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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성인용품점
게시물ID : readers_114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릴라콩
추천 : 5
조회수 : 71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1/23 10:13:46
학교를 오가는 길 어느 골목 끝자락에는 성인용품 점이 있었다.
낮에도 밤에도 그 골목에는 빛이 들지 않아서 가게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그곳에 본능적인 호기심을 갖고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그곳 문 앞까지 갔다가 집으로 돌아간 적도있었다. 
그 시도만으로도 나는 주체할 수 없는 흥분감에 사로잡혔었다.

 오늘은 내가 성년이 된 날이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듯 그 성인용품점으로 향했다.
한낮이었는데도 그 골목은 어두침침하기만했다. 그럼에도 나는 왠지 모르게 창피하여 후드를 뒤집어 썼다.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띵동, 차임벨이 울렸다. 옅을 붉은 빛이 감도는 가게 내부는 정말 놀라웠다.

 유독 눈에 띄는 물건이 있었다. 그것은 고급제품 코너에 있었다.
상품 설명을 보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까지 묵묵히 햇볕을 막아주던 보리수 나무로 만든 불경이었다. 
뭔가 이상했지만 중요한 건 깨달음을 얻은 것이지 보리수나무가 아니었다. 

 그 옆에는 예수님이 직접 빚었다는 포도주가 정성스레 포장되어있었다. 
라벨에는 Since B.C 4 라고 쓰여있었는데 내가 영어를 잘 몰라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비타민씨가 풍부해서 시다는 말인가? 

 공자는 말했다. 
'허물이 있다면 버리기를 두려워말라.' 
과연 진열장 한 켠에는 공자가 직접 벗은 허물이 개어져있었다. 
왠지 이건 내 정서에 맞지 않아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특가세일 코너에는 1800년대 조선에 기거하던 화성인이 썼다는 평량갓이 진열되어있었다. 
일반인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의 갓이었다. 
부록으로 '화성인의 조선 삶'이라는 작은 사진집이 딸려있었다.
대충 훑어보니 돼지 잡는 화성인, 곡식이 부족하여 관청에서 곡식을 꾸었으나 모래와 겨가 반이나 섞인 포대를 받고 망연자실한 화성인 등
화성인의 일거수 일투족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개울에서 멱감는 화성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혀있었다. 
나는 그만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주머니를 뒤져보았으나 꼴랑 오천원밖에 없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대부분의 고가제품은 19900원이고 하위라인도 7900원 이상이었기 때문에 
내가 살 수 있는 것은 특가세일코너에서 팔고있는 화성인의 평량갓(과 그의 은밀한 사진집)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저따위 갓 쪼가리나 사려고 십여년을 기다려 온 것은 아니었기에 당당하게 주인아저씨에게 오천원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은 없냐고 물었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 한참 꿈나라를 헤매던 아저씨는 비몽사몽간에 말했다.

"있고 말고."

아저씨는 카운터 뒤에서 주섬주섬 보자기에 싸인 물건을 꺼냈다. 
나는 침을 꼴각, 삼켰다.

"여기 이 물건은 옛날 알라딘이 쓰던 요술램프인데 여기에 차를 끓이면 맛이 기가맥히지 후후." 

"알라딘은 그냥 티비에 나오던 사람 아닌가요? 어릴 적에 자주 본 거 같은데."

드라마였던가, 알라딘의 집에 화려한 양탄자가 깔렸있었던 것은 기억나는데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말하자 아저씨는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왠지 지금 알게 된 듯한 눈치였다. 

 어렵사리 정신을 차린 아저씨는 '그럼 여기 괜찮은 기념품이 있다'며 라면이 잔뜩 말라붙은 냄비 아래 깔려있던 신문지를 한장 빼내었다.
그러고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짠, 종이배를 접어주었다. 

"노아의 방주라네. 오천원만 내고 가져가게나."

나는 오천원을 냈다.
아저씨는 신문지로 만든 종이배를 손수 내 머리에 씌워주며 말했다.

"이 친구 이거 잘 어울리는구만 껄껄껄."

가게를 나오며 나도 모르게 후드를 뒤집어썼다.
후드 속에서 종이배의 뾰족한 끝이 찌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왠지 그저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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