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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남녀 공학에 합반이었다.
게시물ID : bestofbest_732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행복한그림자★
추천 : 254
조회수 : 69453회
댓글수 : 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2/05/20 16:02:34
원본글 작성시간 : 2012/05/20 11:16:26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남녀 공학에 합반이었다.
작은 마을에 있었기 때문에 전교생이라야 60명 정도였고
유치원 때부터 쭉 같은 반인 애들만 스무 명이 가까이 된다.
물론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닌 애들도 여러 명 있었다.
그래서 우리 반 중학생 애들은 상당히 친한 편이었고
남녀 간에도 딱히 허울 없이 지냈었다.
생각해보면 장난은 많이 쳤지만 모두 순수했고 깨끗한 학교였다.
나에겐 초등학교 삼학년 때부터 짝사랑하던 여자애가 있었다.
원래 기억력이 상당히 나쁜 편이지만 열 살 때에 그 일은 기억난다.
조별과제를 하기 위해 학교를 끝마치고
다른 애들은 왜 없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짝녀(짝사랑하던 여자)와
단 둘이 남아서 큰 하드보드지에 색연필로 이런 저런 것을 했었다.
집중해서 과제를 하고 있는 짝녀의 모습을 보다보니
째깍째깍 시계바늘 소리만 울리는 교실에
내 심장 소리도 콩닥콩닥 울렸었다.
그 이후로 걔는 전학을 갔고, 중학교 일학년 때까지
소식조차 알 수 없었다.
중학교에 올라온 나는 아버지에게 뜬금없는 말을 듣는다.
아버지는 우체국에서 실장으로 일하시는데
우편을 붙이러 온 같은 반 여자애가 아버지를 보더니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전해 달라고 했단다.
뜬금없지만 그 때 그 말을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나는
그저 귀엽다는 생각이 들뿐, 별다른 감정을 못 느꼈었다.
다음 날부터 그 여자 애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유치한 장난을 칠 때도 있었고
고민 상담 같은 진지한 대화를 나눌 때도 있었다.
나에게 말을 걸거나 들을 때는 항상
호기심 어린 눈빛과 조심스런 행동을 했었다.
나는 그게 싫지 않았고 걔를 아껴주었다.
여름이 다가 올 때 한 꿈을 꾸었는데
어두운 밤, 불 켜진 가로등이 비추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내게 짝녀가 다가와서는 곳 보러갈게라는 말을 남겼었다.
얼마 후에 독서실에서 국어 수업을 듣는데
애들이 창문으로 달려가더니 짝녀의 이름을
외치면서 손을 흔들어댔었다.
모든 애들과 선생님도 창문으로 달려갔지만
나는 다시 전학 온 짝녀를 보지 않고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작은 동내이다 보니 서로서로 모르는 게 없었다.
그래서 짝녀와 가까워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도움이 되었던 건, 짝녀와 나를 좋아하던 여자가
단짝이라서 둘이서 놀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사이에 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셋은 항상 같이 밥 먹고
같이 떠들고 같이 공부를 했었다.
짝꿍을 뽑는 날이면 먼저 손을 들고 선생님께
짝녀와 앉게 해달라고 했었다.
글을 적다보며 생각나는 건 나를 좋아하던 애의 표정이
어두웠었다는 것이다.
엄한 선생님과 수업할 때 짝녀가 뜬금없이
책상 아래서 내 발을 밟았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미소 지었고
짝녀는 콕콕 찌르듯이 내 발을 계속 밟았다.
나도 짝녀의 발을 살짝 씩 툭툭 건드리고
그러다 짝녀가 콱-하고 발을 밟으면
아! 하고 소리 지르다가 선생님한테 불려가서
손바닥을 맞았었다.
돌아와 자리에 앉으면 어디선가 손을 간질이는 게
느껴져서 보면 짝녀가 호호하고 손에 바람을 불어주고 있었다.
그리고는 내 교과서에 무언가를 적어주었다.
바보라고 적어주었다.
나도 걔 교과서에 볼펜을 가져다가 ㅋ라고 적어주었다.
