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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연재] 혁명가와 황제 - 2
게시물ID : history_139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울리비
추천 : 2
조회수 : 94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2/04 23:26:43
1편 : http://todayhumor.com/?history_13314
2편이 이렇게나 늦게 나와서 죄송합니다^^;;
이번 편은 진지 70%, 개그 30% 정도로 조금 더 진지해졌어요 ㅋㅋ
 
~~~~~~~~~~~~
 
 
1794년 2월 중순의 어느 날, 파리의 한 허름한 술집의 테이블 하나에 필리프 부오나로티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비롯한 젊은 군 하급 장교들과 함께 모여 앉아 있었다. 
부오나로티는 조악하게 인쇄된 책자를 손에 들고 심각한 표정으로 휙휙 빠르게 넘기며 보고 있었다. 보나파르트는 기대와 긴장을 담고 눈을 빛내며 부오나로티를 보고 있었고, 다른 장교들은 부오나로티를 보면서도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며 킬킬대곤 했다.
보나파르트가 조급하게 부오나로티에게 보챘다. 
"아, 내가 파리에 오자마자 너한테 줬잖아! 이미 읽었으면서 왜 또 시간을 끌어?"
"거, 성질 하고는... 좋아, 최종 평가 내리기 전에 몇 가지만 더 묻자. 이 <보케르에서의 저녁 식사(Le Souper de Beaucaire)>, 제목 그대로 네가 보케르에 있을 때 쓴 거랬지? 그런데 너 설마 이거 쓰느라 군인으로서의 일을 게을리 한 건...."
"아니야, 절대! 그, 그냥, 일이 한가하다 보니 시간이 남아서..."
"그으래~?"
"그럼! 내가 보케르에서 한 일이 탄약을 공급하는 수송마차를 지휘하는 일이었는데, 상당히 한직이라서 남는 시간이 많았거든. 남는 시간에 쓴 거지 내가 할 일을 안 하고 쓴 건 절대 아니야! 내가 최고존재(l’Être suprême, the Supreme Being)*의 앞에서도 맹세할 수 있어!"
 
(* 최고존재, 지고의 존재 l’Être suprême : 세계를 주재하는 초월적 존재로서의 이성적 원리라는 이신론적 신 관념. 로베스피에르가 입안하고 주도한, 국민 단합 및 정부 정당화를 위한 이신론 축제인 '최고존재의 제전 Culte de l'Être suprême'으로 유명하지만, 그 전부터 프랑스 혁명가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퍼져 있었던 관념이다.) 
 
"뭐, 그 정도로 맹세한다면야...."
"아, 좀 좋게 봐줘~ 오귀스탱 로베스피에르(Augustin Robespierre, 1763~1794,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의 남동생이자 국민공회 의원) 씨가 날 좋게 봐주신 계기가 그 책자라고."
"헐, '권위에의 호소'라니, '자유와 평등의 벗'인 자코뱅*이 말이야..."
"그, 그런 게 아니라...."
"푸핫, 쫄기는~ 농담이야 ㅋㅋㅋ"
"......"
"그럼 이런 저런 거 다 제쳐두고 이 책자 자체만 보고 평가하자면...."
"응!" 
 
(* 자유와 평등의 벗, 자코뱅 협회 Société des Jacobins, amis de la liberté et de l'égalité : 왕정이 폐지된 1792년 9월 21일부터 자코뱅 클럽의 정식 명칭. 그 전의 정식 명칭은 '헌법의 벗 협회 Société des Amis de la constitution'였다.) 
 
보나파르트가 다시 희망을 안고 몸을 앞으로 굽히며 부오나로티를 바라봤지만,
"별로야."
"...응?"
부오나로티는 그 반짝이는 눈을 마주하면서도 냉정하게 평가를 내렸다.
"이거 내용이 자코뱅파인 군인 하나가 지롱드파 경향의 마르세유 상인을 설득해, 중앙 정권에 대항하는 것이 결국 방데 지방의 반혁명 세력과 공모하는 거라고 결론 내는 거잖아?"
"응... 그게 문제야?"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표현 방식이 말이야, 정치적 메시지를 내세우는 데 급급해서 예술성이라곤 전혀 없어. 게다가 정치적 메시지도 비판적으로 깊이 파고들어서 정당성을 입증하는 게 아니라, 얄팍한 논리로 정당성을 그저 주장하고 상대는 너무 쉽게 납득하는 걸. 짧은 분량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말이야."
