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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프로파간디스트다.
게시물ID : phil_72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에픽ㅎ
추천 : 2
조회수 : 85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10/29 11:16:13
 
 
 
 
 
 
프로파간다
마음의 정치
 
 
 
긍정도 프로파간다고
부정도 프로파간다고
무심도 프로파간다다.
 
교양도 프로파간다고
교육도 프로파간다고
반항도 프로파간다다.
 
논리학은 하나의 체계이고
논리적인 말은 학습의 결과인 것을 인정하자.
말을 배우지 못하거나, 말을 잘 못하는 아이들은 논리가 엉켜있음을 생각해보자.
가령 전제를 명시하지않고 결과만 툭 던져놓고 나서, 자기 말이 맞다고 우기는 아이들을 생각해보자.
미리 말할 건, '언어'를 쓰는 방법도 학습의 결과인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에 더 자세히 써봄)
 
 
 
 
 
 
그런데
프로파간디스트가 활동하는 방식은 정치적이다.
 
크게 2가지가 있다.
첫째 - 권력정치다.
둘째 - 문화정치다.
 
정치란 표현을 여기선 이렇게 정의한다.
1. 권력을 내세워 사물의 질서를 잡고 유지하고 고정하려는 행위. (내 쪽에서)
2. 권력을 얻게끔 다른 사람들의 동조를 구하는 행위. (다른 사람을 설득시킨다는 표현은 순진한 표현이다. 다른 사람을 동조시키는 게 더 와닿는다.)
 
권력통치
권력을 내세우고
권력에 의한 규범이 나오고
규범에 맞지 않으면 '처벌'로서 질서를 잡는다.
 
간단하게 일상적인 예를 생각해보자
남자와 여자가 썸관계를 탄다.
이 때 여자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연인 사이라면 서로 모든 걸 오픈해야한다고 생각해. (1)
 그리고 남자는 여자를 챙겨줘야 하고, (2) 데이트비용도 남자가 좀 더 내야된다고 생각해. (3)
 여자가 내는 건 좀 아니라고 봐 (여자는 논리를 제시하지 않을 수 있다. 독재이긴 하지만, 이 독재성을 주목해보라. 종종 슬프게도 정치란 정상적인 논리가 아니다.) 나는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주면 최악이라고 생각하고 (4) 헤어져야된다고 봐. (5)"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정치다.
(1) (2) (3) (4)은 규범을 제시한 것이다.
어떤 것을 해야되는지 제시했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대립되는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오픈하지 않으면 안되니, 오픈하지 않는 것-감추는 것-거짓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챙겨주지 않으면 안되니, 챙겨주지 않는 것-관심을 놓는 것-방관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당신이 전화를 먼저 해야한다는 것이고, 당신이 먼저 인사를 하고 웃어줘야 하고 말을 걸어야 된다는 것이다.
싸이 연예인을 생각하라. 그대의 연예인이 되어서 코믹 액션 멜로 로맨스 에로까지 다 해주어란 얘기다. VCS모르겠는가?
 
데이트 비용을 내지 않으면 안되니, 안내는 것-돈 없는 것은 안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영화비도 니가 내야되고, 연극-콘서트 등의 공연비도 니가 내야하고, 커피도 니가 쏴야 되고, 음식도 니가 사야되고
교통비도 니가 내야 되고, 차라리 차를 가지고 와서 나를 데리러 오고 데려다 주고 해야 하고 (기름값)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구체적으로 말하면, 안된다는 것은, 그렇게 할 경우,
나는 너를 만나지 않을 것이며, 만나더라도 살갑게 대해주지 않을 것이고, 다른 남자를 만나겟다는 쪽으로 입장을 돌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처벌로서 가장 강력한 핵심 처벌은 (5)에 해당한다. 너랑 이제 끝이다. 단절.
(인간은 단절. 소외에 굉장히 약하다. 그래서 상대의 권력에 짓눌리는 쪽은 자발적으로 합리화를 하며 동조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걸 받아들이는 쪽도 있을 것이고 (처벌이 두렵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 쪽도 있기 마련이다.
 
