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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진상들이 늘어나는 현상
게시물ID : phil_80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임오유
추천 : 2
조회수 : 78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1/25 18:49:34
오늘은 해외 직구 사이트의 한국 진상들의 위력에 대한 기사가 있었슴. 

배송주문하고 카드로 결제하고는 배송된거 확인하고 카드 취소 후 아예 카드 자체를 없애버린다거나, 해외직구가 늦게 도착하는거 이용해서 두개 보내게 만든다거나.

그러다보니까 카드사랑 같이 제휴하는 방식을 없애거나, 한국 손님을 안받는 등으로 사이트에서 대처 함.

저번에 외국 휴양지에서 공짜 해변 방갈로를 한국인이 독차지하는 문제 때문에 방갈로를 유료화하거나 출입금지 시켰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이것도 비슷한 문제임. 진상이 끼어들면 결국 애꿎은 다른 이용자가 피해를 당하게 됨.


보험사기의 경우에서, 보험사기꾼의 이익은 다수 보험가입자의 보험금으로 피해 금액이 전가되듯이.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제를 '이익을 위해서는 그정도 얍삽함은 당연한거 아닌가' 라고 생각함. (결국 자기 혼자 약으면 모든 사안에서 이익보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함. 이런 행동, 사고 패턴을 제휴카드 사용, 포인트 적립 같은 제도가 부추겼다고 나는 생각함.)

사실,  보험사기 진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함. '작성내용을 위조해서라도 보험적용 해달라'라고 요구하는 사람들 천지임. 그거 보험사기예요. 라고 하면 쌍소리하고 감.

이런 사람들이 우리 가족이요, 할매 할배 아버지 어머니란거. 


그런데 공동체의 단위를 '사회'라는 관점이 아니라. 친척이나 동네 사람수준으로 줄이면 사람들은 좀 주춤함.

처벌이 아니라 신뢰, 평판이라는 잣대가 가해지기 때문임. 하지만 여기, 동네 사람들이라는 관계의 수준에서는 '왜 그러해서는 안되는가'에 대한 이유가 발생하지 않음.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 수준에서는 어떤 일의 준거가 '남들도 그러는데'  정도임. 작은 공동체 내부에서는 이유같은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음. (내부에서 묵인하기만 하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규칙을 가진 작은 오지 부족들을 생각해보자....)


그러보면 우리가 준거하는 관계의 수위가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과거 지역공동체나 친지 중심의 관점으로 지금, 다원화된 산업사회의 제도를 보고 또 살아가고 있다는거. 지역공동체 수준에서 산업사회로 이행하여 적용 시킬 관계의 미덕, 준거의 원칙이라 할만한게 없슴. 아니, 아예 미덕이 아니라 불공정한 갑을 관계 정도, 아니면 진짜 공동체주의적인 관점에서 직장을 구성함. 하지만 그 중간이라 할만한, 상대가 나와 아무 관계가 없더래도 인간이라면 공정함을 고려해야할 관계의 준거 기준이 없슴. 
그렇기에 사업주들 고용된 사람 급여 깍아먹거나 등처먹는거 진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함. 사업주만 그런게 아니라 정부와 고용 계약관계에 있는 경우도 그런거 같다....

친지나 동네 사람에게는 그렇게 못하거든.

친족이나 자기가 관계된 인맥에 준하는 만큼 사회적인 상황에 대해 신경 쓰는 사람 있을까? 

이 문제는 우리가 사회화 되는 교육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거 같다는 생각이 듬.(현 교육은 외려 경쟁중심이지...사회공동체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생각하도록 하는 방식은 교육과정에서 철저히 결여되어 있슴) 

마트 직원이 이웃이라면 마트서 그렇게 진상 못부릴거임. 안면 없는 사회적 관계에서도 타인이 어떤 조직의 부품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져다줄수 있도록 일깨울 수 있는 단어(호칭)나 행동의 준거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봄.

최근 직원의 감정 노동과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직장(사용자)가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있었슴...하지만 이렇듯 사후 피해보상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어떤 행동 원칙이나 준거가 우선 제시되어야한다는거임. 

그런데 왜 이 지점이 사회를 구성하는 공통된 인식으로서는 아예 결여되어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진상은 계속 생겨나고 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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