"크흑..."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부오나로티는, 낙심하는 보나파르트를 보며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표정을 바꾸어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응?"
"그래도 자코뱅주의에 대한 열정은 대단한 걸? 부족하지만 자코뱅주의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노력도 높이 살 만하고."
"오오, 그럼..."
"지금까지는 보나파르트가 1등!"
"야호!"
부오나로티는 다른 장교들에게 동의를 구했다.
"너희들도 납득하지?"
"뭐...난 그냥 자코뱅주의가 마냥 옳다고만 믿었지 반대 논리를 반박하며 정당성을 입증하려곤 안 해봤으니까..."
"나도 인정. 난 부오나로티 말대로 얄팍하다는 것도 모르겠고 그냥 좋아 보였어."
"쳇, 분하지만 나도 인정."
 
보나파르트가 의기양양하게 승리의 미소를 짓는 가운데, 부오나로티는 마지막 사람에게로 눈을 돌렸다.
"이제 남은 사람은 장 베르나도트(Jean-Baptiste Jules Bernadotte, 1763~1844)뿐이지?"
"후후후, 나의 자코뱅 정신은 그깟 글 속에 있는게 아니라 내 심장 위에 깊이 새겨져 있다고!"
베르나도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뒤돌아 앉아서 꼼지락거렸다.
그러더니 곧 다시 돌아서 벌떡 일어서며 큰 소리로 외쳤다.
"보아라, 나의 공화주의 정신을!"
 
베르나도트는 윗옷을 풀어 헤쳐 자기 가슴을 훤히 드러냈다.
정말 자신이 말한 그대로, 딱 심장 자리에, '왕에게 죽음을!'이라는 문신이 진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테이블에 있던 모두가 잠깐 정적에 빠진 뒤, 당연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악 ㅅㅂ! 내 눈!"
"미친... 내가 남자 가슴 따위를 봐야겠냐!"
"아오, 가슴털 사이에 때 낀 거 봐..."
부오나로티도 자기 눈을 가리고 외쳤다.
"네가 최강이라고 인정할 테니까 제발 옷 좀 입어!" 
베르나도트는 능글맞게 웃으며 윗옷 단추를 채우고 물었다. 
"흐흐... 그럼 부오나로티, 약속대로 '최강 자코뱅'으로 뽑힌 나의 술값은 네가 내는 거지?" 
"그래, 그래, 어휴...." 
"이렇게 지다니, 아깝다..." 
"그래도 저 미친 놈을 어떻게 이기겠어..." 
 
베르나도트를 제외한 모두가 실망한 가운데, 유난히 낙담한 보나파르트를 보며 부오나로티가 말했다. 
"야, 나폴레옹 넌 나에게 얻어 먹으려 들 게 아니라 네가 나한테 사줘야 돼!" 
"응?" 
"네가 지휘한 툴롱 포위전의 승리 소식이 전해진 후에, 오귀스탱 로베스피에르 씨가 형(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에게 네 자랑과 본인 안목 자랑을 했거든. 네가 쓴 <보케르에서의 저녁 식사>도 보여주면서 말이야. 그런데 로베스피에르 씨는 그걸 보시더니, '정말 공화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이런 건 얼마든지 꾸며 쓸 수 있어. 설마 이것 하나만 보고 정치적 후원을 해주기로 결정했던 건 아니겠지?'라고 물으시더라고. 아,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마. 로베스피에르 씨가 혁명전쟁 개시 반대할 때 '불신과 자유의 관계는 질투와 사랑의 관계와 같다'라면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불신이 필요하다고 하신 거 알지? 또 그 때 전쟁은 본성적으로 반혁명이라면서 군대 장교들의 배신을 늘 염려하셨고..." 
"알아, 알아, 쓸데없는 오해 안 할 테니까,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나 빨리 말해줘." 
"아까부터 자꾸 보채긴 ㅋㅋ 아무튼 그러니까 동생 로베스피에르 씨가 말을 못하고 쩔쩔 매더라고 ㅋㅋㅋ 내가 얼른 끼어들어서 말했지." 
"오, 뭐라고 했어?" 
"네가 파리 육군사관학교(École militaire de Paris) 졸업할 때 58명 중 42등이었다곸ㅋㅋㅋㅋ" 
"뭐? 야,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당황한 보나파르트를 보고 부오나로티는 더욱 싱글거리며 말했다.
