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식
언론은 우리 경제가 지금 위기에 빠져 있다고 떠든다. 경제학자들 중에서는 총체적 위기를 맞았다고 아우성인 자들도 있다. 그런데 이들이 위기가 어떤 의미인지나 알고 설치는 것일까? '위기'라는 것은 말 그대로 위험한 상태를 의미한다. 붕괴나 파멸 등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나 이 단어를 쓴다. 평상시에 흔히 쓰는 단어는 결코 아니다. 영어의 'crisis'라는 단어는 원래 의학용어로서 '죽음과 회복'을 가르는 중대한 고비를 의미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회복이라는 긍정적인 뜻도 포함하지만, 죽음이라는 최악의 상황도 함께 상정한다. 그러면 우리 경제가 죽음을 상정해야 할 정도로 진짜로 위태로운 상태일까? 우리 경제가 어떤 상황인지, 진단이나 제대로 할 줄 알면서 이들이 떠드는 것일까? 진단은 판단의 전제조건이다. 위기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일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진단은 결코 쉬운 일도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더욱 아니다. 의사가 건강상태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숙련을 거쳐야 하듯이, 경제상태를 진단하기 위해서도 고도의 숙련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언론과 학계의 경제전문가들은 경제진단을 위해서 어떤 훈련을 거쳤을까? 훈련을 거친 경제전문가가 있기나 하는 것일까? 기존 경제학에는 병리학이 없다. 따라서 경제를 진단하는 법도 기존 경제학에는 없다. 진단을 위해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나 공식적인 과정은 전혀 없다. 오로지 개인적인 수련과 연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경제전문가들은 개인적인 수련을 얼마나 쌓았을까? 병리학조차 없는 경제학을 배운 경제전문가들이 경제를 정확하게 진단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경제진단도 없이 무조건 위기라고 외치고 본다. 그 무모함이 놀라울 뿐이다. 물가가 오르면 서민들이 못 살겠다거나 국제경쟁력이 떨어져 큰 일이라고 떠들고, 물가가 내리면 디플레이션이 나타나 국민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져들 것이라고 이들은 떠든다. 환율이 오르면 물가가 비상이라고 떠들고, 환율이 내리면 수출이 큰 일 날 것처럼 떠든다. 블과 2년여 전인 2000년에는 환율이 1,131원까지 떨어졌지만 수출은 20%나 늘었고 국제수지도 122억 달러였다는 사실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지금 현재 환율이 1,200원 대 밑으로 떨어졌으므로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고 떠들고 있다. 국제수지가 한두 달만 적자를 기록해도 외환고갈을 걱정하고, 단기외채가 증가하면 외환위기가 눈앞에 닥친 것처럼 설친다. 그러다가도 국제수지가 흑자를 기록할 때에나, 외채보다는 외화자산이 더 많다는 사실에는 입을 꽉 다물고 만다. 금리가 오르면 기업경영수지가 악화되어 투자는 줄어들 것이라고 떠들고, 금리가 내리면 경기침체의 징후라고 떠든다. 장기금리가 오르면 경기가 곧 침체될 것이라고 떠들고, 단기금리에 비해 내리면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다고 떠든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 건설공황이라고 떠들고,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면 부동산 거품이라고 떠든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주장들을 펼친다. 우리나라 경제전문가들은 경제상황이 바뀔 때마다 카멜레온처럼 변신도 잘한다. 만약 경제위기설이 대두될 때마다 위기가 닥쳤더라면, 우리 경제는 진즉 망가지고 말았을 것이다. 환란 이후 경제위기설은 다양한 형태로 여러 차례 명멸했지만, 우리 경제는 끄떡없이 잘 버텨내고 있다. 우리 경제의 이런 모습을 보면 참으로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입 달린 경제전문가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경제를 저주하기에 여념이 없는데, 꿋꿋이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대견하다, 우리 경제여! 위기라는 진단은 함부로 하는 법이 아니다. 설령 위기가 닥쳤다고 하더라도 의식이 있는 전문가라면, 좀처럼 입 밖에 발설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응책을 마련하여 정책당국에 제시한다. 환자에게 '당신은 곧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함부로 떠드는 의사가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이런 말을 함부로 하는 자는 돌팔이거나 무당이라고 보면 거의 틀림없다. 의사는 환자의 병을 고치는 것을 의무로 한다. 아니, 의사는 환자가 스스로 병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할 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탁월하지 않은 의사일지라도 '곧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은 죽음을 준비해야 할 때에나 한다. 환자가 병에서 벗어나려는 의욕을 꺾어버리고, 이에 따라 인체의 신비로운 능력인 자기면역력과 자기회복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훌륭한 경제전문가는 경제위기설을 함부로 퍼뜨리지 않아야 한다. 