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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라 비 앙 로즈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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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희성
추천 : 1
조회수 : 16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09/06/17 16:50:29
* 여러 충고를 듣고, 조언을 듣고, 대대적인 수정작업에 들어가고 싶었고 다시 연재하고 싶었지만-_ㅠ(현재 5화까지 완성된 상태입니다) 학생인 터라, 1학기 기말고사가 발등에 떨어져 바쁜 와중에, 수정작업까지 하기는 벅차고, 그렇다고 너무 시간을 끌면 호흡이 길어질 것 같아 5화까지는 그냥 그대로 올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많이 미흡하지만 즐겁게 읽어주시구요, 6화부터는 조언에 따라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 발전되는 모습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시고 조언남겨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합니다.





LA VIE EN ROSE[라 비 앙 로즈]
Written by. 김희성



3화.

 툭, 투둑 끊기며 떨어지던 빗방울들이 어느새 하나로 이어져 줄기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졌고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중구난방 비를 피할 곳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리고 그것은 윤희와 해준 역시 마찬가지여서 두 사람 역시, 해준의 자켓으로 머리 위를 가린 채 칵테일바를 향해 뛰었다. 다행히 바는 레스토랑에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윤희와 해준은 어느새 흠뻑 젖은 옷의 물기를 손으로 털어내며 안으로 들어갔다.
 칵테일 바는 지하에 위치하고 있었다. 목재로 된 계단을 내려가자 유리를 소재로한 격자무늬의 출입문이 보였다. 내부의 분위기는 전체로 어두웠지만, 테이블 마다 놓여 있는 조명등 덕분에 캄캄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길게 뻗어있는 바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길쭉한 직사각형의 틀로 둘러진 바 안에는 바텐더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인상적이게도 서너명 쯤 되어보이는 인원수 중에 단 한명의 바텐더 만이 여자였다. 윤희는 저도 모르게 그 여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진하지 않은 화장에 단정하게 올려 망으로 정리해 놓은 짙은 흑빛의 머리. 고운 얼굴선을 가진 여자였다. 눈매는 조금 사나웠지만 눈빛이 깊었다. 전체적으로 또렷한 이목구비에, 선이 얇았다. 자신도 모르게 정신없이 그 여자를 눈으로 훑고 있는 새에, 해준은 어느새 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윤희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윤희는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해준의 옆자리에가 앉았다. 윤희가 옆자리에 앉자 해준은 소개할 사람이 있다며 좀 전까지 윤희가 넋을 놓고 보고 있던 여자를 가르켰고, 곧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소예씨.”

 소예. 그것이 그녀의 이름인가 보다. 하고 윤희는 생각했다. 그녀는 해준의 목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보았고 어쩐지 윤희와 먼저 눈이 마주쳤다. 소예는 잠깐 멈칫 하는 듯 보였다가 곧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두 사람에게 인사를 청했다.

 “해준씨 오랜만이네요? 옆의 숙녀분은, 여자친구분이시군요? 반가습니다. 윤소예라고 해요.”
 “아… 네… 저도 반가워요, 홍윤희 입니다…….”

 웃음기가 묻은 상냥한 어투로 건네오는 인사말과 함께 내밀어진 손을, 윤희는 어색하게 마주잡으며 응해주었다. 손가락이 참 얇구나. 뜬금없게도 윤희는 그런 생각을 하며 무의식 중에 시선을 올려 소예를 바라봤다. 소예는 그런 윤희와 눈이 마주치자 그저 싱긋 웃었다. 악의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기분좋은 미소였지만 윤희는 무슨일인지 그 웃음에 마음이 서늘해지는 것 같다. 고 우스운 생각을 했다.
 윤희와 소예가 간단한 인사를 마치자, 해준은 소예와 대수롭지는 않은 내용의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고 윤희는 그런 두 사람을 그저 멀거니 지켜봤다. 풍기는 분위기상, 두 사람이 알고 지낸 시간은 그리 오래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로에게 묘한 편안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라는 느낌이 들어 윤희는 왜인지 조금 불쾌해 졌다. 그렇지만 딱히 내색은 하지 않았다. 해준의 붙임성이야 누구보다도 윤희가 잘 알았고, 사람을 대하는대에 거리낌이 있는 자신과는 다르게 누구와도 쉽게 가까워 지는 서글서글한 성격의 해준이었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해준과 소예가 대화를 나누는 새에, 윤희는 소예를 다시금 천천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저도 모르게 자꾸만 눈길이 가는 얼굴. 가까이서 보니 꽤 앳된 얼굴을 하고 있다. 어처구니 없게도 윤희는 소예의 얼굴을 두고, 전체적으로는 어디하나 흠 잡을 곳 없는 미안인데 유독 눈매가 매서워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윤희는 의도치는 않았지만 남의 생김새에 이렇다 저렇다 토를 달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껄끄러워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다시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해준과 소예는 그다지 특별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아니었으나,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대화를 나누는 내내 서로의 얼굴에 웃음기가 끊이지를 않았다. 윤희는 별 생각 없이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아무런 이유없이 밀려드는 중압감에 그만, 해준아. 하고 두 사람의 대화 중간에 툭, 말을 내던졌다.

