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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스포 영화 보신 분만)1987과 최규석의 만화 <100℃>
게시물ID : movie_727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jahbulon
추천 : 12
조회수 : 1658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7/12/29 17:02:30
결말부 다량 스포가 있으니 영화를 보신 분만 보세요.



최규석(송곳, 습지생태보고서의 작가)의 만화 <100℃>는 1987과 마찬가지로 6월 항쟁을 다룬 만화입니다. 

제목에 담긴 의미는 물을 계속 끓이다 보면 100도가 되어서 끓어넘치듯이, 사람들의 노력이 계속 더해지다 보면 언젠가 6월 항쟁 같은 일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주제도 이와 같습니다. 

그 전까지는 몇몇 사람들의 작은 노력이지만 결국 만화 말미에서는 경찰이 진압을 못 할 정도로 수 많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고, 마침내 6.29 선언이라는 결과를 얻어냅니다. 마침내 물이 끓어넘친 것이죠.

학생운동을 하던 주인공이 감옥에 갇혔을 때 옆 방의 재야 운동가와 하는 대화를 보면 이 주제가 분명해집니다. 

주인공-아무리 덤벼봐도 소용이 없는 것 같다. 언제 우리는 이길 수 있는가.
재야운동가-물은 백도가 되면 반드시 끓어넘친다. 사람도 물처럼 온도를 못 재서 그렇지 백도가 되면 반드시 끓는다. 그건 역사가 증명한다.
주인공-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두렵지 않은가?
재야운동가-두렵다. 다만 지금이 99도겠지, 하면서 계속 끓이는 수 밖에.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이 주제에 영화 <1987>에서 가장 부합하는 인물은 김태리가 맡은 연희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100℃>의 주인공과도 가장 유사성이 깊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연희는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자기 스토리가 있는 여성이면서(1987에서 여성인물이 적은 것에 대해 페미니즘 일각에서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유일하게 허구인 인물입니다.

<100℃>의 남주인공인 서울대 학생 "영호"도 작가가 저 100도의 교훈을 드러내기 위해 설정한 허구의 인물입니다.

이 두 인물은 처음부터 정권에 대한 저항에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물 온도로 치면 냉수 정도일겁니다. 연희는 애초에 저항운동을 "데모"라고 치부하고
영호는 운동을 할 마음은 있지만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합니다. 

그러던 영호는 누나의 질책에 결국 마음을 돌려 6월항쟁이 있기 훨씬 전, 학생운동을 하다 감옥에 끌려가고, 연희는 영화 말미에 6월항쟁이 시작되던 순간 울면서 시청 앞으로 달려갑니다. 

시점의 차이는 있지만 두 인물 모두 100도가 되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최규석의 만화가 수 많은 시민들이 100도가 되어 끓기 시작하는 과정에 집중했다면 영화는 연희라는 허구의 인물(그렇기에 영화를 보는 일반인들이 자기 자신을 투영해 볼 수 있는 인물)에 집중합니다. 처음에 "가족 생각은 안 하냐" "데모는 왜 하냐" 하던 연희가 영화 말미에 시위 대열에 합류하는 모습을 통해 그 시절 일반 시민들이 어떻게 100도가 되어 끓었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게 연희가 영화 속 유일한 허구의 인물인 이유면서 동시에 영화의 중심축으로 기능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그 수많은 시민들의 참가가 없었다면 6월 항쟁은 없었을테니까요. 

영화는 연희가 끓어넘치기까지 가열되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줍니다. 미팅 나간 곳에서 최루탄 가스에 얻어맞고 백골단에게 머리채가 잡히기도 하고, 교도관인 삼촌이 운동권 재야인사를 돕다가 남영동에 끌려가는 일을 겪습니다. 만화 동아리에서 광주학살에 대한 비디오를 보고 충격을 받고 울기도 합니다.(연희는 자신을 동아리에 데려간 남자선배에게 왜 그런 걸 보여주느냐고 화내며 울지만, 사실 그건 그런 일을 까맣게 모르고 살아온 본인에 대한 자책과 사람이 죽는 것을 볼 때 느끼는 본능적인 슬픔의 감정입니다. 이 장면은 <100℃>에서도 거의 똑같이 나옵니다) 

그리고 좋아하던 동아리의 남자선배가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피흘리는 신문 사진을 보고 연희는 마침내 100도가 되어 끓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무작정 거리로 달려나갑니다. 

사실 연희가 민주주의나 호헌, 개헌, 직선제니 이런 단어들은 몰랐을 겁니다. 연희의 대사를 보면 당시 이슈가 되었던 말들은 입에도 올리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알던 사람이 부당하게 다쳐 죽어갈 때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면,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생기지 않았을 그 감정만으로도 싸우기엔 충분하다는 것을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감독이 만화를 어느정도 참고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영화와 만화가 주제의식이나 장면들에서 유사점이 많습니다.(박종철 열사가 고문 당하는 장면은 만화에서 따 왔나 싶을 정도로)

http://www.610.or.kr/board/data/view/76 최규석의 100℃만화는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아리의 남자선배와 관련된 소품으로 영화 속에서 신발이 계속 등장한다는 것, 그리고 그 신발들에 얽힌 이야기를 안다면, 남자선배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처음부터 유추 가능합니다. 만화에서도 이 신발이 등장해서 그 학생이 누구인지 알게 해 줍니다. 이 부분은 감독이 노골적으로 노린 것 같아 불편할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분이 등장할 때 영화관에서 헉 하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울려퍼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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