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글은 굉장히 강력한 스포일러성을 띠고 있으며 굉장히 주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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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신 분에 한해 내용에 대해 보다 깊게 생각하고자 하시는 분께 추천드리는 바를 알립니다.
4DX soundX로 관람했습니다. 항상 느끼는거지만 디즈니 영화는 애들 영화가 아닙니다. 정말 아이들이면 아이들, 성인이면 성인. 모든 세대에게 가슴깊이 감동을 주네요.
우리는 누구나 다른사람에게 상처줄수있는 힘이 있습니다. 영화속에서는 엘사의 능력이라는 특별한 소재로 나타나지요. 어린시절 안정적으로 조절하며 원할 때만 쓸 수 있던 엘사의 능력은 안나에게 상처입힌 것을 계기로 점점 통제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엘사는 스스로 마음에 벽을 치고 안나와 거리를 둡니다. 일종의 트라우마로 인한 분노조절장애와 비슷하죠.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두 사람만 남게 되었어도 그 벽은 극복되지 않지요. 심지어 엘사는 여왕님이 되실 몸이라, 남들에게 약한 모습은 드러내서는 안 되는 입장인 만큼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심지어 그 어린아이가 틈만 나면 부르는 노래조차 'conseal, dont feel, don't let them know'입니다. 여러분 이게 말이나 됩니까. 얼마나 가슴아픈 일입니까. 자신을 가두는 노래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트라우마가 늘 그렇듯이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덮어두면 갈수록 심각해질 뿐입니다.
자 이제 안나를 봅시다. 어린시절의 즐거운 기억들과 현실의 언니가 보여주는 냉랭한 모습에 인지부조화를 느끼며 매일을 언니의 방 문앞에서 애타게 보내는 안나는 닫혀버린 성문에 의해 다른사람들을 만나지조차 못한채 수 년의 세월을 성장합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보다 진실한 사랑이 또 없습니다. 이미 안나는 엘사의 마법에 10번쯤 면역되는게 맞는 것 같아 보이네요. 어쨌든 이렇게 자란 외로운 아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남자를, 그것도 마음이 완벽하게 맞는 남자를 만났는데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쉽게 믿어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겠지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언니에게 화낼 만도 합니다.
불의의 사고로 사람들의 앞에서 능력을 보여버린 엘사는 더욱 더 깊은 고독으로 도망쳐 노래가사 그대로 'Kingdom of isolation'의 여왕이 되어 버립니다. 말 그대로 얼음의 성 속에 자신을 가두어버리면서(turn away and slam the door) 고독과 동시에 자유를 느끼는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많은 현대인이 택하는 대처법과 크게 다르지 않죠. 그동안 'the pefect girl'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다 허사가 되어버린 것에 대한 자신의 상실감에 대해 슬퍼하지만 그 와중에 아렌델이 눈속에 파묻히는 것은 모르지요. 그동안 아무리 이타적, 희생적으로 살아왔어도 일단 자신의 슬픔에 귀기울이고 문을 닫기 시작하면 주위사람의 입장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암울하게도 도피한 사이에도 문제는 더욱 커지게 되고요. 'I dont care what they going to say', 'Let the storm rage on.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등등 엘사의 노래에서도 약간의 이기적인 면모를 직접적으로 엿볼 수 있지요. 나는 안추우니까 폭풍우야 몰아치라니요 ㅠ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참 많은 우리들 마음의 단면을 보는 것 같네요. 사실 겨울왕국(Frozen)은 우리네 얼어붙은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그런 슬픈 단면과는 별개로 엘사는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뽐내며 활기찬 본모습을 되찾고 스스로의 아름다운 겨울왕국을 만들지요. 'Conseal, Don't feel'에서 벗어나 마음껏 드러내고 마음껏 느낍니다. 이 순간 엘사가 계단을 뛰어오르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이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뭐 사실 이 영화는 겁없고 착한 동생의 철부지 분노조절장애 못난 언니 갱생 프로젝트입니다. 크리스토프와 한스, 안나의 배배 꼬인 러브라인을 제법 비중있게 그리는듯 하지만 훼이크고, 결국 크리스토프는 안나를 키스로 살리지도 못한 떨거지에 불과하지요.(영화 상영정보에도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적혀있습니다. 충격과 공포.) 영화 후반부의 내용은 죽어가는 안나를 살리기 위한 행보가 주가 되지만 사실 좀 더 큰 틀로 보면 그 모든 과정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엘사를 어린시절의 행복한 소녀로 돌려놓기 위한 것입니다. 수식으로 표현하자면 진정한 사랑=0 이라고 가정했을때 (엘사 마법폭주*(안나 쥬금*진정한 사랑))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자신을 한번 죽였다 살리는 희생의 과정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척 하면서 안나는 자신의 죽음과 함께 엘사의 분노조절장애까지도 0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지장보살님, 예수님 뺨치는 업적이죠. 겉보기에 철없고 방정맞지만 결국 겉성숙하고 겁많은 엘사보다 더 성숙한건 겁없는 안나였고, 애늙은이마냥 조심스러운 모습이 오히려 엘사가 사랑이라는 더 높은 수준으로 성숙하는 것을 발목잡은 것이지요.
어쨌든 본론을 말하자면 완벽하게 제 마음에 드는 결말이었습니다. 공주를 깨우는 것은 사각턱 페로몬덩어리의 진득한 키스라는 평범한 스토리에서 완전하게 탈피해서 자매간의 사랑으로 훈훈하게 끝나서 어찌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안나는 순록냄새나는 크리스토프 녀석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안나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 트라우마는 혼자 속으로 앓으면서 묵히지 말고 심각해지기 전에 반드시 극복해 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