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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
게시물ID : panic_724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쿠밍
추천 : 17
조회수 : 3143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4/09/04 21:33:40
한낮의 한적한 공원.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와 가끔씩 또각 또각 걸어다니는 직장인들의 구두소리, 모든 것이 평화롭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얼마전에 마련한 아이패드, 그리고 특수펜으로.
원래 취미는 아니었지만 어느샌가 아이패드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일상이자 취미가 되어버렸다. 계속 방법을 강구한 결과 나는 꽤 수준급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저 앞에서 키가 큰 남자 둘이 내 옆을 지나간다. 아니, 지나가려다 발걸음을 멈추고 어깨너머에서 내 그림을 지켜본다.

“영준아. 저거봐라.”

“오오, 잘그리네.”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렸다. 

“저거 괜찮네. 나도 저렇게 그릴 수 있을거 같은데. 아이패드나 살까.”

“뭘 저렇게 그려? 그전에 보니 민수꺼 빌려서 진짜 엉망으로 그리드만.”

“에이, 그건 내가 준비도 안됐고....저사람 봐. 펜으로 그리잖아. 난 그때 손가락으로 그렸고.”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 몰라? 펜이나 손이나 잘그리는 사람은 잘그리는거지.”

“그래?”

“그렇지. 손가락으로 더 잘그리는 사람도 있고.”

“아 손가락 하니까 생각나는데 요즘 이 동네에서 이상한...”

둘은 수다를 떨면서 멀어진다. 남자들의 목소리가 멀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드디어 집중해서 그림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림은 만족스럽다. 내 눈앞에 있던 풍경이 그대로 아이패드 안에 들어와 있었다.

아까 남자들의 말이 떠오른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사실 타블렛에 그릴 때 펜도 손도 최적의 그림도구는 아니다.
펜은 잡기에 편하지만 필압이 좋지 않고, 손가락은 필압이 자유자재지만 세워서 그리기엔 불편하다.

제일 좋은 것은, 펜대 아래 손가락이 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 이것은 버려야겠다. 펜대에서 뽑은 이것은 이미 검붉게 변색되고 있었다.
다른 펜촉을 찾아 나서야지. 나의 그림 실력을 위해서. 

나는 붓을 가린다.
나는 아직 명필이 아니니까.



By 쿠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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