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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에게
게시물ID : readers_72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뻐끔붕어뻐끔
추천 : 3
조회수 : 58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5/09 14:00:59

데미안에게


 너는 나에게 데미안이었다. 이 한 문장을 질이 나쁜 종이에 꾹꾹 눌러쓴다. H연필은 진하지 않아서 선명한 자국과 연한 선을 남긴다. 글씨의 진함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연필로 적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냥 둔다. 도구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넘겨버린다.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지친 나에게는 그것이 차라리 편했다. 나의 마음조차 안쓰러워 생각을 둘 곳이 없는데 사소한 것에 신경 쓰기에는 지나치게 의미 없는 일이었다. 다음 문장을 빨리 적어야 했겠지만, 나는 돌연 멈춘다. 어떤 이야기를 써야할지 아직 모르겠다. 차라리 옅은 H연필을 탓하며 이 글을 적는 것을 내일로 미루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그토록 적고 싶은 글이었음에도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찌되었던 H연필을 탓하거나 질이 좋지 않은 종이를 탓하는 방법으로 글을 쓰는 시간을 늦춘다고 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루시퍼가 다시 천사가 되는 일은 없다. 언제든 두 번째 문장을 쓰게 될 시간이 온다면 미래의 나는 다시금 손가락이 굳어버릴 테니까. 나는 어떤 글을 적기 위해 이 글을 남기려고 하는가. 수필로 어딘가에 제출하려는 것인가? 고해성사와 같은 참회인가? 단순한 과거를 회상하는 일기장인가? 이 수많은 감정 사이에서 아직도 나는 표류하고 있다. 표류는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나의 지난 시절에 대한 감정은 아직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했다. 그냥 저 즈음에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 아니면 과거에 대한 나의 감정은 이미 그 어떤 것을 초월해버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조차도 들었다. 초월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너는 이미 인간이라기엔 수상했다.

 나는 좀 더 생각을 했다. 첫 번째 문장은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떠올린다. 데미안. 나는 어째서 데미안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던가. 데미안, 헤르만 헤세의 성장 소설. 인문 고전에 있어서 많이 언급되는 명작. 나는 데미안을 자세히 읽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데미안을 떠올린 이유는 있었다. 데미안은 고등학생 1학년 때, 그 녀석의 손에 들려있었다.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 얇고 그다지 크지 않은 책. 그 사실을 떠올린 순간, 나는 두 번째 문장을 제대로 쓸 수 있었다. 

 데미안은 훌륭하게 나를 매료시켰다. 그것이 좋은 의미의 매료인지, 나쁜 의미의 매료인지 그 당시의 나는 판단하지 못했다. 너를 만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남자라는 생물들은 나이가 적든 많든 한결 같아서 똑같아서 처음 만난 사람들 앞에서는 소위 ‘쎈척’을 한다. 사회에 나가서는 별 의미가 없는 행동이라 크게 드러나진 않지만, 학창 시절에 그 행동들은 꽤 의미가 있다. 나도 고등학생이 막 된 시절, 어떻게 하면 나의 존재를 드러내고 강해보일까라는 생각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같은 반 모든 남자아이들이 다 같은 생각을 하는 동안, 너는 뭔가 좀 달랐다. 잘생긴 외모, 등교에 타고 다니는 차와 가방의 브랜드, 선생님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듯 한 그 모습. 쎈척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사춘기 아이들이 끌리기에는 딱 좋은 아이였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오만한 태도와 이전 중학교에서의 소문들로 다가가는 급우들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오만한 눈빛의 너는 개의치 않았다. 그런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했다.

