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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요강왕박요
게시물ID : readers_114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릴라콩
추천 : 1
조회수 : 37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1/23 02:37:06
 조정은 골머리를 썩고있었다.
최근들어 정체모를 둔기에 맞아 사망한 사람들이 속출했고 민심이 흉흉해졌다.
모두 머리가 깨져 죽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흉측하여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달걀이 깨지는 모습만 봐도 졸도할 지경이었다.
이상한 것은 피해자들 모두 누군가의 원한을 살 정도로 못된 인물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양에서 요강을 만드는 일을 하는 김씨는 참으로 솜씨가 좋았다. 관청에 불려가 며칠 밤낮으로 요강을 만들어야 할 때는 너무나 힘들었지만 관리들이 혀가 닳도록 요강을 칭찬하였기에 나름 보람이 있었다. 사실 조정에서 그의 요강은 김씨가 아는 것보다 훨씬 유명했다. 당상관부터 당하관까지 집에 그의 요강을 들이지 않은 자가 없었다. 예조판서 허이명은 그의 요강이 마치 금강석처럼 단단하다 하여 '금씨네요강 금강석요강'이라는 시를 지어 내렸다. 김씨의 이름이 강석인 것은 우연의 일치였다.

 김씨가 귀신들렸다는 말이 돌기 시작한 것은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 즈음이었다. 더이상 평판 좋던 그 김씨가 아니었다. 그는 작업장에 틀어박혀 밤낮 없이 요강을 만들었다. 사람은 나날이 말라갔으나 이상하게 요강은 더욱 빛을 발하고 품질이 좋아졌다. 김씨는 요강귀신에 사로잡힌 나머지 평소 사용하던 요강의 뚜껑으로 물을 떠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옆집 사는 아이가 직접봤는데 그 모습이 매우 꺼림칙했다고 했다.
'요강 뚜껑으로 물 떠 먹은 셈'이라는 속담이 바로 여기서 유래되었다.

 김씨의 죽마고우 박씨는 농사꾼으로 이름은 뇨였다. 인생의 대부분을 소작으로 어렵게 살아왔지만 비로소 식구가 먹고살만한 작은 땅을 갖게 되었다. 박씨는 기분이 너무 좋아 밤잠을 설치는 중이었다. '저벅저벅-' 오밤중에 발소리가 들렸다. 박씨는 놀라 문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어 밖을 살폈다. 방문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박씨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허억-"
박씨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봉두난발을 한 김씨가 문 옆에 앉아있는 것이었다.  그의 손에는 요강이 들려있었는데 그 빛깔이 매우 영롱하여 빛을 발하는 듯 했다. 김씨는 박씨에게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하며 일어났다. 그 모습이 기괴하기 짝이없어 박씨는 불안해졌다. 방 안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자고 있었다. 박씨는 몰래 호미를 챙겨 김씨의 뒤를 따라갔다.
김씨는 공터에 멈춰섰다. 그곳은 박씨가 평생을 바쳐 얻어낸 땅이었다. 날이 춥고 연신 바람이 불어대서 나무들은 짐승처럼 울었다. 김씨는 박씨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은 특별한 기운마저 느껴지는 듯 했다. 김씨가 입을 열었다.

"자네는 평생토록 양반놈들 소작이나 하면서 살아왔지. 그런데 이게 뭔가. 자네가 평생을 바쳐 얻은 것이 이 작은 땅덩어리라니 억울하지 않은가!"

바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옴에도 김씨의 목소리는 명확하게 들렸다. 박씨가 뭐라 말할 틈도 주지않고 김씨는 말을 이었다.

