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후세계는 세계 어느나라에도 적용된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이 사후세계는 가장 한국적인 사후세계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선생님이 말했다. 평소때는 말끔하게 차려입고 맑은 눈으로 학생을 대하던 선생님이 오늘따라 동태눈알, 상거지꼴이 되서 학생들을 대면했다. 교실의 앞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선생님은 이상한 말로 수업을 시작했다.
"사람은 죽으면 말이지, 저승으로 간단다."
아이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열 살 아이들이 듣기엔 거북한 말이다.
"저승으로 가기 전에 3년동안 누구나 이승에 남을 기회가 주어지거든. 저승으로 가는 건 순전히 자기 마음이야. 저승사자가 데리러 온다고 해도 자기가 가고싶지 않다면 가지 않는거지."
"선생님, 무서워요."
"전혀 무서운게 아니에요. 너희들도 언젠간 죽게 되어있으니까요."
선생님이 기분나쁘게 웃는다. 아이들 몇몇이 눈물을 보인다.
"몰라, 나 집에 갈래!"
"선생님, 도란이가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잖아요! 이제 그만하세요!"
선생님은 기분나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전혀 걱정하지 마세요. 도란이는 그런 나쁜 어린이가 아니니까."
교실 밖으로 뛰쳐나간 아이는 초점이 흐릿해져 교실 안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무엇이 그 아이를 내동댕이쳤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교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다. 창밖은 비바람과 돌풍, 천둥번개가 몰아쳤는데 활짝 열려있는 창문을 통해 그 심상치 않은 기운이 전해졌다. 교실에 내동댕이쳐진 아이의 이마 정 중앙으로 검붉은 액체가 흘러내린다.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른다.
"학교 수업을 땡땡이 친다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았지요? 풋"
이 선생은 미쳤다. 선생님은 눈을 지긋이 감고 말한다.
"수업을 계속하겠어요. 보통 사람들은 3년안에 저승으로 가지만 원한을 가득 품은 혼령이 가끔씩 있어요. 그 혼령들은 영원히 이승에 남아 풀지 못한 숙제를 하려고 들지요. 그들은 원귀, 즉 귀신이 되는 거랍니다. 귀신은 곧바로 양기의 영향을 받게됩니다."
선생님이 눈을 뜨자 교실엔 아이들이 몇몇 남지 않았다. 공포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아이와 실수를 해 버린 아이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재밌군요. 수업 땡땡이치지 말라고 했을텐데."
나는 제일 친한 친구 네 명과 함께 도망가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얼른 복도 끝에 걸린 비상구 표지등을 따라 달려갔다.
"양기를 가득 품은 존재. 그것은 해와 햇빛을 받는 달입니다. 양기에 영향을 받으면 귀신은 자신의 음기가 쇠약해져 지하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지상으로 올라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방송 스피커를 타고 들려온다. 소름이 끼친다.
"도망가는 걸 포기하고 지금 당장 교실로 들어오세요. 해가 지면 우리 친구들은 모두 죽은 목숨이에요."
비상구 표지등의 불이 나가고 창문이 활짝 열렸다. 곧바로 비바람이 몰아쳤다. 깜짝 놀랐는지 수로가 주저앉아버렸다.
"수로야, 일어나! 이러다가 이상한 선생님에게 잡혀가면 어떻게해?"
수로는 대답이 없다. 아니, 의식이 없다.
"진우야 어떻게 해? 나 너무 무서워..."
수로 대신 옆에있던 영희가 말했다.
"햇빛과 마찬가지로 달빛을 받는다면 귀신은 음기를 잃고 추락하죠. 다만 그 힘이 약할 뿐. 그믐날 밤엔 귀신들이 가장 극성을 부리지요."
"꺄악!"
멀리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복도 끝에서 검은 물체가 지나가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쳤다는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그 검은 물체는 내 앞으로 번쩍 다가와 있다.
"얘들아, 도망가야해!"
우리는 필사적으로 음악실로 도망갔다.
