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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헤드폰
게시물ID : panic_723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쿠밍
추천 : 14
조회수 : 1702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4/09/03 23:17:20
"오빠. 내 말 듣고 있어?"

이어폰이 탁 하고 빠졌다. 동호는 깜짝 놀라 옆의 연진을 바라보았다. 

"으 응. 듣고있었어."

연진은 토라진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현관 앞에서 머리를 긁적이던 동호는 잠시 후 미안한 표정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사람이 왜이래? 말할때 이어폰 끼지 말랬지?"

"아 아니야...그냥 끼고있었던거고 음악은 안틀었어. 아까 빼는걸 깜빡..."

"그럼 내가 무슨 소리 했는데?"

"저녁에 친구들 만나러 놀러간다며. 그래서 차쓴다고? 키 빌려줄게."

"하 참."

"연진아. 미안. 다 듣고..."

"오빠 정말 왜이래? 다른 친구들은 다 자기 남자친구들이 태워다준다고 그러고. 그리고 남친 다 같이 오기로 했는데 나만 이렇게 떨어져서."

"그게 아니라 내가 갈 상황이 아니잖아. 너도 내가 가면 창피할거고."

"안그럴거라고 했잖아. 그건 그렇다 쳐. 왜 나랑 있을때도 계속 이어폰이야? 내 말에 집중을 못해. 나혼자 얘기하는 거 같잖아. 우리 같이 대화를 좀 해."

"알았어. 알았어. 나중에."

"오빠 어딜들어가는데?"

앙칼진 연진의 목소리에 눌려 동호는 뒷걸음질 치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뒤따라들어오려는 연진을 제지해 밀어내고 방문을 겨우 잠궜다. 

연진과 동호는 1년전부터 동거를 하고 있었다. 처음 반했던 것은 동호. 먼저 고백하고 사귀게 되었다. 연진이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게 되자 여자 혼자는 위험하다며 꽤나 긴 설득끝에 같은 집에서 살게 되었다. 1년전, 아니 반년전만해도 꿈같았다. 너무 행복했던 두 사람의 나날들이 동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제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렇게 잔소리가 심할줄 알았더라면...하는 말이 나즈막이 튀어나왔다. 

멍하니 책상위를 보았다. 아침에 나가기 직전까지 신나게 음악을 들었던 헤드폰이 있었다. 

최대한 신나는 음악으로, 경쾌하게 빠르게 시끄럽게 울리는 음악으로 선정했다. 딱 세곡만. 아니 다섯 곡. 망설이다 열 곡만 듣고 스트레스를 풀다가 나가기로 했다. 비트에 몸을 맡긴다. 조금씩 들썩이던 몸은 어느새 헤드뱅잉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화가 안 풀린 연진이 문을 두드리고 있는 모양이다. 문고리가 마치 리듬을 맞추듯 덜컥덜컥 움직였다. 문에 달린 달력도 일정한 간격에 맞춰 흔들흔들 했더. 동호는 오히려 그것이 더 재밌다는 듯 손가락질하며 즐겁게 립싱크를 했다. 

'she's gone. out of my life...'

한창 분위기를 잡고 있으니 마지막 선곡이었던 노래가 나왔다. 제일 좋아하는 쉬즈 곤. 동호가 연진에게 고백하고 나서 너무 좋아 노래방에서 신나게 불렀던 곡이다. 그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목을 가다듬는다. 클라이막스 부분이다. 

"girl~~~Lady, won't you save me - My heart belongs to you."

의자에 앉아 온 몸으로 전율을 느끼며 목청껏 소리를 냈다. 

그때였다. 

활짝 열려있는 창문으로 한 남자가 피식 웃고 지나갔다. 

감흥이 확 식었다. 너무 민망했다. 목소리가 너무 컸던가. 동호는 멋쩍은 표정으로 헤드폰을 벗었다. 

연진은 지금 친구들 만날 준비로 바쁠 터였다. 지금 사과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혼이 나겠지. 고민하다 용기를 내어 방문을 빼꼼 열었다. 

"연진아. 이제...나갈거지이...?"

반응이 없다. 방문을 열었다. 무언가에 걸린듯 문이 끝까지 잘 열리지 않는다. 한걸음 내딛었다. 진득하니 기분나쁜 것이 발에 밟혔다. 동호가 바닥을 바라본다. 온통 새빨간 그것은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헉."

동호는 밖으로 나왔다. 피의 근원을 찾는다. 싱크대쪽, 거실중앙, 베란다 쪽. 아무것도 없다. 두렵지만 다시 아래를 본다. 그리고 뒤돌아 다시 방문쪽을 바라보았다. 

하얀 방문위로 새겨진 손바닥 모양의 핏자국. 문고리에서부터 바깥으로 지익 하고 그어진 핏물. 그리고 방문 옆 벽에 피범벅이 되어 기대어 진 연진의 모습. 

예쁘게 차려입은 블라우스와 치마가 찢어져 흩어져 있고 몸은 칼에 베여 그 안에서 피가 잔뜩 배어나오고 있었다. 

동호는 굳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아까의 광경이 떠올랐을 뿐이다. 

리듬에 맞춰 덜그럭거리던 문고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흔들리던 달력이. 
그리고 한창 쉬스곤을 부를 때 창문으로 자길 바라보며 피식 웃던 남자의 얼굴이. 

언뜻 떠올려보니 그 남자의 얼굴에는 피같은 것이 튀어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she's gone. out of my life...'

방안에 벗어놨던 헤드폰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음악이 나즈막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by 쿠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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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소설입니다. 
예전에 디시 공이갤에서 활동하면서 자작소설을 쓴 것이 여러편 되어
천천히 올려보려고 하는데

괘...ㄴ찮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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