"얌마, 말은 끝까지 들어. 내가 네 졸업 성적을 말하니까 형 로베스피에르 씨의 표정이 짜게 식더라고 ㅋㅋㅋ 내가 얼른 반전을 말했지. 통상 재적 기간이 4년인데 넌 겨우 11개월만에 전 과정을 수료했고, 네가 프랑스어가 매우 서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랬던 게 오히려 대단한 거라고."
"아, 그래?"
보나파르트는 겨우 안심하며 표정을 풀었다. 부오나로티가 계속 말했다.
"그리고 네가 특히 수학에 뛰어나다는 걸 강조했어. 공안위원회 위원이자 군사 분야를 맡고 있는 카르노(Lazare Carnot, 1754~1823) 씨가 대열을 지어 싸우는 구식 전술을 폐기해야 한다며, 그 대신 결정적인 지점에 군대를 대량 투입하는 공격작전을 내세웠고, 공안위원회 전체가 그걸 채택했잖아.(출처: 브리태니커 카르노 항목)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그런 작전을 쓰려면 나누어져 행군하는 부대들이 동시에 적 부대의 행군로 한 지점에 모이도록 하는 게 매우 중요해지고, 그러려면 각 부대들이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야 하니 수학 능력이 엄청 중요하지!(출처: 굽시니스트 오만잡상툰 '움직이는 일의 어려움')"
"오~ 잘 아네!"
"후후, 이런 '총력전' 체제에서는 군사 문제가 군사 전문가들만의 일이 아니라 나라 전체의 일이니까. 카르노 씨가 '승리의 조직자'이긴 하지만 전체적 군사 계획은 공안위원회 전체에서 논의되었고, 승리를 뒷받침한 대규모의 징집과 징발, 군수 생산의 국유화 등도 혁명정부 전체의 작품이잖아.(출처: 브리태니커 카르노 항목)
그건 그렇고 내가 이런 걸 말하고 동생 로베스피에르 씨를 구해드리기도 했어 ㅋㅋ 내가 그 분 옆구리를 슬쩍 찌르면서 '보나파르트의 낮은 전체 성적에 속지 않고 이런 걸 보시다니, 대단하세요! 그리고 보나파르트의 충실한 공화주의 정신은 친구인 제가 보증해요!'라고 했거든. 동생 로베스피에르 씨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 정도야, 뭐!' 하셨엌ㅋㅋㅋ 그 날 동생 로베스피에르 씨가 밥 사주셨어. 살려줘서 고맙다곸ㅋㅋㅋㅋㅋㅋ"
"하하하;;;"
 
"그러니까 네가 나한테 밥이나 술을 사라고."
"...나 돈 없는데...."
울상이 된 보나파르트를 대신해 다른 장교가 끼어들어 말했다.
"나폴레옹 얘, 남의 밥 사주기는커녕 자기 밥값부터 갚아야 돼 ㅋㅋㅋㅋ"
"무슨 일인데?"
"보케르에서 툴롱으로 가는 길에 식당에서 주변 손님들에게 밥값을 자기가 내겠다고 하고 자기가 세운 전략을 자랑했거든. 근데 손님들은 별 호응 없이 밥만 먹고 갔대 ㅋㅋㅋ 그리고 나폴레옹에게 남겨진 건 60프랑의 식대뿐이었지 ㅋㅋㅋㅋ"
"못 내고 튄 거냐? ㅋㅋㅋㅋㅋㅋ"
신나게 웃는 그 장교와 부오나로티 앞에서 보나파르트는 웅얼대며 변명했다.
"아니....난 그 손님들이 그렇게나 많이 먹을 줄은... 자기 돈 안 낸다고 무지막지 먹어대더라고... 여기 베르나도트처럼."
베르나도트는 숨을 쉬고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속도로 엄청난 양의 술과 안주를 해치우고 있었다.
그 돈을 내야 하는 부오나로티가 안절부절 못하며 말했다.
"야야, 천천히 좀 먹어;;"
"에이, 네가 모처럼 사준다는데 최선을 다해 먹어줘야지!"
"...그래, 많이 먹고 쑥쑥 자라렴."
 
부오나로티는 베르나도트에 대해 그렇게 체념한 뒤, 다른 장교들을 돌아보며 활기차게 말했다.
"베르나도트 몫만 내주지만, 너희 모두에게 고마워. 외적에게 맞서 공화국을 지키느라 정말 수고가 많다!"
"뭘, 당연한 거지!"
"공화국을 지키고자 하는 건 내 진심이라고!"
