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어보니 시원한 빗줄기가 내리고 있다. 아무도 없는 건물과 앞에 보이는 앞산과 전주들 지상18층에서 보는 새벽3시의 비오는 날의 전경. 따스하면서도 싸늘한 빗바람에 새벽특유의 서늘함이 녹아든 빗방울이 내 얼굴과 팔을 적셔간다. 마음은 한겨울처럼 차가워진다. 모든것이 잠든 시각에 일어나 세상의 냄새를 맡으니 조금은 살 것 같다.
엄마의 반대로 수현이와 헤어진 지 이제 한 달여가 지나간다. 수현이가 떨어진지는 이주째. 그래. 이렇게 비가 내리는 새벽이었다.
야자를 마치고 수현이는 내 손을 잡고 집쪽으로 데려다 주고 있었다. 때마침 나를 데리러 온 엄마와 마주쳤다. 평소엔 늦게 데리러 오던 엄마가 그날따라 일찍 나왔던 것이다.
고3 수험생이 무슨 연애냐고 엄마는 내 뺨을 때렸고 수현이의 멱살을 잡고 패대기쳤다. 그리고 해서는 안될 말을 했다. 엄마아빠도 없는 고아새끼가 주제에 겁도 없다고. 뒈져버리라고.
그날은 수현이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수현이는 반듯한 아이였고 자기를 키워주시는 할머니께 효도하는 아이였다. 오히려 나같은 삐뚤어진 애보다 더 나은, 내가 더 부족할 지경이었다.
단지 환경 때문에 엄마는 모진 말을 내뱉고 심한 소리를 해버렸다.
그후 난 한달간 학교도 나가지 못했고 폐인처럼 집에서만 공부했다. 학교에는 병가를 냈다. 내신같은건 필요없다며 수능과 논술을 파면 된다고 하면서. 난 씻지도 않고 먹지도 않았지만 엄마는 독하게도 내 앞에 문제집을 쌓아놨고 죽더라도 다 풀고 죽으라고 했다.
울었다. 슬펐다. 결국 그 애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그것이 그 아이에게, 수현이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같은 삐뚤어진 아이는, 삐뚤어진 엄마에게서 키워진 아이는 피해만 줄 거니까.
하지만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수현이는 여렸고, 내가 결별을 선언하기 며칠전 그 아이의 버팀목이 되어주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참이었다. 집에 같혀서 핸드폰도 컴퓨터도 금지당했던 난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수현이는 이 아파트 옥상에서 자살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떨어지는 것을 난 가장 초라하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지켜보고 말았다.
그래 이렇게 새벽 세시. 비가 오는 날이었다.
엄마가 온다. 더이상 싫어. 날 데려가 줘.
수현이가 보고싶다.
위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위를 본다. 무언가 천천히 떨어진다.
수현이의 얼굴이 거꾸로 매달려있다. 왜 우는거니. 눈물이 거꾸로 흐르고 있잖니. 슬로우 모션처럼 오랫동안 떠 있는 수현이의 얼굴을 만졌다. 수현이가 내 팔을 잡는다. 난 그 손을 뿌리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