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좋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담긴 그 향긋한 꽃내음이 좋다
여름이 좋다
토독 톡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 슬그머니 올라오는 비릿한 흙냄새가 좋다
가을이 좋다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 앞에서 따사로운 햇볕과 함께 풍겨오는 달콤한 송편 냄새가 좋다
겨울엔, 겨울엔 글쎄
그와 함께였던 겨울엔 바람에 메론 향이 풍겼던것 같기도해
그녀와 함께였던 겨울엔 잊을 수 없는 샴푸 냄새에 취하기도 했었던가
다만 외로히 걷는 이 겨울길은
소복히 쌓인 눈이 얼어
사그락 사그락 내 콧 속을 얼얼하게 찔러대네
익숙하게 외로운 골목을 지나
익숙하게 미끄런 계단을 올라
익숙하게 어지런 복도를 지나
익숙하게 외로운 현관을 열면
아, 홀로라도 찾아와 안기는 겨울의 향기
몇 달째 빨지 않은 신발 몇켤레
몇 주째 감지 않은 나의 며리칼
몇 일째 씻지 않은 냄비 수저통
겨울이 좋다
더러워도 그저 이불 속에 파묻혀 봄을 기다리는, 고린내에 취한
번데기, 나는 겨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