 “응?”

 급작스레 이름을 불려진 해준은 어정쩡한 얼굴로 윤희에게 고개를 돌렸고, 윤희는 무례한 일을 저지른 기분이 들어 조금 아차 싶었다. 대화의 맥이 갑자기 끊긴 덕분에 덩달아 소예 역시 조금 어색한 얼굴로 윤희에게 시선을 두었고 어쩐지 윤희는 그런 소예의 눈빛이 따갑게 느껴졌다. 몇 초간의 어색한 공기가 세 사람을 휘감았다. 윤희는 그 무거운 분위기 속에 몸이 꼬이는 것 같이 불편했지만,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소예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시선을 피한 채 손장난만 할 뿐 차마 말을 잇지는 못했다.

 “어머, 그러고 보니 내 정신 좀 봐… 주문 받을 생각도 안하고… 그럼 두 분, 어떤걸로  준비해 드릴까요?”

 윤희가 입도 뻥끗 못한 채 속으로만 어떤 말을 어떤 식으로 꺼내어야 할지 전전긍긍 하고 있을 때 윤희의 표정과 분위기를 재빠르게 읽어낸 소예는 윤희로부터 시선을 거두며 종전의 미소띤 얼굴로 두 사람에게 물었다.

 “난 늘 먹던걸로 준비해 줘요. 윤희 너는?”
 “나? 아 나, 난… 그래! 깔루아… 깔루아 밀크! 참… 소예씨 솜씨 좋다면서요? 해준이가 여기 칵테일 맛이 참 좋다고 하던데… 기대해도 되죠?”

 소예의 기지로 급반전된 분위기 속에서 역시 하루종일 고객을 상대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고 감탄하고 있던 윤희는 갑작스레 날아온 화살에 조금 어색한 투로 붙이지 않아도 될 살까지 붙여가며 말을 늘어 놓았다. 그런 덕분인지 말투에 조금 가시가 베어있지는 않았나 생각했지만 털어 버리고 다만 소예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랬어요? 그다지 자랑할 만큼의 솜씨는 아닌데… 이거, 조금 부담되는 걸요? 특별히 더 신경써서 만들어 보죠 뭐. 그럼, 잠시만 기다려요.”

 소예는 그런 윤희를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약 몇 초간 말 없이 바라보다, 다시 예의 그 악이없는 웃음띤 얼굴로 윤희의 말을 되받았고 곧 두 사람으로부터 등을 돌려 멀어졌다. 그렇지만 윤희의 시선은 여전히 소예에게 머물러 있었다. 윤희는 그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직사각형의 틀로 이루어진 바의 구석 즈음에 다른 바텐더 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자신들에게 내올 음료를 만드는 소예의 뒷모습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서글픔과 초조함을 느꼈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지 문득, 점심에 만났던 미진의 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해준이 말야, 다른여자 생긴거 아니냐구.’
 ‘그저께, 그러니까 목요일에… 오랜만에 동생이랑 명동까지 쇼핑을 나갔었거든. 한참 정신없이 쇼핑을 하다가 목도 마르고, 다리도 아프길래 근처 테이크 아웃 전문점에 들어가서 아이스 커피를 주문해놓고 동생이랑 한참 수다를 떨고 있는데 창 밖으로 해준이가 지나가더라고…….’
 ‘처음에는 혼자인 줄 알았는데 곁에 누군가가 있더라구우, 자세히 보니까 여자였어… 그래서 나는 당연히 너이겠거니 하면서도 뭔가 이상해서 계속 그쪽을 쳐다봤어… 근데 해준이 옆에 있는 여자가 니가 아니라 다른 여자인거야…….’

