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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식인설과 공자 식인설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내용 추가)
게시물ID : history_72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etraisol
추천 : 11
조회수 : 2434회
댓글수 : 43개
등록시간 : 2013/01/17 09:49:38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96124&s_no=96124&kind=search&search_table_name=bestofbest&page=1&keyfield=subject&keyword=%C1%DF%B1%B9


상기의 BOB 무서운 중국...실재 인육판매...전설이 아니었어!!! 에서 행하여진 까페라떼님과의 댓글에서의 대화를 기반으로 그 분의 논리와 또 대화의 내용들을 바탕으로 중국 식인설과 공자 인육설에 관해 간략하게나마 반론을 작성토록 해보겠습니다.




1. 해醢라는 것은 무엇인가?


두예의 춘추좌전정의에는醢, 肉酱. 해醢는 “육장肉醬(고기젓갈)” 이라 하며


공영달의 모시정의에는 以肉作醬曰醢.“고기肉로 만든 젓갈醬”을 해醢라고 한다고 묘사되어 집니다. 


다른 사서와 대동소이한 내용으로 차이를 보인다 하더라도 여기서 고기의 구체적인 재료(?)인 양 사슴 등의 동물이나 다른 재료인 물고기 등이 언급되는 차이를 보이는 수준이지요,




2. 예기에 나오는 자로의 일화은 중국인들이 물타기를 위해 내놓은 것이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상上 제5장: 孔子哭子路於中庭, 有人弔者而夫子拜之. 旣哭, 進使者而問故. 使者曰:「醢之矣」 遂命覆醢. 


공자孔子가 중정中庭에서 자로子路를 위해서 곡哭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조문弔問하러 오니, 부자夫子(공자)가 그에게 배례拜하였다. (공자가) 곡哭을 마치고 사자에게 다가가서 (자로가) 죽은 정황을 물었다. 사자가 말하길:(자로는) 해醢가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공자는 명하여 모든 해醢를 엎어버리게 하였다. 


사실 예기의 이것이 공자의 식인 습관을 증명한다는 것은 대만의 작가 황문웅의 저서 '중국의 식인문화'에서 나온것으로 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 작가는 일본으로 귀화한 한국인 오선화 씨와 더불어 일본 우익이 내세우는 가장 유명한 외국인 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혐한이자 혐중 작가입니다. 우익신생정당 유신정당 신풍의 강사를 맡고 있다는 것에서 더 말할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이쯤 되면 어느정도 눈치를 채셨겠지만 혐한류와 같은 카더라에 상당부분 근거한 책에서 그럴듯한 부분을 발췌한 내용이 현재 공자 식인설의 근간이 된겁니다.


001. <중국 식인사(1)> 

002. '국가는 사람이 사람을 먹는 역사사회' 

003. 라는 말의 의미 

004. <중국 식인사(2)> 

005. '인육시장'과 '식용인육'생산공장의 출현 

006. <'동방견문록'과 '광인일기'> 

007. 일본인들은 왜 표층적으로만 이해하는가? 

008. <중국의 '황제제'와 일본의 '천황제'> 

009. 중국인과 일본인의 정신구조는 왜 정반대인가 

010. <중국인과 일본인> 

011. 일본인은 왜 중국의 논리에 휘말렸나


해당 서적의 목차입니다. 한때 국내에도 출간된것으로 알고 있으니 헌책방이나 도서관을 찾아보시는것도 좋으실듯 합니다.


다만 목차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게 역사적인 무언가를 다룬다기 보다는 근거는 적당히 넘기고 일본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중국을 폄하하는 이슈적인 문제에 치중한 내용이 전부입니다.


즉 공자 인육설을 주장하는 측에서 인육 섭취의 증거로 쓰기 위해 제자에 대한 공자의 애달픈 마음이 담긴 일화를 곡해하고 있는것입니다.




3. 예기에 공자가 인육을 즐겨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까빼라떼 님은 예기에 인육지해人肉之라는 문구가 있는등 공자가 인육을 즐겨먹었다는 증거가 있으나 중국인들이 물타기 차원에서 없던 일이라 주장하는것 뿐이다 라고 하십니다.


이는 예기 뿐만 아니라 동주, 열국지, 논어 등에도 기술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선적으로 예기에는 인육지해라는 문구가 없습니다. 



출처 : http://ctext.org/liji/zh?searchu=%E4%BA%BA%E8%82%89%E4%B9%8B%E9%86%A2


(까빼라떼 님은 중국 특유의 간결체 라 못읽겠다 하시지만 간결체와는 무관합니다. 또한 영어로도 기재가 되어 있습니다.)


