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간경화로 세상을 떠나신 아빠.
아빠는 마지막 순간, 짧은 유언 한 마디를 남기셨다.
사실 한 달 전부터 봉관
이는 엄마를 찾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와 5년 전 이혼한
뒤, 아이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6년만에 다시 와 보는 외갓집
동네. 그 사이 많이 변했다.
하는 수 없이 외삼촌에
게 전화를 해보는데..
외삼촌과도
6년만이다..
어렸을때는 1년에 한 두번, 잠
깐씩이라도 얼굴을 뵀던 외삼촌.
혹시
엄마 소식을 알고 계시지 않을까..
외삼촌이 엄마의 친동생이
아니었다니.. 믿을 수가 없다.
게다가 외삼촌도 엄마와
연락을 끊은지 오래였다.
외삼촌을 만난 것만으로도 엄마를
찾은 것처럼 들뜬 기분이었는데..
이대
로 외삼촌과도 영영 이별이 될 것 같다.
이젠 엄마와 자신들을 이어주던
유일한 끈마저 끊어져버린 것 같다
외삼촌 말씀대로 엄마를
찾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영원히 엄마를 만날 수
없는걸까. 그럴수록 봉관이는 엄마가 더 보고싶고 그립다.
다음 날 새벽,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갈 준비를 하는 봉관이
아빠가 돌아가시고나서, 그저 아빠
가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두렵고 막막했었다. 그러던
한 달 전부터 시작한 신문배달. 새벽일을 고른데는 이유가 있다.
소년소녀가장 기금으로 매달 30여만원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한 달 생활비로는 턱없이 모자란다.
이마저도 고3인 봉관이가 졸업을 하
고나면, 지원을 받을 수가 없게된다.
고3인
봉관이가 새벽에 신문을 돌려야하는 이유다.
생전에 간판 사업을 했던 아빠, 한
땐 다섯 식구가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아빠의 사업이 어려워
지면서 엄마와 불화가 시작됐고, 결국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그런데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대출금
등 빚 6천여만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달 전 그 빚 때문에 집이
경매될거라는 통보까지 받았다. 하지만 미성년자인 봉관이로써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법적 보호자인 엄마의 승인이 있어야 집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마 동생들에겐 말을 할 수가 없다. 어
떻게든 혼자 힘으로 해결해 볼 생각이다.
부모님의 이혼 전, 다섯 식구가 살았던 아파트.
얼마 전, 엄마를 찾기 위해 주민등록초본을 떼봤다.
그런데 엄마는 무슨 이
유에서인지 여전히 주소지를 옮기지 않고 있었다. 벌써 5년이나 지났는데도 말이다.
엄마와
의 마지막 추억이 남겨져있는 장소. 대체 엄마는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 것일까..
벌써 여러차례 엄마의 초본을 확인
했지만 번번히 허탕치기가 일수였다.
엄마를찾을 때까지는 매주 이 곳에 와서 엄마
의 주소지가 변동이 없는지 살펴 볼 생각이다.
그런데 엄마의 주민등록초본을
받아들자마자 손이 떨려온다.
어떻게 된 일일까.. 엄
마가 불과 5일 전, 새로운 주소로 전입신고를 했다.
초본 상의 주소
는 다가구 주택.
하지만 이미 집 안
은 텅 비어 있었다.
다른 집들과는 달리
문이 굳게 잡긴 한 집.
왜 지난 5년 동안 한 번
도 찾아오시지 않은걸까..
그동안 엄마는 어떻게 변하셨을까
..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할까..
한
편으론 설레고 한 편으론 두렵다.
겨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리는
데 허탈한 마음에 발걸음이 무겁다.
그런 형의 속내를 진
관이는 알 리가 없다.
되려 큰 소리를 치는
형, 오늘따라 이상하다.
어제 가 본 철거지역에 다
시 한 번 가 볼 생각에서다.
오늘은 막상 찾아오긴 했지만 문을
두드려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그런
데...
5년 만에 처음으
로 만나는 엄마
부둥켜 안으며 반겨주실
줄 알았는데...너무나 냉랭하기만 하다.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떻게 찾은 엄마인데 이대로
돌아가면 영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참이나 온 길을 되집어 가보는데..
엄만 아빠와 불화를 겪으면
서 심한 우울증을 앓게 됐다.
지금까지도 약물 치
료를 받고 있지만, 일상생활조차 버거울 정도..
이제와서 아이들의 짐이 될 순 없다.
앞으로 두 번 다신 엄마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분명
히 엄마는 어디에선가 지켜보고 계실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