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eno-spiral moon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의 삶의 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라고
/장미와 가시, 김승희
저 먼 곳에
너무 멀어 환한 그곳에
당신과 내가 살고 있다고
아주 행복하다고
당신 생일 날
그 초침들로 만든 케이크와 촛불로
안부 전해요
/생일 中, 김혜순
소중한 것은 스쳐가는 것들이 아니다.
당장 보이지 않아도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들이다.
언젠가는 그것들과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
/청춘의 문장들 中, 김연수
네가 말해주는 미래가 내 앞에 펼쳐지지 않는다 해도
어차피 그 날에 널 만나지 못했다면
다시 사는 내 인생도 없었을거야
너와 함께 꿈꿀 수 있다면 죽는대도 괜찮아 행복해
내가 믿던 모든 걸 버리고 너의 그 꿈 속에 살수 있다면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中
우리는 이 세계가 좋아서
골목에 서서 비를 맞는다
젖을 줄 알면서
옷을 다 챙겨 입고
지상으로 떨어지면서 잃어버렸던
비의 기억을 되돌려주기 위해
흠뻑 젖을 때까지
흰 장르가 될 때까지
비의 감정을 배운다
단지 이 세계가 좋아서
비의 기억으로 골목이 넘치고
비의 나쁜 기억으로
발이 퉁퉁 불는다
외투는 입고 구두끈을 고쳐 맨다
우리는 우리가 좋을 세계에서
흠뻑 젖을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골목에 서서 비의 냄새를 훔친다
/소울메이트, 이근화
내 어떤 이름으로든 그대가 있어 행복하다
아픔과 그리움이 진할수록
그대의 이름을 생각하면서
별과 바다와 하늘의 이름으로 그대를 꿈꾼다
사랑으로 가득 찬 희망 때문에
억새풀의 강함처럼 삶의 의욕도 모두
그대로 인하여 더욱 진해지고
슬픔이라 할 수 있는 눈물조차도
그대가 있어 사치라 한다
괴로움은 혼자 이기는 연습을 하고
될 수만 있다면 그대 앞에선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고개를 들고 싶다
나의 가슴을 채울 수 있는 그대의 언어들
아픔과 비난조차도 싫어하지 않고
그대가 있음으로 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감당하여 이기는 느낌으로
기쁘게 받아야지
그대가 있음으로
내 언어가 웃음으로 빛난다
/그대가 있음으로, 박성
나무들이 물고기처럼 숨을 쉬었다
비가 그치지 않았다
색색의 아이들이 교문을 나섰다
병아리 몸짓의 인사말조차
들리지 않았다
물살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문구점
간판이 물풀처럼 흔들렸다
자동차가 길게 줄을 서서
수만 년 전 비단잉어의 이동로를 따라
느릿느릿 흘러갔다
물거품으로 떠다니는 꽃향기 속
수심을 유지하는 부레 하나
박제된 듯 정지해 있었다
위이잉, 닫혔던 귀가 열렸다
아이를 기다리던 엄마가 환해지며
비늘 없는 작은 손을 잡았다
꽃무늬 빗물이 찬란한
누구나 헤엄쳐 다니는 봄날이었다
/찬란한 봄날, 심유섭
머나먼 길을 혼자서 걸어가다가 느닷없이 너무나 목 말라 오듯이
정작 우리 너무 서로가 그리워질 때
참을 수 없어 비틀거리지 말기를
슬픔이 목 축일 수 없는 바다까지 닿아
손바닥으로 당신과 내 마음 떠올렸을 때
방울방울 떨어지는 아픔으로 인해
절대 주르르 눈물 흘리는 일 없기를
서서히 가슴 말라가는 일 없기를
/소설 '소녀처럼' 中, 김하인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바로 오늘 태어난 사랑스러운 이여
밤하늘 별처럼 많고 많은 사람 중에도
당신은 오직 한사람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봐요
꽃들도 저마도 하나이듯이
한낮의 태양도 하나이듯이
당신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오직 한 사람이란 걸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기적인가요
당신은 축복받아 마땅한 사람
온 세상을 당신께 드립니다
산과 바다 이 기쁨
모두 당신께 드립니다
/생일을 맞은 그대에게, 홍수희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개똥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지나서
바람이 차다고, 고단한 잠에서 아직 깨지 않았다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건, 참 만만치 않은 거라며
아차 하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십상이지
화투판 끗발처럼, 어쩌다 좋은 날도 있긴 하겠지만
그거야 그때뿐이지
어느 날 큰 비가 올지, 그 비에
뭐가 무너지고 뭐가 떠내려 갈지 누가 알겠느냐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
개똥같은 희망이라도 하나 품고 사는 건 행복한 거야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쌍한가
자, 한잔 들게나
되는 게 없다고, 이놈의 세상
되는 게 좆도 없다고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야
/소주 한잔했다고 하는 얘기가 아닐세, 백창우
꽃이 나를 바라봅니다
나도 꽃을 바라봅니다
꽃이 나를 보고 웃음을 띄웁니다
나도 꽃을 보고 웃음을 띄웁니다
아침부터 햇살이 눈부십니다
꽃은 아마
내가 꽃인 줄 아나 봅니다
/꽃과 나, 정호승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정진규, 별
모든 말들
부질없다는 거
알면서도
나는 너에게
속삭여주고 싶다,
꽃피자고
노래하자고
/말 中, 김현옥
내려놓으면 된다
구태여 네 마음을 괴롭히지 말거라
부는 바람이 예뻐
그 눈부심에 웃던 네가 아니었니
받아들이면 된다
지는 해를 깨우려 노력하지 말거라
너는 달빛에 더 아름답다
/너에게, 서혜진
타오르고 있었다
그대는
냉랭한 달빛 아래서도
침잠하고 있었다
그대는
열렬한 태양 안에서도
내내
예리한 살별인가 했는데
저물지 않는 붙박이별이었다
그대는
/붙박이별, 임영준
한 사람이 꽃길을 걸어온다면
그도 꽃이 아니겠느냐
꽃발꽃발 걸어오는 저 향기
우듬지에 피워낸 꽃이 한 나무의 상처라면
내 목울대 울리는 내 사랑도
상처의 꽃이 아니겠느냐
사태진 꽃길을
꽃발꽃발 걸어가는 한 사람
내 몸이 걸어간
저 환한
상처의 길
/꽃길, 윤홍조
다가올 월요병에 대비해 밝은 이미지들의 글귀들을 가져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