 내가 너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국어시간이었다. 서로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개학 직후에 있었던 네 번째 국어시간, 5교시 점심시간 바로 후 수업. 모두가 식곤증과 따뜻한 봄 날씨에 졸고 있던 그 시간. 그 시간은 각자 읽었던 인상 깊은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너는 데미안을 꺼내들었다. 네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너의 말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은 참 웃긴 일이다. 지금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끌렸던 것은 그냥 너의 허세였다고 생각한다. 네가 그 때 데미안을 진정으로 다 이해하고 그렇게 이야기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어린 시절, 어려운 말을 하는 것이 멋져 보이는, 그런 멍청하고도 한심한 상상에 내가 빠졌던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너와 친해졌다. 그 국어시간 직후, 나는 너에게 다가갔다. 그 때 너와 어떤 말을 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떤 허세 가득한 말을 했는지, 어떤 멍청한 말을 했는지,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흥분과 함께였던가. 기억은 어디를 더듬어 봐도 그때의 기억은 남아있지 않았다.

 학기 초에 봐왔던 대로, 너는 돈 많은 집안의 자식이었다. 너는 모든 게 쉽고 간단했다. 그리고 나는 너와 함께였다. 너에게는 무용담이 될 그 수많은 일들에 대해 나는 여전히 내가 했던 행동을 생각하고 있다.

 너는 화분을 힘차게 던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악을 지르며 놀라는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쓰러진다. 햇빛이 강해 아스팔트에서 아지랑이가 올라오던 여름이었다. 구름 하나 없는, 전기줄에 새 한 마리 없는 그 아래, 그리고 전봇대 옆, 한창 주소명이 거리명으로 바뀌던 시절, 파란 주소 표지판이 덜렁거리는 그 아래에서. 아주머니는 쓰러진다. 숨은 쉰다. 죽는다는 생각은 데미안과 나 모두 하지 않았다. 그곳은 경기도 부천 원종동 삼작로 423번길. 전봇대에 걸린 그 파란 표지판 아래서 너는 정신을 잃은 아주머니의 지갑을 뒤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나는 너와 함께였다. 알량한 의리의 시작이었던가. 어쩌면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한다는 자존심이 작동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 그놈이 무서웠을 것이다. 무서웠다. 화분을 사람에게 서슴없이 던지던 사뭇 광기에 빠진 모습을 생각해보면, 내 안의 데미안은 묘하게 웃고 있었다. 나를 매료시키던 그 눈동자로 나를 비웃는 듯했다. 나는 이런 존재라고, 그렇게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나를 보며 데미안은 말했다. 시팔, 돈도 없는 년이네. 시팔이라는 단어가 너를 표상하듯 나에게 각인되었다. 입이 거칠지만, 공부는 잘하고, 책은 많이 읽지만, 그것으로 사람을 홀리던 너는, 너는 여전히 나에게 데미안이었다. 부러웠던가? 무서웠던가? 의리였던가? 겁이었던가? 알 수 없다. 지금 이렇게 손을 써서 너의 죄들을 적는 지금 이 순간, 나의 죄를 적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나는 알 수 없었다. 돈을 꺼낸 뒤 지갑을 뜨거운 아스팔트에 던진 뒤, 너는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고 나니 비명을 들었던지, 한 남자가 우리를 향해 뛰어왔다. 너와 나는 놀라서 잽싸게 뛰기 시작했다. 재빨리 옆 골목으로 들어서서, 주차된 차들로 향한다. 큰 트럭 아래로 숨는다. 트럭은 한창 운행했는지 뜨거운 엔진이 나의 살결에 닿았다. 나는 아직도 그 뜨거운 감촉을 기억한다. 그 감촉이 엔진의 온기였는지, 양심의 부끄러움이었는지 나는 지금도 판단하지 못한다. 낯선 남자의 발소리가 멀리 지나가고, 한참 후, 숨을 돌린 너는 말한다. 스릴 쩌네. 담담하게 내뱉듯 나를 보며 씨익 웃는 너는 아직도 나에게 데미안이었다. 열화와 같은 태양 아래, 그렇게 나는 엔진 온도인지 마음의 온도인지 알 수 없는 뜨거움을 느끼며 너의 무용담을 채웠다.

 그리고 십 여년이 지난 아직도, 나는 그 아줌마가 걱정된다.

