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은 귀하에 대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내사사건에 관하여 문의할 일이 있으니 2009. 6. 8. 10:00까지 당서 수사과 지능범죄수사팀으로 출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요구에 응하지 아니하면 형사소송법의 규정에 따라 체포될 수 있습니다. 2009. 6. 3. 서울서부경찰서"
최근 이 같은 내용의 등기 우편물이 집으로 왔다. 경찰서의 출석요구서를 받아보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14년 전 김영삼 정부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새벽에 형사들이 집으로 들이닥쳐 부모님을 놀라게 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소리 없이 경찰의 요구가 집으로 뻗친 것은 처음이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줄곧 민주주의 후퇴가 무슨 말이냐며 잇따르고 있는 시국선언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항변하고 있는데, 아예 눈과 귀를 닫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의 설명과 사례 나열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 적어도 내게는 민주주의 후퇴가 무엇인지 단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생긴 것이다.
바로 이 출석요구서 때문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별의별 집회 및 시위에 다 참여했지만, 집시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았던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기어이 이명박 정부가 이 기록을 깨뜨려 주었다. 사회당 12년 역사상 현직 당 대표가 경찰의 출석요구서를 받은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홧김에 무슨 몽둥이라도 들고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면 또 모를까, 전혀 짐작 가는 일이 없었다. 올해 들어 경찰에게 그것도 인도에서 맞은 적만 여러 번이고, 기자회견을 한다는 이유로 잡혀갈 뻔한 적만 여러 번이었다.
경찰이 자꾸 괴롭히는 게 귀찮아 어제(17일)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쓰고 나왔다. 예상대로였다. 정말 별 게 아니었다. 경찰은 2월 9일과 2월 21일 살인진압으로 희생된 용산철거민 분들을 위한 추모제 사진을 내게 들이밀었다. 내 얼굴을 중심으로 붉은색 원이 선명히 그려져 있었다. 둘 다 청계광장 옆 인도와 서울광장 인도에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있는 사진이었다.
모두 불법집회였는데, 거기 참석했으니 집시법 위반이라는 논리였다. 나는 추모제가 추모제이지 어떻게 불법집회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인도에 가만히 있는 사람 사진은 대체 왜 찍어댔느냐고 따졌다. 돌아오는 답은 간단했다. "그건 그쪽 주장이죠."
그리고 뜬금없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민주노총이나 촛불시민연석회의에 가입한 사실이 있나요?" 웃으며 답했다. "전 사회당입니다."
사건 담당 경찰이 이번에는 실소를 머금게 한 결정적인 질문을 불쑥 던졌다. "혹시 다음 아고라 회원이세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질문이었다. 작년 촛불문화제가 한창일 때 연행되었던 사람들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며 받았다는 바로 그 질문이다.
작년에 그런 몰상식한 질문으로 경찰이 그렇게 구박을 당했으면, 이제 좀 알아차릴 때도 되었건만, 마치 수사지침에 나와 있는 그대로 질문을 하는 듯 그런 질문을 또 내뱉은 것이다. "아뇨, 전 사회당 대표입니다"라고 건조하게 답하고 이번에는 내가 취조에 들어갔다.
문 : "인터넷 안 하세요?"
답 : "우린 잘 몰라요."
문 : "그럼 제 출석요구서 사회당 홈페이지에 올린 건 어떻게 아셨어요?"
답 : "그건 뭐 그냥 보다보니."
문 : "그럼, 일단 다음 아고라 들어가서 회원가입 한 번 해보세요."
답 : "..."
경찰하고도 개그를 해야만 하는 참으로 민주적이고 웃음이 넘치는 대한민국이다.
출처 : "혹시, 아고라 회원이세요?"-"아뇨, 사회당인데요"
경찰하고도 개그해야 하는 웃음 넘치는 대한민국 -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59240&CMPT_CD=P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