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하지 않은 인물이 없다. 원작자가 많이 좋아하지는 않아도, 망치지 않아서 만족할 만할 정도로 나왔다.
물론 나의 입장에서는 엄청 잘나왔다+ _+/ 오락성과 대중성, 철학적 가치관을 폭넓게 잡으면서 좁은 기차 안에서 기차만큼 빠른 전개가 빛이 차창밖에 쌓인 눈에 반사되어 눈을 홀린다.
17년째 멈추지 않고 달리는 열차.
인간의 생존본능에 묻어나는 잔인함이 표면에 묻어나 다소 잔인한 이야기. 그러나 현실의 이야기. 열차는 곧 역사였다.
봉준호 감독이 이전에 인터뷰에서 설국열차는 사회의 압축판이라고 이야기 했는데, 제대로 잡아넣고 있는 듯하다. 계급이 있는 사회.
그 벽을 넘으려면 수많은 문을 지나야 하고, 그곳으로 안내해줄 키메이커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에 있어 희생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갈무리되어 눈에 담긴다.
주인공인 커티스(크리스에반스분)의 선택에 많은 희생이 있었다. 결국에 자신의 희생으로 마무리하며 이야기는 끝나는데, 자신의 삶에서 희생의 가치가 얼마나 기구한 것인지 알기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던 현실과 진실이 마주할때, 그는 갈등하고 고뇌한다. 그의 갈등에 요나(고아성분)는 커티스의 귀가 되어 눈을 뜨게 해준다.
결국에 요나는 미래였다. 윌포드, 길리엄,메이슨으로 투영된 과거가
커티스 자신과 에드가, 타냐, 앤드류, 남궁민수의 현재과 투영되어 요나라는 미래에 닿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관통하는 비명을 요나는 시작부터 듣고 있었다.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비명을 듣고 자라난다. 잔인한 이야기지만, 결국의 영화가 아닌 현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길 소망하는가, 안정을 추구하는 보수(과거)와 발전을 도모하는 진보(현실)이 부딪혀 미래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같은 것이라면 과거도 현재도, 결국에는 미래의 발자욱을 따라 걷고 있을 뿐이었다. 요나가 마지막에 내딛은 그 발자욱은 결국 모든 종점이 그 발자욱 하나를 위해 나아가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미래를 넘겨주기 위해 우리는 살아간다. 안정한다. 그리고 나아간다.
미래에게 부끄럽지 않은 현재를 살아가자.
너무도 당연하지만, 그것만 알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