먼저 받아들이지 않는 쪽을 말해보자.
이 쪽은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나는 너무 여자가 여자 위주로만 규범을 제시하는 게 잘못되었다고 보며
1. 우선 남자에게도 사생활이 있으며 이것은 선이 있어야 한다.
2. 매번 챙겨주지 못할 수도 있다. 남자가 일을 한다면 그 동안은 여자를 챙겨줄 수 없다. 그 점에 한해서는 여자도 이해해줘야 한다.
3. 데이트 비용은 모두 남자가 부담하는 게 아니라, 더치페이가 기본이라고 본다.
4. 남자가 매번 그 여자만 만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여자를 봐야되는 일도 발생한다. 마음만 주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5. 만약 이 이상으로 과도한 요구를 한다면, 나는 그 여자와 헤어질 수 밖에 없다.
 
잘 생각해보라.
어차피 여자 쪽에서도 자기 신념체계를 남자가 받아들이길 바란다.
그리고 남자 쪽에서도 자기 신념체계를 여자가 받아들이길 바란다.
 
그러나 둘이 동시에 신념체계를 내놓는데, 충돌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돌아서거나, 그 자리에서 서로서로의 카드를 몇 개씩 버리면서 조정을 해내게 된다.
그러나 권력이 너무 세다면 조정은 균형잡히지 않는다. 한 쪽이 한 쪽의 카드 자체를 무력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둘이 너무 기가 세다면 조정은 일어나지도 않는다. 한 쪽이 세든 안 세든 그걸 떠나서, 아예 그 자리를 떠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상적인 상태로 2가지를 꼽는다.
이렇게 대립되는 상태와 서로 아예 항목이 딱 맞아떨어지는 게 이상적인 상태일 것이다.
굳이 상반되는 두 경우를 이상적이라고 한 데에는 '이상적이다'라는 표현 자체가 정치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놓은 것이다.
 
두 쪽이 대립되는 것이 이상적이고 (조정이 일어나고,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균등한 배분이 시작된다는 데에서)
아예 서로 항목이 맞아떨어지는 것이 이상적인 것이다. (어차피 조정을 했다면 그렇게 귀결되었을 것이므로, 서로가 서로 요구하는 상태에 맞아떨어진)
 
 
 
근데 잠깐
당신에게 테스트를 해보자.
'이상적이다'라는 말은 이상적인 것을 말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당신은 표현에 낚이면 안된다.
이 '이상적이다'라고 한 표현에 낚여선 안된다는 것이다. 왜? 이 표현을 지금 누가 썼는가? 내가 썼다.
'내가' 이상적이다고 표현했지, 이상적이다가 이상적이라고 표현한 적이 없다. 그러니 이것도 나의 프로파간다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내가' '이상적이다'고 한 표현에 대하여,
'나의 관점'에 대해서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감정적으로 오버하면서, 논리없는 권력을 내세워선 안되고, 논리를 제시하면서 권력을 표해야 한다.
* 최악의 상태는 논리없이 권력을 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위의 이상적인 상태가 가능하지 않다.
조정할 것도 없으며, 요구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위의 경우는 정당한 경우를 말한 것이지만, 아마 살면서 이런 경우를 마주하기 보다는
부당한 경우를 더 많이 접하게 될 것이다.
 
여자와 남자를 다시 예로 들어보자.
여자가 이렇게 말한다.
"더치페이라니? 그런 건 한국에서 있을 수가 없어. 다른 커플들을 봐. 누가 더 돈을 쓰는지 보라고. 왜 그렇게 무능력하게 말을 해?"
"그리고 오픈을 하지 않겠다니? 그럼 나한테 거짓말을 하거나, 다른 여자를 몰래 만나는 걸 어떻게 알아? 그걸 용인해달라는 거잖아?
 그냥 믿으라고? 내가 안 믿으면 안 믿는다고 믿음이 없다고 말할려고 그러지? 차라리 그런 가능성을 없애야 한다고 봐. 그렇지 않으면 사기치는 거야.
그리고 나를 챙겨주는 건 당연한 거야. 그럼 우리가 왜 만나야 되는거야?
너 나를 싫어하는 구나? 아니면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거야 그렇지?"
 
