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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4일이 무슨날인지 아십니까?
게시물ID : humordata_7287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초코딸기
추천 : 6
조회수 : 1034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1/02/08 22:35:10
1910년 2월 14일,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시던 안중근의사님께서 사형선고 된 날입니다.
연인들끼리 초콜렛을 주고받는것도 좋지만, 딱 5분만이라도 나라를 위해 몸바치신 선조분들을 생각해보는게 어떨까요?

옳은 일을 짓밟는 것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을 보거든 
구해줄 마음을 가져라. 
그리고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을 때는 
목숨을 던져 나라를 바로 잡는 데 
힘쓰는 사람이 되라.
- 도마 안중근(1879~1910)

 안중근의사의 마지막 순간

"탕탕탕!!!"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만주 하얼빈 역에서 총성이 울렸다.
대한의군 참모 중장, 특파독립대장, 아령지구 군사장인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향하여 쏜 정의의 총성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근대화를 이룬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고
또 초대 내각 총리대신으로 임명된 인물이기도 하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에서는 영웅이지만
대한민국의 측에서는 최대의 원수로 볼 수밖에 없었다.




1905년 조선의 초대 통감부가 된 이토는
조선의 왕실을 모욕하였고 조선 지배 계획을 착실히 수행하였다.
이런 상황에 안중근 의사가 나서서 그를 처단한 것이다.
그는 러시아군에 의해 붙잡혀 일본으로 넘겨졌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괴로운 감옥생활 동안에도 '동양평화론'이란 책을 집필하였다.
또한 그의 곧은 의지는
그를 감시하던 일본인 간수마저 그를 존경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런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당시 만주 철도 이사였던 일본인 다나카 세이타로는
안중근 의사의 인품과 사상에 감동을 받아서 이런 말을 남겼다.
"일본인으로서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안중근은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15분,
안중근 의사는 31세의 젊은 나이에 결국 순국하고 말았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 희생하셨던 안중근 의사.
그런데 여러분들은
아직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저 시체 통 속에 안중근 의사의 통도 있을지...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 안중근 의사의 시체를 찾기 위해
이 곳을 두 번 방문하였고 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안중근 의사의 시체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고 한다.


爲國獻身軍人本分

見利思義見危授命

人無遠慮難成大業

白日莫虛渡靑春不再來


나라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위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

-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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