반복하거니와, 경제위기설을 무책임하게 떠드는 자들은 얼치기 경제전문가이거나 경제무당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위기란 용어는 매우 자극적이다. 용어가 자극적이면 자극적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외국 대학에서 학위를 땄고 유명 대학의 교수이거나 유력 경제연구소에 소속되어 있으면, 자신의 말에 신뢰가 무조건 주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믿어주면, 영향력은 당연히 커진다. 영향력이 커지면, 권위가 주어지고 권력도 커진다. 경제위기설을 퍼뜨리는 경제전문가들은 스스로 권력이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당들이나 하는 짓이다. 원시사회에서는 무당들이 사회적 공포감을 조성하여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는 문명시대이고 과학의 시대가 아닌가! 그런데 우리나라 경제전문가들은 원시시대 무당들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 여기, 손가락 끝에 작은 상처를 입고 우는 어린아이가 있다. 이 아이를 안심시키고 달래야 할까, 아니면 피가 다 빠져나와 죽게 되었다고 겁을 주어야 할까? 물론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소홀하게 대해서는 안된다. 혹시 동맥이 잘렸다면 과다출혈의 가능성도 있고, 파상풍에라도 걸리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목숨이 위태롭다고 겁줄 필요까지는 없다. 손가락 끝의 작은 상처가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체온이 조금 올랐다고 모두 병에 걸린 것은 아니다. 36.5도에서 36.7도로 올랐다면,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해야 한다. 최고혈압이 120에서 125로 올랐다고 고혈압 환자가 된 것은 결코 아니다. 온동을 조금만 하더라도 이런 정도의 체온상승이나 혈압상승은 흔히 일어난다. 쉽게 말해서, 경제지표의 작은 변화들이 모두 경제위기나 경제파국을 부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성장률이 조금 떨어졌다고 경제위기가 발생한다면, 세상의 모든 나라들은 경제파국을 수시로 겪었어야 했다. 일시적인 경기후퇴는 오히려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실제로 거의 모든 경기후퇴는 곧 회복되곤 했다. 물론, 최근에 우리나라는 환란을 겪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겪어보지 못했지만 세계적으로는 경제공황이 발생한 적도 있었다. 또한 일본은 1990년대이래 장기침체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고 시도때도 없이 경제공황이 일어날 것이라거나, 환란이 닥칠 것이라거나, 일본형 장기침체로 빠져들 것이라는 따위로 위기감을 고조시켜서는 안된다. 실제로 지금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일본형 장기침체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고 용감하게 떠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자들이 일본의 장기침체의 원인과 과정에 대해 괄목할 만한 연구결과를 남겼다는 말을 나는 아직 듣지 못했다. 어떻든, 위험이 닥칠 것이 예견되는 특수한 경우에나 경제위기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 이런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기 전에 반드시 경제진단을 먼저 면밀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경제진단을 위해서는 다년간의 수련을 거쳐야 한다. 아직 경제학계에는 수련기관이 없으므로, 개인적으로라도 훈련을 쌓아야 한다. 이런 훈련을 쌓은 자만이, 경제위기설을 이야기할 수 있다. 자, 경제위기설을 떠드는 경제전문가들이여,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을 진단해 보라. "나는 과연 경제진단을 위해 얼마나 수련을 쌓았는가"를 스스로 돌아 보라. 자신이 과연 경제위기설을 떠들 자격이 있는가 자성해 보라. 자격이 없다면 경제위기설을 앞세워 우리 경제를 저주하는 일을 당장 멈추어라. 당신들의 저주가 오히려 경제위기를 불러올 수 있음을 명심하라. 경제전문가라면 금융공황이 어떻게 벌어지는가를 배웠을 것이다. 예금인출이 사태를 이루면 아무리 튼튼한 금융기관이라도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은 역사가 이미 충분히 증명했다. 그리고 예금인출 사태는 작은 악소문에도 쉽게 벌어지고, 그 전염성이 아주 강하다는 사실 역시 역사가 이미 충분히 증명했다. 경제전문가들이여, 지금 당장 경제역적질을 멈춰라. ------------------------------------------------------------------------------------------------------ 경제전망 '믿거나 말거나' 한은·경제연구소 성장률 ‘관성예측’ 실제와 큰 차 한국은행과 국내 주요 경제연구소들의 경제 전망이 해마다 크게 빗나가고 있다. 한국은행이 28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나오연 의원(한나라당)에게 제출한 ‘1998년 이후 국내 경제 예측기관들의 성장률 전망치와 실적치 비교 자료’를 보면, 98년의 경우 4월 전망에서 한국은행이 -2.0%를 제시하는 등 각 기관들이 경제성장률을 -0.3~-3.1%로 내다봤으나, 98년 실제 성장률은 -6.7%로 큰 차이를 보였다. 99년에는 반대로 각 기관들이 0.2~3.2% 정도로 성장률 전망치를 낮게 잡았으나, 실적치는 10.9%의 고성장을 기록했다. 또 2001년과 2002년에도 전망치와 실적치 간에 차이가 컸고, 올해 역시 연초에는 거의 모든 기관들이 5%대의 성장을 전망했으나, 지금으로 봐선 3% 달성도 위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