"원귀 말고도 잡귀가 있어요. 저승사자는 나쁜일을 많이 한 사람들을 지하에 가둬버려요. 그들은 더 나쁜짓을 하기 위해 하늘의 감시망을 뚫고 지상으로 올라오죠."
음악실에 들어왔다는 것을 후회할 때는 이미 늦었다. 공포영화 배경으로 딱 적당한 곳이 아니던가. 아니나 다를까 피아노가 스스로 작동한다. 놀란 아이들의 입을 틀어막고 태호가 신호를 보낸다. 아이들은 음악실 책상 밑으로 숨었다.
"잡귀들은 사람의 몸을 빌려서 나쁜일을 하려고 해요. 사람이 나빠지는 이유는 다 잡귀가 들려서 그렇답니다."
"흑..."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그 흐느끼는 소리가 너무 애통스럽다. 천천히 흐느끼는 소리에 빠져든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빠져들고 싶다. 서서히 눈이 감긴다.
"우와. 피아노다!"
"그래. 우리 사미가 좋아하는 풍금이지."
"지하에 갇히고도 반성하지 못한 귀신들이 오랫동안 더 나빠지면서 괴물로 변해요. 세속령이라고해요."
"사미야. 공부해야지."
"싫어. 난 피아노가 더 좋아."
"하여튼."
"세속령이 더 나빠지면 마귀가 되요. 수마, 화마. 한 번쯤 들어봤죠? 마귀에요."
"엄마! 이 사람들 누구야?"
"사미야... 미안하다."
"설마, 아빠..."
피아노를 좋아하던 사람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진우야! 일어나!"
아니, 그 사람은 날 깨우다가 멈추고서는 피식 웃었다.
"마귀가 더 나빠지면 묘괴가 되요. 묘괴는 고양이나 개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지상에서 개나 고양이를 귀신들이 무서워하는데, 묘괴는 귀신을 잡아먹는답니다. 묘괴는 또 대별대왕의 애완동물이에요."
"미안하다..."
"엄마가 뭐가 미안해!"
여자의 고운 얼굴이 말라 비틀어지고 흉악스럽게 변한다. 그리곤 날 쳐다본다.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기분이다. 빨리 일어나고 싶어. 빨리! 재빨리 손가락을 움직인다. 희미하지만 분명히 기분나쁜 소리가 들리더니 귀신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수로야."
수로의 이름을 불러본다.
"태호야."
태호의 이름도 불러본다. 점점 심장이 덜컹거린다.
"영희야!"
소리친다. 아무도 없다. 아이들은 날 놔두고 도망가 버렸다.
"대별왕. 억울하게 지하를 다스리게된 왕은 한기가 엄청나 지하의 모든 것을 꽁꽁 얼려버렸답니다. 심지어 자신까지도. 귀신은 차가운 한기를 품고있죠."
조심스럽게 복도로 나아갔다. 또 다시 아까와 같은 경험을 하긴 싫어. 그저 음악실 속에 숨어있고 싶지만, 아니. 어딜 가도 적은 존재한다. 음악실에만 있는 다고 해서, 또 밖으로 나간다고 해서 귀신을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탈출구만 찾고 싶어.
"도깨비는 도깨비 감투같은 장신구를 써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답니다. 다만 도깨비불을 몰고 다니지요."
저 멀리 화재 경보기의 새빨간 불빛이 보인다. 한 점 밖에 되지 않는 불빛이지만 어디라도 의지하고 싶다. 옆에 여자아이가 날 보며 잇몸을 들어낸 채 웃는 게 슬쩍 보인다. 공포에 치가 떨린다. 하지만 무시하고 가기로 한다.
"사람에 귀신이 들린다면 사물엔 도깨비가 들리죠. 도깨비는 사람에게 무해하답니다."
바닥에 하얀 손이 무언가 더듬거리는게 보인다. 그냥 밟고 지나가기로 한다. 그저 화재 경보기의 한 점 불빛만을 따라간다.
"도깨비는 오히려 사람을 도와줄 수 있어요."
