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욕구가 극도로 치닫는 극한의 상황에서 쓰는 얼마 되지 않은 2일 전, 2014년 2월 1일 새벽 6시 20분을 다시 곱씹어 보는 뻘글 같은 이야기.
나는 아직 72시간도 채 되지 않은 그 날의 공간, 분위기, 냄새, 나의 1인칭 시점을 모두 기억한다.
2014년 2월 1일 새벽 6시 20분. 지금의 나와 같은 과거의 "나"가 극도로 수면욕구와 피로를 동반한채 범계역에서 사당으로 가기 위해 새벽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나는 지금 자면 분명 사당에서 못 내릴걸 알 면서도 극도로 밀려든 수면욕구와 피로 때문에 나를 내가 제어하지 못하고 결국 자게 되고 그 결과 애초에 생각지도 않은
"혜화" 역에 도착하고 나서야 눈이 떠지게 된다. 누구를 탓할 겨를도 없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왜냐 하면 아무런 생각을 안 하고있었기 때문에 다시 충무로 방향으로 열차를
갈아타게 된다.
일은 내가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얼마 안 떨어진 지하철 역에서 일어났다. 그 당시에도 나는 몽롱한 상태였으며 주위에 사람들은 나이 많은 어르신들 소수만 있었고
밧데리는 3퍼밖에 남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일렉트로닉 음악도 들을 수 없어서 반 정신나간 상태의 지속이었다.
하지만 내가 정신을 바짝차리게 된 계기,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되는 그 사람을 만나고서야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된다.
그는 외국인, 소위 우리가 말하는 "흑형" 이었고 약간 미심쩍고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Excuse me. I want to go this station. Express bus terminal "
왼쪽과 오른쪽 볼에 검은 수염이 나 있어서 얼굴을 더 검게 보이고 검은 비니를 쓴 전형적인 외국인 냄새가 나지만 뭔가 남자의 냄새,
흑인 종족특성 같은 고유의 냄새가 나는 멋있는 흑형은 나에게 고속버스 터미널에 가고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내가 가는 노선 방향은 고속버스터미널로 가는 방향이었고 내가 내릴 목적지는 고속버스 터미널을 지나서 양재역이었기 때문에 3초동안의 정적을 깨고 나는 말했다.
"Ah! let me see.. ah we are going now. I'll let you know when you have to get off. "
흑형은 다행히도 취기와 건조함 때문에 어눌해지고 목이 탁막힌 나의 목소리와 형편 없는 영어실력을 알아들었고 다행히도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했다.
고속버스터미널 역 까진 아직 5정거장 정도가 남았다. 난 이 남자와 적어도 10분이상은 같은 공간에서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을때, 나는 이 남자에게 길을 알려주는 것 말고
왜 한국에 왔는지 관광객인지 갱스터인지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하지만 흑형과 대화하는건 정말 오랜만이기 때문에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2분 10초 정도가 지나 4정거장이 남았다. 난 말했다.
" 4 stations are left "
흑형이 말했다 .
" ah thanks "
내가 물었다.
" are u a tourist? "
흑형이 말했다.
" no, I'm a student "
난 자기가 학생이라는 말에 속으로 뭐!!? 학생이라고? 갱스터 같이 생겼는데.. 라고 생각 했지만 전혀 내색 하지 않고 맞장구를 처줬다. 그리고 물었다.
"so.. where is your last destination?"
흑형이 답했다.
" wonju(원주) "
나는 살면서 강원도에 있는 원주에 가본적이 단 한번도 없다. 하지만 외국인인 갱스터 같이 생긴 멋있는 흑형이 목적지가 원주라길래 내심 놀랐다.
별거 없는 형식적인 대화가 끝나고 어느덧 고속버스 터미널로 도착했고. 흑형은 내릴 준비를 했다. 여전히 영어로 되어있는 서울지하철노선도를 손에 꼭 쥔채.
흑형이 나에게 손 짓으로 이제 가면 되냐고 물었고 나는 눈인사로 대답했으며 말로써 마무리를 지었다.
"Have a nice day"
흑형은 사실 노랗지만, 얼굴색때문에 유난이 더 하얘보이는 이빨을 보이며 웃었고, 두리번 거리며 지하철을 나섰다.
이제 흑형은 다시 한번 길을 해매게 될 것이고 원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어디에서 표를 사야하는지, 그 표를 사려면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자기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덩치큰 흑형이 낯선 이국의 땅에서 낯선 지하철 역에서 태어나서 처음가는 원주를 가기 위해 고속버스 터미널역에서 두리번 거리는 모습을 보고
내가 혼자로써 첫 해외 여행을 갔을때의 내가 생각났다. 난 서울지하철노선도와 비교도 안 되는 도쿄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한참을 기웃거리고 해맸으며, 하네다 공항에서
야마노테선을 타고 신오오쿠보 역을 가는 것 조차도 나에게는 큰 어려움 이었고 도전이었다. 그 곳은 낯선 이국땅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한국어로된 이정표를 보고
나의 목적지를 찾아갔다.
흑형은 한국어 밑에 영어가 적힌 이정표를 보고 목적지를 찾아갔을 것이다. 원주에 잘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갔을 것이고 많은 착오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와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분위기와 시야, 냄새를 공유 했던 그 시간만큼은 어려움과 착오가 없고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난 흑형과 함께 했던 그 시간만큼은 흑형에게 있어 친절한 한국인 이었고, 그 친절함은 흑형의 마음속에 깊이 내려 앉아 단편적인 경험으로 보편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아 한국인은 다 친절하구나! "
타지에 있을때, 그 곳 사람이 아닌 외국인들은 자기가 국가대표 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된 다는걸 스무살때 알게 되었다. 난 흑형이 처음 나에게 말을 걸었던
그 순간, 정적이 흘렀던 3초간, 정신을 바짝차리고 내가 스무살 때 얻었던 깨달음들 중 하나를 생각해내어 나름 최선을 다하여 외국인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그 친절은 호의적으로, 긍정적으로 흑형에게 받아 들여져서 흑형은 이제 한국인은 다 친절하구나 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가질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언제 깨져버릴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랬을 것이다. 그 생각을 흑형 머릿속에 주입시킨 것 만으로도 나의 소행은 끝난 것이다. 외국인에
게 길을 알려줬던 그 사람에게 있어, 낯선 동양인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