또한 논어에도 인육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으며 열국지는 가치가 없어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소설에 신뢰성을 기대하는것은 무리한 일이지요, 단적으로 유비의 인육섭취와 같은 사례로 볼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동주는 대체 어떤 사서를 말씀하시는지 미흡한 저로써는 감이 안잡히는군요,


이러한 사서적인 배경을 떠나 공자의 사상중 하나인 인人에 있어 인육 섭취는 매우 어긋나며 위배되는 부분입니다. 


인人이라는것은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말을 빌자면 심미안적 감수성으로 가식을 불인不人하다 라고 표현한다고도 볼수 있는 좋은걸 좋다 싫은 것을 싫다 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할수 있는것을 의미합니다.


자 여기서 인육 섭취가 왜 어긋나느냐 본다면 당시에도 물론 현재 처럼 인육 섭취라는것은 긍정적인것이 아닙니다.


해라는 형벌이 있습니다. 이는 사람의 고기로 젓갈을 담그는 형벌로 인육의 섭취가 까빼라떼님의 말씀처럼 식도락적이며 일상적인게 아니라는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밥을 먹는게 형벌이 될수는 없는것 처럼 말이지요,


사기史記 은본기殷本: 


以西伯昌․九侯․鄂侯爲三公. 九侯有好女, 入之紂. 九侯女不憙淫,紂怒, 殺之, 而醢九侯. 鄂侯爭之彊, 辨之疾, 幷脯鄂侯. 


(주紂왕은) 서백西伯 창昌(주나라 무왕의 아버지)․구후九侯․악후鄂侯를 삼공三公으로 삼았다. 구후九侯에게 아름다운 딸이 있었는데 주紂왕의 (궁궐로) 들어갔다. 


구후九侯의 딸이 음란한 것을 싫어하니, 주紂왕은 진노하여 그녀를 죽이고, 구후九侯는 해醢(젓갈)의 (형벌로 다스렸다.) (이것을 본) 악후鄂侯가 강경하게 변론하니, (주紂왕은) 악후鄂侯도 아울러 포脯(육포)의 (형벌로 다스렸다.) 


유의경의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본다면 정욱이 공에 그친것은 조조가 어려웠을 당시 자신의 고향을 약탈하여 3일 분의 식량을 제공했는데 여기에 인육 말린 것이 섞여 있어 조정의 신망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인육의 섭취라는것은 당시에도 사회에 받아들여지기가 매우 거부감이 있는 행동이라는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4. 철경록 계륵 편 설진, 고찬의 사례


네 철경록은 친구를 젓갈로 만들어 먹은 설진, 자기의 첩을 삶아 먹은 고찬의 이야기는 나오는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것은 이 책은 원대 법령및 원말 강동지역의 동란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술하면서 반란군들이나 범죄자 등이 어떤식으로 인육을 먹었는가 당시 지옥과 같은 상황에서 인간이 인간임을 포기한 일들을 상세히 적은게 전부라는 점입니다.


까빼라떼님의 주장이자 중국 인육설에서 곧잘 주장하는 요리책은 결코 아니지요,


또한 까빼라떼님은 글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큰 오류를 범하셨는데 철경록과 계륵편은 다른 책입니다.


원나라의 도종의가 지은 것이 남촌철경록 즉 철경록 이며 송나라 장작이 지은것이 계륵편이지요, 물론 둘 다 요리법이 상세히 기록된 요리책은 결코 아닙니다.


도종의는 개인저서만 약 300권이 넘는 대의 이름난 문필가이자 대학자입니다. 요리사가 결코 아니지요, 언급하신 사례는 말 그대로 인간임을 포기하는 상황에 치달은 인간들의 이야기, 범죄자를 언급한 내용입니다.


이렇게 이렇게 해먹으면 참 맛있고 좋아요 같은 요리사의 저서속 내용이 아니라 말이지요, 


덧붙이자면 설진의 사례는 당나라 장여의 조야첨재朝野僉載를 빌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측천무후때 항주의 임안위에 설진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사람고기를 좋아했다. 한번은 그에게 돈을 빌려준 부부가 임안에 와 그의 집에 묵게 되었다. 설진은 그들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하고 먼저 남편을 살해한 뒤 수은을 넣고 시체를 달여 뼈까지 녹였다. 그 뒤 부인까지 상미(賞味)하려고 했으나 이를 눈치 챈 부인이 담을 넘어 탈출, 현지사에게 고소했다. 지사는 자세한 내용을 조사한 후에 설진을 송청(送廳)하여 백타(百打)의 형에 처했는데, 태사(笞死)했다.


철경록과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 이 들은 자신의 행위를 극렬하게 부정하였으나 사안의 중대성이 커 조정에 까지 보고가 되어 중형에 처해졌음에도 중국 식인설 또는 인육설을 통해 비추어진 것은 오로지 자극적인 식인이라는 단어에만 집중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까빼라떼님이 언급하시고 또 중국 식인설 등에서 언급되듯이 철경록과 같은 사서의 설진과 같은 사례는 '인육은 맛있어요 대중들이 좋아해요'가 결코 아니라는겁니다. 