짝녀는 ㅋ라고 써놓은 게 귀엽다고 킥킥 웃어댔었다.
얼마 지나니 둘의 교과서는 낙서들로 가득했다.
점심시간에는 밥을 먹고 같이 옥상으로 올라가
따뜻한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고,
수업이 끝나면 교실에 남아서 팥빙수를 먹고,
집에 가는 길이면 학교 담벼락에 서로 낙서를 하고 놀았다.
못난이라고 적고 화살표를 나로 향하게 하자
나는 ㄱ-라는 이모티콘을 적어주면 그게 또 웃기다고
짝녀는 한참이나 킥킥대고 나는 실실 웃어주었다.
수업이 끝나고 폴라로이드를 들고 와서 카툰 형식으로
한 장, 한 장 서로의 모습을 찍어서 하나의 그림책을 만들어
강당에 전시도 하고 했었다.
걔가 속상한 일이 있어 울 때면 손을 얼굴에 갖다 대어
엄지손가락으로 눈썹을 결을 따라 스윽 하고 다듬어 주었다.
그럴 때면 이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미소 지어 주었다.
나를 좋아하던 애의 집은 산골짜기에 있는데
통나무로 된 2층집으로 상당히 예쁜 집이었다.
앞에는 작은 다리와 냇가가 있어서 여름방학이면
짝녀와 함께 걔네 집에 놀러가서 냇가에서 가제를 잡았었다.
내가 도롱뇽을 잡아 짝녀에게 던지면 비명을 지르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 자리에 굳어있기도 했었다.
나를 좋아하는 여자의 어머니는 나를 많이 아껴주셨다.
그래서 상다리가 휠 정도로 진수성찬을 준비해주셨고
내가 먹는 모습을 항상 웃으면서 봐주셨다.
상당히 아름다우셨기도 했다.
그렇게 꿈만 같던 시간이 흘러서 어느덧 중학교 삼학년
겨울 방학이 되어 각자 고등학교 진학을 생각할 때가 된다.
나는 집안 사정 때문에 가까운 고등학교로 가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우리 군에서 가장 질이 안 좋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누구나 그 곳을 스즈란이라고 했었으니.
지금도 누가 학교 어디 나왔냐고 물으면,
중졸이라고 치부하고 만다.
게다가 누나는 동내나 주변 누구에게나 평판이
많이 안 좋아서 나 또한 일반화 되어 어른들에게 눈치를 많이 보았었다.
그 소식을 들었는지 짝녀의 아버지는 짝녀에게
나와 놀지 마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였다.
친구들은 우리가 사귀는 줄 알았고 소문이 퍼져
모두의 귀에 들어갔었으니까.
짝녀는 시골 중학교에서 가기 힘든 엘리트 여고로
가게 되었고 나는 양아치들만 간다는 고등학교로 가게 된다.
내가 가는 고등학교도 남녀공학에 합반이었으니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었다.
졸업식 날, 짝녀와는 단 한마디도 안한 체 홀로 조용히
학교를 나오는데 짝녀가 따라와 인사도 안하고 가는 게 어디 있냐며
나를 다그쳤었다.
나는 짝녀에게 너랑 나랑 어울리면 네가 피해본다.
열심히 공부해야지 나 때문에 괜히 네가 피해볼까 두렵다고
쌀쌀맞게 굴었었다. 짝녀는 한참이나 왜? 라는 말만 계속했고
나는 그냥이라는 말만 되풀이 했었다.
하필이면 그 때 나를 좋아하던 여자애가 후문에서 나오다
우리와 마주쳤다.
그리고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고 시간이 좀 지나자
짝녀는 말없이 돌아서 가버렸다.
나도 말없이 집으로 향하는데 나를 좋아하던 여자애가
조용히 거리를 두고 내 뒤를 따라왔다.
집 앞에서 나는 뒤도 안돌아보고 그 애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가라는 말만 남기고 집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흘러, 흘러 고등학교 이학년 때이다.
나는 한참 철없이 머리를 기르고 붉게 염색하고 다녔었다.
