한민국이지만, 

오늘 오유인들께서는 호국영령들의 애국충혼을 기리셨습니까?

묵념드리고 기리신 분들은 그냥 쓸게 없어서 글 안남겼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그들을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그들의 충혼을 가르쳐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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