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제 아내는 사람 많은 곳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금 피한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름 휴가도 아직 안갔습니다. 사람 좀 빠지면 갈려고, 9월 말쯤 갈 생각이지요.
며칠 전 그날 밤도 집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 아내가 왕산해수욕장에 가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밤마실, 좋지요. 집에서 왕산해수욕장이 꽤 거리가 있다는 것만 빼면 말입니다.
그래도 아내가 가고싶다 하니, 주섬주섬 옷 챙겨입고 딸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길을 나섰습니다.
날이 더운데도 그날은 해수욕장에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드문드문 있는 정도였지요.
애기띠에 딸을 안고 아내 손을 잡고서 백사장을 걷던 제 눈에, "잔치국수 2900원" 이라는 팻말이 보였
습니다.
면 음식을 굉장히 좋아하는 저로서는,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는 팻말이었죠.
게다가 사람이 가장 배고픔을 느낀다는 시간, 자정무렵.
황급히 아내에게 차에서 내 지갑을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전 딸을 안고 있으니 움직이기가
매우 덥도다! 하는 핑계와 함께 말이죠 :)
잠시간의 실랑이 끝에 - 뭐 그런 거 있잖아요. 니가 가라 내가 갈까 싫다 당신이 가라 뭐 그런 거 - 결국
아내는 같이 가면 될 일을 그런다고 입이 댓발쯤 나와서 지갑을 가지러 갔습니다.
문제는 그때부텁니다.
그 이후의 기억이 없습니다. 아내가 차에 지갑을 가지러 가고나서 땀을 식히려 평상에 앉았던 기억은
나는데, 그 뒤의 기억이 안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생각나는 거라면, 어느 순간 제 품에 잘 안겨있던 딸아이가 벼락맞은 마냥 거세게
울기 시작했고, 그 순간 번뜩 정신이 들었다는 겁니다.
제 딸아이는 집에서는 놀기도 잘 놀고 배냇짓도 잘하지만 밖에 나오면 순둥이입니다. 잘 울지를 않습
니다.
근데 그런 아이가 벼락맞은 마냥 울어제끼는 통에 제가 정신이 들었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제 무릎
가까이 바닷물이 찰랑거리고 있었습니다.
아이 발에 바닷물이 닿아서 울지 않았을까... 하고 지금와서 생각해봅니다만,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게
딸은 이제 생후 6개월이 갓 지난 터라 안았다고 해봐야 발이 제 허리께에 닿습니다. 그것도 뻗어야
닿습니다. 근데 제 무릎께에 찰랑이던 바닷물에 닿았을 리는 없거든요...
아무튼 그렇게 정신이 든 저는 황급히 돌아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 거의 다 나와서 몇걸음만 더 가면 백사장이다 싶었을 때, 뭔가가 제 발목에 감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주 가늘은 뭔가가 제 발목을 휘감고선 놔주질 않았습니다. 딸아이는 울다가 울다가 조금씩 잦아
든 상태였고, 저는 발목에서 찰랑이는 바다에서 엉거주춤 서있는 자세가 된거죠.
식은땀은 계속 흐르고, 발목은 아무리 힘을 줘도 떨어지질 않고, 아주 강하게 힘을 주면 어찌 될
것 같지만 엎어지기라도 하면 딸이 다치니까.
그 때 다행히 저 멀리서 아내가 오더군요. 후광이 보일 정도로 반갑더라구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여보야를 외치며 여기로 좀 와달라고 팔을 휘저었습니다.
아내가 다가와서 제 손을 잡고 낑낑대며 당겼는데, 이윽고 다행히 발목을 감고있던 뭔가가 풀리면서
발이 떨어지더군요.
얼마나 무섭던지.
그리고 그 때, 제 귓가에 희미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딸 참 잘뒀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나지막하고도 비웃음이 실린 것 같은 그런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생생하네요.
아내는 보약이라도 한채 해먹여야겠다고 웃었습니다만, 저는 사실 아직도 그 때 생각만 하면 식은
땀이 납니다. 딸아이가 울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아무튼, 밤에 바다를 가는 건 역시 무섭습니다. 고향이 부산 바닷가라 친구들 몇몇을 바다로 보낸
경험이 있어서, 광안리 밤바다에서 본 것도 있는데 무슨 깡으로 그 시간에 밤바다에서 그러고
있었는지...
글이 참 길어지긴 했는데, 아무튼 조심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밤바다, 운치있고 참 좋지만 항상
조심하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