남자가 다시 반박한다.
그러나 여자가 이렇게 단정짓는다.
"난 니 말 듣기 싫어. 결국 넌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거잖아.
 니 말을 들어달라는 건, 결국 내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거잖아."
 
 
 
당신은 이제 정당한 조정도 되지 않고, 요구도 맞지 않다는 걸 확인한다.
당신이 쿨하다면, '쫑내자'하고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겠는가? 협상결렬인데.
 
그러나 당신은 그게 안될수도 있다.
분명 부당하다. 근데 부당하다 하여 쫑냈다간, 이 만남은 쫑이고, 이제 저 여자도 만날 수 없다.
부당한 건 알겠는데, 저 여자가 감정적으로 좋다. 그리고 헤어지고싶지 않다. 그러면 어떻하겠는가?
 
그렇다고 당신 카드를 계속 우길 수도 없다.
우겼다간 여자는 헤어지자고 하고 나갈 것이다.
당신은 부당할 것이다. 이렇게 당신 위주가 아닌 것으로 통제된 상황에 놓이다보면
인간은 종종 환상에 빠진다. 이런 부당함을 환상속에서 역전을 시켜서, 통쾌하게 해결하는 드라마를 펼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잠시간의 쾌락이다.
당신은 다시 마주하게 된다. 족쇄가 걸리고, 데드라인 숫자가 점점 내려가기 시작한다.
당신이 생각하든 말든 뭘 하든 말든, 그 여자는 그 여자 나름대로 답이 급하다. 당신에게 대답을 들어야 한다.
만약 당신이 대답을 안한다? 그러면 여자는 가버린다.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는 건 대응하지 않겠다는 의사이므로, 받아들이지 않는것으로도 해석이 된다.
 
어쨌거나 이 경우 당신을 기다려줄 이유도 별로 없다.
당신은 당신 위주로, 또는 당신에게 좀 시간이 필요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건 당신의 입장일 뿐이다. 그녀는 당신을 기다리지 않을 수 있다. 심지어 이 대답을 기다리는 것부터가 어이없는 것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상황이 총체적 난국으로 빠졌다고 해보자.
이 경우 종종 남자들은 협상을 쫑내고 나가기도 하지만,
 
스스로 카드를 바꾸기도 한다.
즉 권력의 요구에 맞게 (요구하는 질서에 맞게) 자신을 재단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 몸이 침대에 맞지 않으면 내 몸을 자르는 것이다. 내 몸이 엔진 밑칸에 들어갈 수 있다면, 들어가는 것이다.
왜? 전체가 요구하는 거니까. 아니 그녀가 요구하는 것이니까. 그녀와 내가 잘되기 위해서면 이런 역할의 수용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겠는가? 질서를 위해서라면 그렇게 해야하지 않겠는가? 아니 더 정확히 말해보면, '여자'의 허락을 받기 위해선 이렇게 해야하지 않겠는가?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녀는 가게 될 것이고, 나는 이제 그녀의 몸, 입술, 목소리, 살가운 인사, 손, 연결을 맞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아픔으로, 충격으로, 후유증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할 것인가?
 
조정하던가
요구를 맞추던가
해야하는데, 조정은 쫑났고, 요구도 일방적이다.
남는 건, 당신이 맞추는 것이다. 어떻게 하겠냔 말이다.
당당하게 때려치고 나갈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든지 기생할 것인가?
 
 
 
 
 
 
 
 
 
그런데
나는 당신에게 뭘 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알아서 하는 게 맞다. 당신이 좋을대로 하면 된다.
지금 이 문제는 당당함을 요하는 것도 아니며 처세술을 요하는 것도 아니다.
 
왜?
내가 뭐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당신을 선동하게 된다.
당신이 뭐라고 하는 순간, 당신은 선동하게 된다.
저 여자가 뭐라고 하는 순간, 저 여자는 선동하게 된다.
모든 활동은 선동이다. 선동만이 있다.
중요한 건 선동이다. 선동에 초점을 맞추라.
 