 너는 당당하게 술을 가지고 들어왔다. 원종동 거리에 있는 한 모텔 안이다. 첫 번째 무용담과 그다지 멀지 않은 때이다. 너는 좋은 것을 가르쳐 주겠다며 늦은 밤 나를 불러냈다. 잠시면 될 줄 알고 편하게 입고 나온 나였지만, 도착한 곳은 빨간 러브 모텔이었다. 나는 당황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뒤엔 너의 말에 웃었던 것 같다. 여자랑 따먹어봐야지, 시팔. 나는 진심으로 웃었던가. 아직도 기억은 나지 않는다. 들어갔더니 중학생으로 보이는 두 여학생과 내가 모르는 고등학교 남학생 셋이 더 있었다. 나와 너까지 총 여덟 명. 네가 술을 사오는 동안 우리는 붉은 싸구려 조명이 비추는 야시시한 방 안에서 서로의 소개를 했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하염없이 여학생 중 한 명의 매끈한 다리만을 보고 있었다. 술을 가지고 돌아온 너는 내 옆에 앉는다. 너는 능숙하게 여덟 명의 사회자가 되어 게임을 진행한다. 10병이 넘는 소주는 어느새 사라졌다. 하지만 남학생들 중 너와 나, 그리고 한 명은 술로 잠들지 않았다. 여학생 둘은 술에 떡이 되어 있었다. 너는 잠든 그녀들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시팔, 하나는 먹을 만하게 생겼네. 데미안이 지칭한 먹을 만하게 생긴 년은 내가 하염없이 보던 매끈한 허벅지를 가진 여자아이였다. 예쁘장한 얼굴에 깨끗한 피부였다. 나는 그녀를 바라본다. 루시퍼는 나에게 물었다. 순둥이 새끼가 아다 땐다니까 좋긴 좋나보네, 시팔. 뭐해 벗겨봐. 나는 머뭇거린다. 이미 성욕에 넘어가려고 하고 있으면서도 무엇이 그렇게 그때의 나를 머뭇거리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하룻밤 성관계에 지나지 않을 그 예쁜 여학생에게 특별한 감정이라도 느꼈던걸까. 너는 나를 병신이라고 비웃으며 소녀의 치마를 내린다. 뽀얀 피부가 보인다. 너는 더 나아간다. 나의 가슴은 두근거린다. 술에 취해있으면서도 소녀는 반응한다. 야하다. 야했다. 그리고, 그리고, 나는 본능에, 그렇게짐승처럼데미안이소녀를범할때함께그녀에게어떠한죄책감도없이핥고범하고윤간하고본능에그렇게내가그렇게방해가되는옷들을찢어버리고술병으로그녀의은밀한곳을찌르고미친듯이웃으며데미안이그렇게 나는 데미안에게 닮아버렸다. 밤 늦게 집에서 나왔기 때문에 걱정할 부모님에 대한 생각은 미치지 않았다. 미친 짐승처럼 사탄이 된 루시퍼처럼 데미안과 나와 다른 남학생 한명은 그렇게 중학생 하나를 먹었다. 데미안이 오크라고 침 뱉은 다른 여학생도 우리는 성교를 했다. 예쁘장한 여학생은 한꺼번에 모든 곳으로 우리를 받기도 했고, 그 뒤에는 하나하나 순서를 정해 침대 방에서 돌아가며 함께했다. 술에 취해서 정신은 없고, 분명 처음임에도 소녀는 우리를 잘 받았다. 그런 일이 마치 꿈처럼 지나갔다. 붉은 싸구려 나트륨 등 아래, 빨간 침대에서 소녀 한명을, 술에 취한채로 윤간하던 그 때는 마치 꿈과 같았다. 현실감이 없어 죄책감이 없었다. 꿈속에서 몽정한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너는 한 달 정도 뒤에 나에게 말한다. 병원 치료 하게 10만원만 빌려주라, 시팔. 너는 성병 안 오디? 시팔, 일주일 전에 떡친 년이 성병이 있었나. 존나 쪽팔려서 어디 말도 못하겠네. 너라서 말한다, 시팔. 아다 떼주니까 좋냐? 나 형님이라고 불러라 시팔. 그러고서 너는 내가 그렇게 짐승처럼 함께 윤간하던 여학생의 모습을, 최대한 자기가 아는 모든 야한 말과 더러운 입담으로 음탐패설로 표현한다. 내가 저랬던가 싶어서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날 생각하면 꼴리지 않냐는 너의 말에 나는 그냥 웃는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라서 웃는다. 미쳐가던, 데미안이 되던 나의 모습이 그랬던가 싶었다. 그리고 나는 친구라는 말에 10만원을 너의 병원비로 주었다. 그게 그놈의 두 번째 무용담이었다.