오히려 중범죄를 저지른 죄인에 대한 사건 일지에 가깝지요,


그렇다면 철경록의 다른 인육을 언급하는 부분은 어떨까요?


“…화우지군(淮右之军)은 식인을 좋아하여, 작은 아이를 최고로 삼았다…쇠로 만든 갈고리에 사람 고기를 놓고 구었다. 때로는 (사람의) 손발을 묶고 펄펄 끓는 물을 우선 부은 다음, 대나무로 껍데기를 벗겨냈다. 혹은 자루에 사람을 넣고, 커다란 솥에 넣고 산채로 삶았다. 남자의 경우 양 다리를 짤라냈고, 여자의 경우 특히 유방을 잘랐다.. 너무 잔인하여 이를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인육에 한 번 맛들인 자들은 그 고기를 더욱 먹고 싶어했다. ‘화우지군’은 주원장의 군대를 말하는데, 이렇게 사람을 먹는 것에 맛들인 군대가 어떻게 백성의 어려움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네 결코 인육을 섭취하는것을 장려하거나 요리법을 설명하는 요리책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당대의 정세를 평가하는 모습을 엿볼수가 있기까지 합니다.




5. 소설은 식도락적 인육 섭취의 증거가 될수 있는가


수호지,삼국지연의와 같은 소설에서 나오는 인육의 섭취는 범죄나 어쩔수 없는 상황의 그것으로 결코 긍정적으로 인육 섭취를 정당화하는 식의 묘사가 들어가는 부분은 아닙니다. 


가령 까빼라떼님이 언급하신 유비가 인육을 먹은 부분을 보자면 이렇습니다. 유비가 서주를 다스릴 당시 여포는 휘하의 장요, 고순 등과 함께 군사를 셋으로 나누어 유비와 그의 의형제인 관우,장비를 공격하기 위해 출정합니다. 


인간 병기 여포의 군대의 총공격을 받자 유비의 군대는 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전멸하게 됩니다. 관우와 장비는 몇 명의 패잔병과 함께 산속으로 달아났고 여포군은 소패성을 순식간에 점령합니다. 유비는 이번에야말로 잡히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처자식들을 버리고 서문을 빠져나와 말을 타고 '홀로' 도망칩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뒤에서 한 사람이 구슬프게 이름을 불러 뒤돌아보니 손건이었습니다. 유비는 손건과 함께 큰 길을 피해가며 허창으로 정신없이 말을 달립니다. 두 사람은 하루 반나절을 한 끼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배가 너무 고프고 초겨울의 저녁바람에 뼈가 시린탓에 화전민에게라도 가서 동냥 아니 요기라고 할 셈으로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유안이라는 화전민의 집에 들러 먹을 것을 요구하자 얼마 후 유안이 고기를 잔뜩 구워서 산나물과 함께 저녁상을 차려왔지요. 유안에게 무슨 고기냐고 묻자 이리 고기라고 대답하였고 유비와 손건은 별 의심도 하지도 않고 그 고기를 배불리 먹습니다. 


다음날 아침 날이 밝아 유비는 길을 떠나려 후원에 메어둔 말을 끌어내기 위해 그 집 뒤꼍으로 가다가 보니 부엌에 젊은 여자가 죽어 있고 그 여자의 허벅지와 팔 다리가 예리한 칼로 베어져 있었습니다. 


유비가 깜짝 놀라서 유안을 불러서 물으니 유안이 눈물만 뚝뚝 흘리다가 죽은 여자는 자기의 아내인데 존경했던 유비가 왔는데 대접할 것도 없어 아내를 죽여 요리해 준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유비의 인간성과 선정을 부각시키기 위한 극적인 장치 즉 정사에는 없는 나관중의 창작인 소설의 내용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소설상에서 유비는 모르고 먹은겁니다.



수호지는 어떨까요? 일단 우리가 알아야 될것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배경이 되는 시대상의 묘사는 잦은 전란과 오랜 폭정으로 사회 인프라나 농업 생산력이 극도로 저하된 절멸적인 상태였다는 점,  그리고 두번째로 양산박의 호걸들은 결코 일반인이나 선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실제 역사서인 송사를 보면 송강이 조정에 항거하다 귀순했다는 내용이나 방랍이 반란을 일으킨 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건 크게 중요한게 아니니 넘어가고 장청 손이랑 부부의 사례를 봅시다. 무송은 귀양을 가다가 이들에게 고기 만두가 될뻔했지만 살아남고 도리어 제압을 합니다. 그 상황에서 장청이 자신의 사연을 밝히고 나는 비록 이런 악당이지만 호걸을 우대한다 하자 무송이 그 들을 풀어주고 인연을 맺습니다.(....)