교복도 안 입고 교과서나 필기구, 슬리퍼도 없었다.
보통 열한시가 넘어서 등교하고 하교는 내 맘이었다.
등교도 잘 안 해서 출석일수가 두 자릿수였었지만
안 그래도 자퇴가 많아 학생 수가 부족한 학교입장에서는
학생 한명, 한명이 소중했기에 나를 퇴학시키지는 않았지만
교육원에도 보내고 봉사활동도 시켰었다.
그렇게 바보같이 쪽팔린 짓만 계속 했었다.
여자는 단 한 번도 사귀지 않았다.
그래서 고백은 많이 받아보았지만 모두 거절하기 일쑤였다.
무언가 아쉽지만 맘속에서 우러나는 내키지 않음이 있어서였다.
겨울이 찾아 올 때까지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지만,
짝녀의 폰 번호를 그 때도 지우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
그 날은 비가 와서 학교에 정류장에서 우산을 쓰고 버스를 기다렸다.
대충 시간만 때우고 부모님이 집을 비웠을 때 다시 들어올 생각이었다.
버스가 오고, 나는 관심 없이 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버스에서 짝녀가 내렸다.
앳돼 보이던 소녀가 아닌 성숙한 여자의 모습으로 말이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빗방울 하나하나가 둘 사이를 지나갔다.
그 때 그 기분은 지금은 더 이상 느낄 수 없지만
분명 자취라고 할까, 그 묘한 느낌은 글로 쓰기 힘들 것이다.
잠깐 눈이 마주쳤는데 나도 모르게 획하고 피했다.
발소리가 들리고 내 옆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는 폰에서 진동이 울리고 문자가 도착했다.
짝녀의 이름으로 바보라는 내용의 문자.
중학교 때, 선생님에게 손바닥을 맞고
돌아와 있을 때 내 교과서에 적어준 그 바보.
나는 짝녀를 한없이 바라보고만 싶었다.
고개만 돌리면 되는데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폰만을 바라보며 버튼을 꾹꾹 눌렀다.
분명 빗소리에 묻혀야할 버튼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어색한 이 분위기에 나는 그 소리와 함께 심장 소리가 들린다.
초등학교 삼학년, 조별과제를 하기 위해 둘이
교실에 남았을 때 겪었었던 시곗바늘 째깍거리는 소리와 심장소리.
이번에는 짝녀의 폰에서 문자 알림 음이 울린다.
“ㅋ”
참 멍청하고 어이없는 답장이었지만 잠시나마
중학교 때 우리가 겪은 추억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답장을 보았을 텐데 아무 말이 없는 짝녀가 궁금해서
흘깃하고 눈만 돌려 쳐다보니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는 기분은 느껴본 사람만이 안다.
손을 들려고 하다가 다시 내려놓고
말을 걸려고 하다가 입을 닿고.
바라보려 하다가 바닥만 보고.
결국 짝녀는 우산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엉엉 울었다.
가슴이 미어지도록 서럽게 울었다.
나도 우산을 내려놓았다.
짝녀에 두 손목을 잡고 내렸다.
그리고 한 손을 얼굴에 갖다 대고 엄지손가락으로
눈썹 결을 따라 쓰다듬어주었다.
몇 번이고, 천천히.
짝녀는 목 잠긴 소리로 왜라고 길게 말했다.
나는 조용히 그냥이라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서 기억이나 추억을 생각해보라면
짝녀의 일만이 어렴풋이 생각날 뿐이다.
이제는 과거에 철없던 나는 없지만 그 때 그 행동들은
잊을 수도 없고 지울 수도 없기에
하나, 하나 살아가면서 자신을 다질 수 있는 밑거름으로 생각한다.
지금껏 사귄 여자는 없지만, 매번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다른 이들보다는, 순수했던 사랑을 간직한
나이기에 부끄러울 게 없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못난 내가 상처를 준 짝녀에게.
한 가지 더 이기적인 욕심을 말하고 싶다.
보다 좋은 남자 만나서 잘나고 예쁜 아들, 딸
낳아서 여느 신부처럼 아름답게 살아가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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