천장에 머리만 매달린 시체를 흘끗 봤다. 아직 날 보지 못한 모양이다. 핏방울만 내 이마로 뚝뚝 흘린다. 그 때, 화재 경보기의 빨간 불빛이 갑자기 열어 젖혀진 창문의 강인한 바람으로 꺼져버렸다.
"화재 경보기가 아니였어. 저건..."
"사람도 신수라는 사실을 아나요? 인내천, 시천주. 즉 사람도 하늘의 기운을 갖고 있다는 거죠. 귀신을 퇴치한답니다. 혼자 있을 때 보다 더 등골이 오싹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집안에 혼자 있을 때도요."
"진우야. 들려? 날 따라와."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사람 말고도 신수는 곳곳에 있어요. 까치라던지 호랑이라던지. 개나 고양이도 신수가 될 수 있겠네요."
"진우야, 어딨어? 우리 널 찾고 있어."
태호의 목소리다. 과학실에서 들려온다. 과학실이라니. 너무 진부한 거 아니야? 이젠 속으로 체념했다.
"그런데 호랑이는 조심해야해요."
과학실의 문을 열었다. 어두운 기운이 사방에 가득했다. 문 앞에 손전등이 걸려있어 난 지체없이 손전등을 들어 과학실 내부를 비췄다.
"태호야...? 태호 맞아?"
"호랑이는 착한 호랑이와 나쁜 호랑이가 있어요. 사람을 잡아먹은 나쁜 호랑이. 그것이 바로 장산범이에요."
손전등이 꺼졌다. 그러면 그렇지.
"진우야. 이리와. 모두 널 찾고있었어."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은 영혼이 호랑이에게 잡혀 다른사람을 호랑이에게 유인해요. 욕심많은 호랑이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서죠."
난 과학창고에서 태호를 발견했다.
"태호야!"
그러나 기쁨도 잠시. 태호는 어째 상반신만 남아있었다. 기계적으로 입이 움직이는 태호. 그 뒤로 털이 새하얀 괴물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등골이 오싹했다. 필사적으로 그 괴물로부터 도망쳤다. 가지고 있던 손전등을 그 괴물의 얼굴에 던져버렸다.
"어둑서니를 아시나요?"
공포가 나를 엄습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였다. 10살 어린아이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하반신이 모두 뜯긴 채로 강제적으로 입이 움직이던 태호의 모습은 트라우마가 된다면 트라우마가 될 것이 뻔했다.
"어둑서니는 사람의 공포를 먹고 살아요."
과학실은 1층에 있었다. 그 1층 복도 끝에 마침내 정겨운 사람의 그림자가 도래했다. 내 또래의 어린아이. 제발 이번엔 사람이길 바란다.
"치지직...."
방송이 꺼졌다. 계속 들려오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더 무섭다. 잠깐, 생각해보니 저 선생님은 나에게 힌트를 주고 있었다. 도깨비불하며, 장산범하며, 어둑서니하며. 그러면 이번에 나타날 게 어둑서니? 공포를 먹고 산다고 했다. 침착해야한다. 하지만 사방이 귀신 투성이인데 어떻게 침착할 수 있겠는가.
"진우야."
이번엔 또 뭐야. 정신적 충격이 너무나도 커서 이젠 이름 부르는 게 진부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누구야?"
"나, 재희야."
"재희?"
난 재희라는 말에 의구심을 품은 채 잔뜩 경계했다.
"왜 그래. 네 친구잖아."
재희는 무슨 바람인지 얼굴에 화장을 했다. 초등학생 맞니?
"친구? 웃기지마. 넌 귀신일 뿐이야. 난 이제 안 믿어."
"무슨 소리야. 귀신이라니..."
재희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난... 난..."
얼굴이 찢어지면서 털복숭이 얼굴이 튀어나왔다.
"구미호거든?"
어이가 없었다.
"뭐?"
"난 구미호라고. 나 참. 아무리 간이 고파도 그렇지 저런 어린애를 유혹하겠다고 내가 뭐하는 짓이었는지. 어쨌든 간이나 내 놔."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왜 일까. 지금까지 만나온 귀신들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난 얼른 구미호에게 달려갔다.