 나는 술에 취해 신음을 내뱉던 내 아래의 그 소녀를 아직도 걱정한다.

 고3이 되던 때, 너는 학교에 들어오는 신입생들을 보며 웃고 있었다. 어느 학교에서 그렇듯이 눈에 띄는 아이들이 있다. 예쁜 여학생 이야기는 교내 최고의 이야깃거리가 된다. 너는 나에게 말한다. 저년 한번이라도 따먹고 졸업하고 만다. 다른 아이들이라면 흔한 야한 농담이라고 넘길 이야기였건만, 데미안에겐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를 범하고 싶었다. 그 시절의 나는 곧 데미안이었을까. 너와 나는 그녀를 지나칠 때마다 늘 저런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얼마 후, 너는 그녀의 폰 번호를 받았다. 너와 그녀는 사귀기 시작했다. 그녀의 폰 번호를 받는 방법은 간단했다. 내가 귀갓길에 그녀를 강간했고, 너는 그것을 빌미로 그녀를 협박했다. 그녀는 귀갓길에 늘 우리에게 강간당했다. 학교 뒷산에서, 화장실 안에서, 모텔에서, 온 몸 모든 곳으로 우리를 받았다. 그게 세 번째 무용담이었다. 

 나는 아직도 강간당하며 울던 그녀가 걱정된다.

 데미안이 와사바리라는 기술을 봤다며 수시로 나에게 연습을 한일도, 그것으로 내가 괴로워 했던 그 일도, 내 생일선물로 아버지가 사주신 아이리버를 노래 한 번 듣자며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은 일도, 너의 무용담에 등장하는 세 사람만큼 내 마음 속에 남아있지 않다. 남기지 않았던가. 남길 가치가 없었던가. 다른 기억은 이지러지고 남아있지 않았다.

 난 아직도 이름도 모르는 그 아줌마, 그 여학생, 그녀가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 너의 손으로 더운 여름날 쓰러져 있던 아주머니, 너와 나의 몸으로 함께한 소녀, 내가 강간하던 그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모르는 비싼 외제차를 사서 억대의 돈을 들여 튜닝을 했다는 너.  근데 얼마 전 큰 사고가나서 그 차를 폐차 했다고 들었다. 너는 병원을 입원했다고 했고, 비싼 1인실 안에서 아버지가 물려줄 사업들을 돌려보며 잘 지낸다고 한다. 양아치 짓은 여전하고 여자 비서 셋 정도 두고 돌아가며 놀고 있다고, 클럽에서 늘 보인다고, 술을 마시며 나는 너의 소식을 들었다. 그 뒤로 너의 소식은 듣지 못한다. 너는 또 모텔에서 여자와 놀고 있을까. 나이 어린 여자를 강간하고 있을까. 나는 이제 모르겠다.  

 곧 서른이 되는 나는 집도 차도 없이 반 지하 원룸에서 통장엔 모은 돈 하나 없이 스스로에게 남은 것 하나 없이 곰팡이 냄새 풍기고 있다.

 10년 전에 데미안을 내가 보지 못했다면, 난 지금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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