잘 이해가 안되시는 내용일지 모르니 양산박이 인재를 스카우트 하는 공식을 볼까요? 


1. 약탈하는 놈을 만난다. -> 나만 안 털면 오오 님도 호걸이군요 -> 이런이런 사정이 있는데 사회가 우릴 안받아줘요 징징징 -> 그럼 양산박으로 갑시다


2. 쓸만한 놈을 만난다 -> 상대의 의중은 무시하고 회유 협박 공작 등을 행한다 -> 그럼 양산박으로 갑시다.


현대로 말하자면 지존파가 100명 넘게 있는 샘입니다. 즉 그 들의 행태가 결코 선량하거나 일반적이다 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지요,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볼까요?


주동이란 남자는 원래 관청의 절급이었는데 뇌횡이란 남자가 다소 안되게 잡힌 것을 안타까워해 일부러 놓아주어 그 죄 때문에 귀양을 가게 됐습니다. 


귀양을 갔는데 주동 생긴 게 호걸답게 생겨서 (묘사한 거 보면 대춧빛 같은 얼굴에 수염이 배까지 늘어진 네 관우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곳 지부가 주동을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지부의 어린 아들도 주동을 마음에 들어했죠. 그러다가 어느 날 주동이 지부의 아들을 데리고 강에 갔는데 그 즈음에 뇌횡 및 다른 자들이 나타나서 양산박으로 주동을 포섭하려 듭니다. 


주동은 자기는 일 년 반만 있으면 귀양살이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 양민이 될 수 있다고 거절하는데, 거절하고 보니 지부의 아들이 안 보입니다. 지부의 아들이 인질 된 셈이라 성 밖으로 나오는데 보니 결국 지부의 아들은 죽어버렸습니다. 


누가 죽였나 봤더니 이규란 놈이 도끼로 머리를 쪼개 죽여버렸지요. 그래서 주동은 돌아갈 수가 없게 돼버려서 양산박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규는 그로 인해 어떤 벌도 안 받습니다.



....대체 누가 호걸이고 영웅이라는 걸까요, 따지고 본다면 조정에서 이 들을 극도로 싫어하는것은 매우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연쇄살인마는 기본으로 들어가는 100명이 넘는 범죄자 집단이 국가에 항거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 들은 결코 선인이나 당시 일반적인 사회상, 윤리 도덕적 의식을 표출하는 집단은 결코 아닙니다.




6. 그렇다면 중국의 식인은 가짜인가?


아닙니다. 식인은 실제로도 상당히 많이 있었고 어떻게 본다면 매우 당연한 수순이지요, 수없는 전란으로 사회 인프라가 마비되며 각종 재해로 식량수급이 두절된 사회에서 인육 섭취는 빈번하게 자행되었습니다.


그것은 경신대기근을 비릇한 자연재해와 격렬한 전란을 겪어온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이며 전 세계 인류가 문명을 구축한 곳이라면 어디나 일어났던 일입니다.


아니 평시에도 종종 일어났던 일로서 조선을 본다면 선조 10년 배가 갈린채 버려진 자들이 산에 있어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가지 못한다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는 인육과 간담을 창질을 치료하는 약재로 쓰기 위해 아이들이나 부녀자들을 납치하고 여행자들을 겁박하여 살해한 이야기입니다. 


비단 선조 10년을 볼것없이 인육이 창질 즉 매독이나 나병과 같이 피부가 곯아들어가는 질병이나 괴질등에 좋다는 미신은 조선 전기에 걸쳐 널리 퍼져있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도 식인을 당연시 했던 또 하고있는 사회적인 바탕을 가진 국가일까요? 그것은 아닐겁니다.


이러한 식인이라는 문제는 중남미의 사례처럼 종교적인 측면이나 오세아니아의 경우처럼 필수적인 식생활, 정치 종교 사회 문화, 개인의 인성 등의 다양한 문제에서 비릇되는 것들을 포함하고 있는것이라는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비단 식인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말이지요,)


이를 두고 문화적인 차이나 당시 시대적인 배경 상황 그들의 정신적인 가치 문제등을 무시하고 민족주의적인 반감에서 비릇되는 무가치적인 비판을 행한다면 그것의 바탕이 되는 정신은 실상 네오나치와 같은 국수주의자들의 그것에 더욱 가까운 것이라는게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바탕 위에서 옳지 못한 그릇되고 잘못된 내용을 가지고 비판하는것은 우리가 극심한 거부감을 표출하고 있는 동북공정이나 대동아 공영권과 같은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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