 윤희는 다시 전보다 더 크게 증폭되어 밀려드는, 불쾌하기 까지한 중압감을 느꼈다. 직감이라는 건 믿을게 못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그녀였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닦달하는 그 중압감에 식은땀 마저 흐를 지경이었다. 윤희는 곧 중압감을 이유로 한 두통까지 느끼기 시작했고, 바에서 조금 떨어져 앉아야 겠다는 생각에 그 의사를 전하려 소예에게 두고 있던 시선을 거둬 옆자리의 해준에게로 돌렸다. 그렇지만 윤희는 첫 마디의 앞글자도 내뱉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해준 역시 소예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입을 다물어 버린 이유는 다만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소예를 바라보는 해준의 눈빛이 그녀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지금의 해준의 눈빛이 무엇을 뜻하는 가를, 윤희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잘 알고 있었다. 윤희는 언제인가 미진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야 홍윤희. 이제 그만 해준이 속 좀 적당히 태우구 해준이 마음, 좀 받아 줘.’
 ‘뜬금없이 그 말은 또 왜 꺼내.’
 ‘너 그거 아니? 해준이가 널 바라볼 때 말야… 그 눈빛이 어떤지…….’
 ‘응? 별로 이렇다 하고 얘기할 건 없는데? 왜?’
 ‘그야 너는 모르겠지… 네가 불편해 할까봐 네 앞에서 만큼은, 그런 건 통 내색을 안하는 애니까… 아마 마주보고 대화를 나눌때라던가 할 때는 다를게 없을꺼야. 근데 내가 얘기하는 건 그게 아냐.’
 ‘그럼?’
 ‘네가 다른 무언가에 열중해 있을 때라든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때의 널 바라보는 해준이의 눈빛을 얘기하는거야.’
 ‘그게 뭐 어떻게 다르다는 건데?’
 ‘뭐 딱 부러지게 단정지어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뭐랄까… 보는 사람의 속까지 쓰리게 한다고 해야 할까? 마음의 심연으로부터 올라오는 모든 감정을 싣고 있는 듯한 눈빛이야… 어느 누가 봐도 차해준은 홍윤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구나… 라고 느낄만큼의 애절하면서도 애정이 듬뿍 담긴… 그런 눈빛.’
 ‘으엑, 뭔지는 모르겠지만 듣고만 있자니 느끼하다 얘.’
 ‘뭐? 느끼해? 도대체 해준이는 너 같은애가 뭐가 좋다고, 그렇게 몇 년씩이나 애를 태우고 있는건지… 어휴…….’
 ‘어어? 정미진, 너 말 다했어?’
 ‘그래 다했다 기집애야! 어휴… 쯧쯧. 아무튼간에 그 눈빛은 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알 수 없어. 아마 넌 몇 십년이 지나도 모를거다 내가 말하는 해준이의 눈빛이 어떤건지……,’

 윤희는 마음이 서늘하게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스스로는 단 한번도 볼 기회가 없었던 눈빛이었지만, 어쩐지 그때 미진이 말했던 해준의 눈빛이 지금 저가 보고 있는 해준의 눈빛과 전혀 다를게 없는,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니기를, 부디 과거의 미진과 나누었던 대화속에 거론된 해준의 눈빛이, 지금 해준의 눈빛과는 다른 것이기를. 윤희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바랐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다시 뜀박질을 시작한 심장을 아니라고 그것과는 다를 거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되뇌며 가라앉히기 위해 애썼다.

 “저기… 해준아.”
 “으응?”

 해준은 윤희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한 듯, 윤희가 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소예에게 고정된 시선을 거두지 않았고 그로 인해 해준은 놀라움과 당혹감으로 윤희의 부름에 답했다. 윤희는 놀라움과 당혹감이 서린 그의 얼굴을 보며 깊은 절망을 느꼈다. 그녀가 그토록 아니라고 부정하며 도망치고 싶은 사실이 어쩌면, 백프로 정확하게 맞아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였다. 그렇지만 윤희는 내색하지 않았다. 다만 해준이 모르게 조금씩 숨을 고르며 심장을 가라앉히는 일에만 급급했다. 그녀의 음성에 실낱같은 떨림이라도 묻혀 나온다면, 혹은 당혹감 내지는 울음기라도 묻혀 나온다면 해준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일은 만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우리, 바 말고 저쪽 테이블로 자리 옮기면 안될까?”

 윤희는 최대한 그녀의 감정이 표나지 않도록 침착하게 한마디 한마디를 뱉었다. 윤희의 물음에 해준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말이 없다가, 곧 고개를 끄덕이고 소예를 불러 그들이 옮겨 앉을 자리를 알려주었다. 윤희와 해준은 가게에서 조금 외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때마침 그들이 주문했던 것이 완성되었는지, 소예는 칵테일 두 잔을 트레이에 받쳐 가져왔다. 두 사람 앞에 칵테일 잔을 소리나지 않도록 나란히 올려둔 소예는 테이블 가장 자리에 있는 조명의 불을 밝혀주었음은 물론이고 그럼 두 분, 느긋이 있다 가세요. 하는 인사말까지 빼먹지 않고 건네고는 다시 둘의 시야 밖으로 사라져갔다. 윤희는 조금씩 멀어지는 소예의 뒷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암담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비는, 여전히 줄기차게 쏟아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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