"얻어먹으려고 꾸며낸 게 아니라 진짜 진심이야!"
이 열정적인 자코뱅 하급 장교들을 보며 부오나로티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나 곧 진지하게 굳은 얼굴이 되어 말했다.
"너희가 밖에서 외적과 싸우는 것처럼, 우리는 안에서 싸우고 있다는 것 모두 알고 있지? 외적과의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그리고 '내부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말이야."
"물론, 알고 있어."
먹는 데 열중하던 베르나도트가 심각하게 변해서 대답했다. 다른 장교들도 모두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오나로티는 본격적인 '정치 교육'을 시작했다.
"너희도 알지? '공포정치'를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점점 커지고 있어. 공포는 전제정치의 동력이라면서. 하지만 로베스피에르 씨가 최근(1794년 2월 5일) <정치도덕의 원리에 관한 보고서>에 쓰신대로, 자유의 영웅들의 손에 들린 검이 폭군의 추종자들이 무장하는 검과 닮은 것과 같은 이치야. 어떤 자들은 위대한 정치사상가들의 말을 빌어 혁명정부를 비난하지. 하지만 지난 성탄절...니보즈 5일*에 역시 로베스피에르 씨가 <혁명정부의 원리에 관한 보고서>에서 말씀하신 대로, 혁명정부의 이론은 그 이론을 낳은 혁명만큼이나 새로운 것이기에, 이 혁명을 결코 예견하지 못했던 정치적 저자들의 책 속에서 그 이론을 찾아서는 안 돼.
 
(* 니보즈 5일 : 1793년 12월 25일이 '프랑스 혁명력'으로 2년 니보즈 5일이다. 프랑스 공화력 calendrier républicain français 혹은 프랑스 혁명력 calendrier révolutionnaire français이라고 불린 그 새로운 달력은 자코뱅 정권이 있던 1793년 11월 24일부터 공식 사용돼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어 있던 1806년 1월 1일에 폐지됐다. 1871년 파리 코뮌 때 18일 동안 사용되기도 했다. 프랑스 공화국이 성립한 1792년 9월 22일을 첫날로 삼은 이 새로운 달력은 과거의 유산을 청산하고 이성이 지배하는 새 시대를 연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 같은 독재자의 이름을 따기도 했던 각 달의 이름을 계절의 특징에 따라 지었고, 모든 날에도 자연에서 따온 명칭을 붙였다. 모든 달 수를 30일로 통일시키고 남는 5~6일은 달에 들어가지 않는 축제일로 삼았다. 그리고 원래 7일이던 1주를 10일로 바꾸고 décade라고 불렀다. 이로써 계산의 편의를 도모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바뀐 달력 체계에 혼란스러워 했고, 외국과의 교류에도 지장을 초래했고, 가톨릭적인 그레고리력의 폐지는 가톨릭 교회의 반발도 샀다.)
 
또 어떤 자들은 더 교활하게도 그분이 초안을 쓴 1793년 헌법의 구절들을 가지고 공격하고 있어. 하지만 그들이 헌법의 조항들을 문자 그대로 시행하기를 원하는 건, 처벌받지 않으면서 그 조항들을 침해하기 위해서야. 공화국을 위험 없이 살해하기 위해 공화국의 원칙을 이용하는 거지. 이에 속지 않기 위해 '자유의 적에게는 자유가 없다'라는 생쥐스트 씨의 말을 명심해야 해. 공화국의 자유의 원칙으로 공화국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을 막기 위해, 위기에 처한 혁명정부에는 입헌정부와 다른 원칙이 필요하다는 말이야. 입헌체제 하에서는 공권력 남용에 대항해 개인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거의 충분하고, 그런 논리에서 로베스피에르 씨는 제헌의회에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셨지. 하지만 혁명정부 하에서는 공권력 스스로 자신을 공격하는 모든 당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해."
 
여기까지 말하고 부오나로티는 장교들에게 물었다.
"여기까지 알아듣겠어?"
"으응..."
대답이 시원치 않았다. 부오나로티는 좀 더 쉽게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생각해 봐, 너희가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외적과 싸우고 있어. 그런데 누가 너희에게 '우리는 평화를 사랑해야 합니다! 생명은 소중한 거예요!'라고 말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어?"
"무슨 헛소리야 싶을걸."
"가만히 죽으라는 소리밖에 안 되지."
