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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문제
게시물ID : phil_72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임오유
추천 : 0
조회수 : 35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0/30 11:37:15
한국 사회가 30년전으로 퇴행하고 있다고들 합니다. 이 현상의 복원력이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가 제도적으로는 서구의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으면서도 그 맥락은 판이하게 서구와 다른 각도에서 파악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위 질문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음....의외로 이 문제 (위 문장)에 관해 검색해봐도 사람들이 별 관심 없는거 같습니다. 

위 문장에 어울리는 가장 대표적인 단어가 '자유'라고 생각함. 
한 단어의 내포에는 화자가 사용하는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고, 또 그 내포들은 서로 상호 참조되는 방식인거 같습니다. 근거가 뭐라고 물어본다면 그냥 제 생각임.  그래서 화자의 내부적인 맥락에서 그 단어를 파악하지 않고서, 그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을 중심으로 화자의 말을 파악하게 되면 내포가 다른 이들 간에는 싸움질 밖에 날 일 없죠. 
이 상황에 대한 이야기 이기도 함. 

우리 사회에서는 공론화되어 사용되는 '자유'란 단어가 구성원의 입장에 따라 다른 내포를 가지고 있슴.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나 '자유전쟁'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랑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쓰는 이 내용도 어느 정도 문제 의식에 관한한 사회 공론화를 목표하고 있습니다. 언어는 소통의 수단이거든요. 그래서 사회구성원들의 내포간에 큰 차이가 없어야 할것입니다. 

많은 단어가 있지만 특히 '자유'라는 단어는 수많은 국가가 개설되면서 내거는 기치이고 개설 투자자인 국민들의 공감대이기도 합니다.
그냥 좋은 말 써서 헌법이랍시고 내걸었다면 스스로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갈것인지 알지 못했던거라고 볼 수 밖에요. 자신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는 넘들에게 일 맡겨버리고 속편하게 살 요량이면 그 나라 사는 사람은 같이 망해먹어도 쌈. 물론 좋은 말 하는 넘들은 눈치가 빠릅니다. 이미 튀고 없지요.....

freedom과 liberty를 구분하는 서구는 인간이 출생에서부터 자유로웠슴을 내겁니다. 리바이어던이나 사회계약론에 나오듯이 개인의 현재 권리 상태에 대한 계량적인 접근을 했슴. 리버티는 사회 계약과 동반되는 정치적인 자유입니다. 계약 해지의 자유도 있고, 이를 위해 저항할 자유가 있지요. 미국에서 총은 계약 해지와 저항을 위해 필요한 도구이기 때문에 총기 소유권을 제한하는게 자유를 막는다는 맥락이 되는겁니다.

그런데 이승만이 건국을 하고 자유당 만들 시절의 '자유당'의 자유는 리버티거든요. 그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자유에 대한 내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그리고 현재 자유라는 단어의 내포를 일반적으로 어떻게 사용할까? 
우리는 흔히 경제적인 맥락에서 '구속이 없슴' 이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유는 정치적인 자유라는 맥락에서 사용되지 않았슴.

법원에서도 종종 그렇죠. 공안 사범을 다룰때 '자유 민주주의 가치'라고 하면서도 자유의 맥락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내부적인 맥락에서 접근하는 내포가 사람마다 왜 이리 차이가 날까? 


첫번째, 근대화의 문제.
근대시절 서구의 문명으로 세계가 완전히 체제 전환을 함. 그런데 레이어만 바뀐 것에 불과하다면?

중국도 민주주의를 고민했고(삼민주의) 일본도 한국도 동북아 삼국이 죄다 마찬가지임.
그런데 외국의 것을 들여오면서 그 내포에 대한 경험은 없었기에 들여온 단어의 해석은 3국의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제각각임.
우리나라는 식민지 시절을 지내면서 근대 서구의 문물을 번역한 일본의 문화어들을 그대로 들여왔고, 이들은 국어사전에도 실려 국어의 옷을 입고 있슴. 사용하는 단어는 번역문으로서, 한자어지만 그 맥락은 서구의 것이 아니다....
근데 일본은 문화어를 구성할 당시 단어의 맥락을 철저히 국가주의적 관점에 입각하여 만들었슴. 

여기에는 개항을 할 당시 일본의 세계에 대한 관점이 반영되어 있슴. 함포에 의해 개항한 일본은 마치 전란속에 버텨온 자신의 나라를 보듯이 세계를 바라다 보았고, 세계속에서 생존을 위해 경쟁적으로 살지 않으면 당시 제국주의하에 있던 다른 식민지 국가들처럼 도태될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이 관점을 사회진화론이라고 하며,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까지 식민지를 거느리던 제국주의 시대에 걸맞는 세계관이었슴. 하지만 마침내 인종주의를 기치로 한 세계대전이 치러지고 전쟁을 주도한 이들이 전범으로 숙청당하면서 사회진화론도 전범의 사상이 되어버림.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겠죠.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라고.)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운좋게 전범 신세를 모면한게 '소위 친일파'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나름 식자층으로서 교육계로 스며들었슴.

둘째, 전달 수단으로서 한자 자체의 문제
법원도 단어의 맥락을 풀이할때 흔히 동양의 고전을 인용합니다만....문제는 그 법이 동양의 법이 아니라 서구의 것이라는데 있습니다. 
가령 철학에서도 '사변적'이라는 단어는 흔히 쓰이는데 그 단어의 영어식 맥락과 동양식 맥락은 판이함. 
그런데 한자는 그 자체가 상형이거든요. 문자가 대상을 그대로 옮겨왔다는 인식을 주는 겁니다. 
동양사람과 서양사람의 인식차를 실험하는데, 결론에서 '서양은 분석을 하고 동양은 전체를 본다'는 말을 하죠....왜냐면 한자는 개별(파트). 개체 수준에서 접근하는 단어가 부족하거든요. 단수 복수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한자어는 상황에 대한 인식 자체를 다르게 만든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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