"이 세상은 썩었어. 그렇지 않나? 자네나 나나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하지만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우리는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하는 중국을 넘어 계속 가다보면 나오는 곳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요단이라는 강을 건넌다고 말한다네. 죽은자는 작은 배에 생전의기억들을 잔뜩 싣고 출발하는데 그 배는 많은 기억들과 사람까지 싣기에는 너무 작은거야. 그래서 그는 강을 건너면서 기억을 하나 둘씩 강물에 버리지. 강의 반대편에 무사히 도착하면 생전의 기억을 모두 잊은 순백의 사람이 된다네. 그 강의 건너 편은 속세의 고뇌들이 없는 무결점의 세계라고 하더군. 하지만 갈수록 물살은 거세지고 그들은 강을 건너기도 전에 기억들과 함께 강물에 휩쓸리게 된다네. 자네도 이쯤되면 알다시피 강물은 온갖 추잡한 기억들로 가득차있는데 그곳에 빠진 사람은 그 기억들이 뒤섞인 잡스러운 번뇌를 가진 인간으로 또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 거라네. 끔찍하지 않나?"

박씨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네 대체 오밤중에 무슨 말인가? 나는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먹지를 못하겠단 말일세. 날이 추운데 헛소리하려거든 얼른 돌아가시게."

김씨는 박씨 쪽으로 한 발짝 다가서며 말했다.
"그런데 내가 그 강을 건너는 방법을 알고 있거든. 누군가 알려 준 것도 아니고 어느날 갑자기 알게 되었다네. 그리고 그것이 진짜라는 것도 알고 있다네. 그러니까말이야..."
김씨는 손에 들고있던 요강을 내려다 보았다.
"바로 이 요강을 타고 건너면 안전하게 강 건너편까지 도착할 수 있다네."

저 멀리서 까마귀가 울었다. 달은 구름에 가려 지금 빛을 가진 것은 김씨가 가져온 요강밖에 없었다.
박씨가 말했다.
"자네..대체...난 자네의 그 이상한 이야기도 금시초문이고. 나 원 참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사람이 어떻게 요강을 타고 강을 건널 수 있단 말인가?"
김씨는 얼굴에 천천히 미소를 띄며 박씨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퍼억-'
박씨는 힘없이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다음날 때 아닌 눈이 내렸다. 불길한 징조라며 사람들은 수근거렸다. 마침 길을 가던 한 노인이 박씨의 시체를 발견했다. 박씨의 손에는 요강이 들려있었다. 잡풀하나 없이 잘 일궈진 밭은 눈에 덮혀 비단처럼 고와서, 그 가운데를 물들인 붉은 피가 유난스러워 보였다. 검시관들은 요강을 이용한 자살로 사건을 결론지었다. 


 박씨는 검은 강물 앞에 서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배에 자신의 기억들을 싣고 있었다. 그 기억들은 낡고 너덜너덜하고 불쾌한 냄새를 풍겼다. 몇몇 깨끗한 기억들을 싣고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말끔한 옷을 차려입은 누군가가 다가가 그들을 튼튼한 배로 데려갔다. 박씨의 앞에도 작은 배가 있었으나 나무가 오래되어 금방이라도 가라 앉을 것 같아 보였다. 그는 문득 자신이 손에 요강을 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무의식적으로 그 요강을 강물에 띄우고 거기에 올라탔다. 요강은 세찬 물살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저 앞에 강의 건너편이 보였다. 그곳에서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박씨는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해방감을 느꼈다. 쩌적. 불안한 소리와 함께 요강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아마 박씨의 머리를 내리칠때 요강에 금이 간 것이리라. 박씨는 온갖 기억이 뒤섞인 요단강 속으로 가라 앉으면서 속으로 외쳤다.
"김강석 O새끼! 내가 환생해서 기필코 니놈이 이 O같은 요강타고 요단강 건너게 해주마! 꼬르륵" 


조선은 계속되는 전란과 외세의 침탈로 국력이 쇠하였다. 곳곳에서 농민들이 봉기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왕비는 아들을 낳았다. 
아기는 얼굴에 요강을 쓰고 있었다. 모두가 신이롭다 하여 그를 받들었다. 그는 커서 대조선의 왕이 되었으며 신비로운 요강의 힘으로 침략자들을 물리쳐 나라에 전쟁이 없고 백성들은 근심이 없었다. 태평성대는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그가 바로 대조선의 요강왕 박요(薄얇을 박 尿오줌 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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