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찍이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단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주변에 있던 벌 한 마리가 웅웅 거리며 날아와서는 머리를 들이밀고는 술맛을 보았다. 그렇게 하기를 한참 동안이나 계속하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더니 술독에 거의 빠져버릴 지경이었다. 내가 이를 안타까이 여겨 손으로 저었더니 그제서야 날아갔다. 그러나 날아갔다가는 다시 또 오고, 이렇게 하기를 여러 차례 하다가 마침내 날개가 젖는데도 차마 술을 버리고 떠나가지 않았다. 얼마 후 벌은 술독에 빠져 죽고 말았다. 아아, 저 미미한 벌이 어찌 그리도 술을 좋아하여 제 몸을 그 속에 빠뜨림이 이다지도 심하단 말인가. 처음에 내가 손으로 저었을 때 떠나갔다면 진실로 날개가 젖는 화는 없었을 것이요, 날개가 젖었을 때 떠나갔다면 또한 어찌 그 속에 빠져죽는 화가 있었겠는가. 처음엔 떠나가지 않았고, 중간에는 깨닫지 못하였으며, 결국에는 빠져죽고 말았으니, 슬프도다. 나 또한 술을 좋아하는 자이다. 이 일을 당하여 이 벌로써 나의 거울을 삼노라.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사람에게는 욕심이 있고 사람이 능히 그것을 절제하지 못하니, 이로 말미암아 그 본연의 마음을 잃게 되고, 마침내는 그 본성과 목숨까지 잃는 데에 이르게 되나니, 어찌 유독 술만이 그러하겠는가. 이로 인해 내가 이것을 기록하여 간직하노니, 이는 내가 그릇이나 책상, 지팡이를 대할 때마다 경계로 삼고자 하기 때문이다. 갑진년(甲辰年) 7월 일 명암(明菴)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