"왜 이래. 이거 안놔? 꼬마!"
"무서워요. 저 좀 살려주세요."
"이봐. 나이차가 별로 나지 않아보여도 난 1000년 묵은 구미호라고. 하늘로 가기 위해선 네 간이 꼭 필요해."
난 다리를 붙들고 애원했다.
"이... 이게. 야. 너 구미호 몰라? 간 빼먹는 괴물이거든?"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아휴. 내가 만만하지, 아주?"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지금까지 날 에워쌓던 공포감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아휴. 알았어. 요괴 체면이 말이 아니다. 내가 너 교문 밖까지 데려다줄게."
"감사합니다!"
"일단 내 등에 타."
"네?"
"나 여우야. 몰라? 내 등에 타. 다른 귀신놈들이 널 보면 환장할거야. 저것들은 널 통해서만 현실에서 뭔갈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구미호가 달렸다. 복도를 달렸다. 뒤에서 귀신들이 쫓아온다.
"눈 감아!"
"네?"
"내 목 꼭 잡고 눈 감으라고! 달걀귀신이야!"
달걀귀신. 눈, 코, 입이 없는 귀신. 얼굴을 쳐다보면 바로 죽는다는 무시무시한 귀신 정도는 열 살인 나도 알고 있다.
"아휴 무슨 귀신들이 이렇게 많아? 처녀귀신, 몽달귀신, 객귀, 여귀, 수자령..."
여우가 달렸다. 복도를 달렸다. 그러다가 무언가에 부딪혀 여우가 튕겨나갔다. '끽'하고 신음했다. 눈을 떠 보니 나 보다 더 어린 아이가 서 있었다. 귀신일 줄 알기 때문에 무슨 해코지를 할지 몰라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 때, 아이의 몸이 크게 부풀어졌다. 더 이상 저건 아이가 아니였다. 끔찍한 괴물이였다.
"꼬마! 저 괴물녀석은 무시하고 도망가! 저 녀석은 네 두려움을 먹고 산다고!"
"여우는 안가요?"
"난 괜찮으니 가 봐. 귀신들이 노리는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너야!"
"그래도..."
"빨리 가라고!"
귀신들이 벌써 내 뒤로 바짝 다가왔다. 난 눈물을 머금고 복도를 달렸다. 마침내 복도 문을 열어 재끼고 커다란 단상과 운동장을 맞이했다. 귀신들은 어두운 복도와 달리 흐릿하지만 빛이 있는 밖으로 나오지 못해 머뭇거렸다. 난 안심했다. 그리곤 천천히 교문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교문에 도달했을 무렵, 난 교문의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곳은 모든 것이 얼어붙어있었다. 저긴 선생님이 말했던 지하세계임이 분명했다.
그 때 익숙한 온기가 날 들어올렸다. 선생님이었다.
"이런, 이런. 수업시간에 땡땡이 치다니. 그만한 벌을 받아야겠죠?"
"선생님, 살려주세요. 제발요. 무서워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 잘못을 잊은 건 아니겠지?"
"네?"
"너가 저지른 그 잘못."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너가 모두 죽였잖아. 도란이 교통사고, 수로 살인, 태호 토막살인, 영희 질식사."
생각났다. 난 어른이다. 도란이, 수로, 태호, 영희. 이 모든 사람들은 학창시절 나와는 관계 없는 사람들이다. 모두 내 연쇄살인의 덫에 걸린 사람들이다.
"착하게 살아라."
주변의 모든 것이 희미해졌다. 선생님과 단 둘이 허공에 둥둥 떴다. 새까만 우주 속.
일어나보니 몸에 식은땀이 자욱했다. 악몽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개시를 내렸다. 아니, 선생님이래. 그것은 인간의 탈을 쓴 하늘이다. 하늘이 나에게 개시를 내렸다. 인내천하라. 시천주하라.
그럼 그 구미호는 뭐였을까. 재희라는 사람은 생전 처음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