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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중국 서진 시대의 고전인 수신기에 실려있는 내용입니다.
옛날 중국에 송정백(宋定伯)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밤거리를 걷던 도중에 그만 한 귀신과 마주쳤습니다. 놀라는 와중에도 송정백은 정신을 가다듬고 귀신에게 “당신은 누구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귀신은 “나는 귀신이오.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누구요?”라고 말했습니다. 송정백은 혹시 자신이 사람이라고 솔직하게 대답하면 귀신이 무슨 해코지라도 할까봐 짐짓 자신도 귀신이라고 대답해서 속였습니다.
그러자 귀신은 송정백의 행선지를 물었고, 송정백은 자신이 완시로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귀신도 완시로 간다고 해서, 둘은 함께 동행을 했습니다. 길동무로 귀신을 삼게 되어 송정백은 내심 두려웠지만, 결코 그런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습니다. 옛말에 귀신은 사람의 약한 마음을 파고든다고 했으니까요.
헌데, 둘이 같이 가던 도중에 귀신이 “걷는 속도가 늦으니, 업어주며 걷도록 하자.”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송정백은 그 말에 동의하면서, 귀신의 등에 업혔습니다. 송정백을 업은 귀신이 얼마 동안 걷다가, 뭔가 꺼림직 했는지 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의 몸이 너무 무겁소. 귀신이라면 이럴 리가 없는데…… 당신, 정말로 귀신이 맞소?”
순간 송정백은 자신의 정체가 들통이 난 것 같아서 심장이 오그라들었습니다. 그러나 여태까지 자기가 거짓말을 해서 귀신을 속였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더 큰 곤욕을 치를 까봐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적당한 핑계거리를 내세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나는 귀신이 맞소. 다만 죽은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대가 무겁게 느끼는 것뿐이오.”
송정백의 해명에 귀신은 “그런가?”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충 넘어갔습니다. 그 모습에 송정백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제 송정백이 귀신을 업게 되었습니다. 귀신은 매우 가벼워서 마치 바람을 안은 것 같았습니다. 송정백은 귀신을 업고 밤길을 걷다가 문득 뭔가 생각이 났는지, “나는 귀신이 된 지가 얼마 안 되어서 귀신이 두려워해야 할 일을 잘 모르오. 그대는 나보다 귀신이 된 지가 오래 된 것 같으니, 내 조심스레 물어보겠소. 귀신이 두려워할 일이 무엇이오?”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에 귀신은 “사람이 뱉는 침이오.”하며 알려주었습니다.
그렇게 귀신을 업은 채로 송정백은 길을 걷다가 작은 개울을 만나서, 조심스레 물을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송정백이 물을 건널 때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귀신이 기이하게 여기며 질문을 했습니다.
“귀신은 물을 건너도 소리가 나지 않는데, 왜 당신은 소리가 나는 거요?”
그 말에 송정백은 아까 전과 똑같은 해명을 하며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방금 전에 말했잖소? 나는 귀신이 된 지가 얼마 안 되었다고 말이오. 그래서 물을 건널 때, 소리가 나는 거요. 그 정도는 당신이 좀 이해를 해주시오.”
거짓말도 한 번 할 때가 어렵지, 두 번하면 익숙해진다는 말처럼 송정백은 태연하게 변명을 했습니다. 다행히 하늘이 도왔는지, 귀신은 송정백의 해명을 그대로 믿고 더는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아슬아슬한 순간을 넘긴 송정백은 등과 목덜미에 땀이 흠뻑 흐르는 것을 느꼈지만, 숨을 고르며 계속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귀신과의 기묘한 동행이 한참 계속될 무렵, 어느덧 완시가 송정백의 눈에 보였습니다. 그러자 송정백은 업고 있던 귀신을 둘러매면서 붙잡아 버렸습니다. 귀신은 당황해하면서 “당신은 뭐하는 거요? 어서 나를 내려주시오!”라고 애걸했으나 송정백은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완시로 가서 귀신을 내려놓으니, 귀신은 그만 양으로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송정백은 귀신이 침을 두려워한다는 말을 떠올리고, 귀신에게 침을 뱉고는 다른 사람에게 팔아서 1500냥을 받고는 서둘러 완시에서 달아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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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귀신을 만나 큰 봉변을 당할 뻔했던 송정백은 오히려 목숨도 건지고 돈까지 벌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었죠. 자칫하면 귀신을 놀라게 하여 죽을 뻔한 상황에서 송정백은 침착하고 용감하게 행동하여, 위기를 잘 넘겼던 것입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이 이 경우에 딱 맞습니다.
송정백의 이야기에서, 귀신의 몸이 가볍다거나 물을 건널 때 소리가 안 나야 한다는 대목이 있는데, 이는 고대 중국인들이 귀신을 바람처럼 가볍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유래한 듯합니다. 본래 귀신은 죽은 사람의 혼백이라고 하니, 혼백에 무게가 있거나 소리가 날 리가 없다고 해야 아귀가 맞았겠지요.
출처 | 조선야화/ 도현신 지음/ 매일경제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