 
 
 
 
 
그런데 당신은 동조되던가 안되던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의 동조 여부는 곧 또 하나의 선동이 된다.
 
왜?
어떤 다른 커플의 남자가 비슷한 상황에서 이렇게 결정했다고 해보자.
"그래 니 말에 따를 게. 니가 하고싶은대로 하는 게 맞지. 그게 사랑이지."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될까?
지금 내 앞의 여자는 필시 저것을 '사례'로 쓰게 된다.
"저 커플을 봐. 저 커플 남자를 보라고. 근데 너는 뭐야? ..... 넌 나를 싫어하는구나?"
 
당신은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게 현실 아닌가?
당신이 우기는 순간, 그것은 당신의 '반대입장'을 우기는 것일 뿐이며, 그것은 상대의 '동조'를 요하는 것일 뿐이다.
깨어있자. 이게 맞다. 절대적인 건 없다. 당신은 그저 사례를 쓸 뿐이며, 입장을 표할 뿐이며, 권력실현을 향해서 움직일 뿐이다.
 
부정하는 것도 선동이다.
선동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을 갖지 말고, 선동이야 말로 활동의 본질이라고 여기는 눈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절대적인 어떤 것, 또는 '도덕'에 기대게 된다.
 
그러나 '도덕'에 기대어, 도덕에 입각한 주장을 하는 것도
그 입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려는 '선동'이다.
 
'선동'을 중점으로 보는 게 맞다.
저 도덕, 절대선, 절대진리, 같은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눈속임의, 가장 압도적인 선동재료다.
 
 
 
 
 
 
 
마지막으로
나는 당신에게 주의시킬 게 있다.
 
수행성이란 말이 있다.
이는 당신이 자각하지 못해도 주변의 대상들은 당신에게 영향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간단한 예는 스타와 팬의 관계이고
좀 더 일상적인 예는 뜬금없는 고백의 경우다.
 
어떤 여자가 잘 지내던 친구 남자가 있었다.
근데 갑자기 저녁에 야심한 밤에, 그 친구 남자가 전화가 온다.
술취한 목소리다. 그런데 그 친구 남자가 이렇게 말한다. "나... 사실 널 좋아해왔어."
 
그 여자는 그날 쇼크를 받는다. '이게 뭐지? 얘 왜 이래?'
 
 
 
생각해보라.
그 친구 남자는 매번 그 여자를 생각해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관계가 깨질까봐 티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걸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 남자가 그런 것을 왜 꼭 그 여자가 알아줘야 하는가?
그렇게 매사에 알아야했다간 여자만 머리가 아플 것이다. 게다가 그걸 받아들여야 할 이유도 없잖은가? 선택은 여자가 좋으면 좋게, 안좋으면 나쁘게 하는 것이지.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 여자는 이를 자각하지 못했어도, 그 친구 남자는 이런 상태였다는 얘기다.
이런 빈틈이 있다. 그리고 이런 지각적 역전이 있다. 둘 사이의 전혀 다른 그림이 엮여서 포개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1:1의 경우를 말했지만, 더 방사적인 것이 가능하다. 연예인과 팬의 관계가 그렇다. 연예인 한 명을 두고, 그 연예인은 자각하지도 못하는 팬들이 있다. 지방팬도 있고 해외팬도 있을 것이다. 듣도보도 못한 나라지만 거기에 있는 팬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행동은 그들에게 일거수 일투족 관찰 대상이며, 모방 대상이며, 영향의 원인이 된다. 전파가 된다는 얘기다.
 
 
 
 
 
 
 
당신은 자각하든 자각하지 않든, 프로간디스트이며,
매번 프로파간다를 하는 사람이다.
당신이 동조를 당해도, 그 동조는 당신에겐 동조지만, 다른 사람에겐 선동의 사례로서 쓰이며
또 다른 사람에게 '동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당신도 이제 알 수 있듯이
여기까지가 나의 프로파간다다.
그리고 당신이 '댓글'을 달게 되면, 그것도 프로파간다다.
 
프로파간다 아닌 게 없다. 이것은 관점이므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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