"맞아! 평화를 사랑해야 하는 것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평소라면 지켜야지. 하지만 우릴 죽이려는 자들이 가득한 전쟁터에서 그걸 지키라는 건 말도 안 되고, 그런 말을 하는 자는 우리가 죽기를 바라는 자일 거야. 국가도 마찬가지야. 헌법이 평화롭게 작동할 수 있는 평상시라면 우리가 1793년 헌법에 표명한 원칙대로 개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며 설득과 합의를 통해 국정을 운영할 수 있어. 하지만 안팎의 적과 싸워야 하는 이런 위급한 전시에는 적들을 가차없이 절멸시켜야 한단 말이야. 이제 알아듣겠지?"
"응. 알 것 같아."
 
약간 안심이 된 부오나로티는 계속 말했다.
"국민공회가 발랑시엔이 항복할 때 거기 파견돼 있었던 브리에(Briez) 의원을 공안위원회 위원으로 삼기로 결정하자(1793년 9월 25일), 로베스피에르 씨가 적이 발랑시엔에 쳐들어 왔을 때 그곳에 있었던 자는 공안위원회의 위원이 될 자격이 없다, 자신이라면 수치스러운 항복보다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 용감한 병사들과 운명을 함께 했을 것이라고 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지.
'나의 제안이 가혹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애국파에게 훨씬 더 가혹한 것은 2년 전부터 10만 명의 사람들이 배신과 유약함으로 학살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장 큰 범죄자들, 적의 칼 앞에 조국을 내어준 사람들을 동정합니다. 나는 오직 그토록 악랄하게 학살당한 관대한 민중의 운명만을 동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부오나로티 너 어떻게 그렇게 그대로 외우냐. 대단하다~"
"역시 덕후는 대단해 ㅋㅋㅋ"
"뭐 임마 ㅋㅋㅋ"
 
잠깐 농담을 나눈 뒤, 부오나로티는 다시 진지해졌다.
"그렇다고 혁명정부가 위험에 놀라서 마구 무기를 휘두르는 미치광이인 건 아니야. 현명한 장군처럼 '공포'라는 무기를 신중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 <혁명정부의 원리에 관한 보고서>는 혁명정부가 허약함과 무모함, 온건주의와 과격함이라는 두 개의 암초 사이를 항해해야 한다고 했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관용파(indulgent)라고 불리는 당통파와 코르들리에 클럽(Club des Cordeliers)을 장악하고 있는 에베르파 말이야. 지나친 폭력으로 혁명이 증오받게 만드는 것도, 필요한 방어를 포기해 혁명의 동력을 꺼지게 하는 것도 피해서, 혁명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찾아야 한다는 거지.
 
하지만 이에 대해 '로베스피에르가 자기 외의 모든 정파를 억압하고 자신의 독재를 확립하려 한다'라는 흑색선전이 나돌고 있어. 그거야말로 가장 간악한 중상모략이야! 혁명정부의 공포는 절대로 로베스피에르 개인의 독재 수단이 아니야. 로베스피에르 씨는 공안위원회에서 다른 11명의 위원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수준의 공식적 권력만을 갖고 계시잖아. 그것이 독재라면 그분이 국정의 중심이 되도록 숭배에 가까운 지지를 보내준 '온 인민'의 독재겠지!
 
그 보고서에서는 과도한 애국적 열정과 온건주의의 침체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주저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어. '애국심은 특히 애국심에 따른 시민적 행위가 초래하는 정치적 결과들을 계산할 수 없는 단순한 사람들의 몫'이라는 구절로, 혁명 처음부터, 아니 그 전부터 늘 지니고 계시던 '상퀼로트와의 결합만이 자유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천명하신 거야. 또 그 뒤에 혁명운동에서 신중하게 그은 정확한 선을 넘어간 사람들을 모두 범죄자로 취급한다면 타고난 자유의 벗들을 나쁜 시민들과 함께 추방하게 될 것이라고도 하셨어.
 
이 말은 에베르파라고 불리는 과격 상퀼로트들을 옹호하는 말이지만 부분적으로 혁명정부 자신에게도 적용해야 할 거야. 그래, 분명 지방의 '반혁명 봉기'를 처벌하러 간 푸셰, 콜로 데르부아, 카리에, 탈리앵, 바라스, 프레롱 등 파견의원*들의 학살이 있었고...어쩌면 공안위원회도 과도함을 저질렀을지도 몰라... 하지만 결코 실수한 적 없는 애국파가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실수를 이유로 자유와 공화국에 대한 사랑 자체, 인민의 적들을 처단하는 인민의 정부 자체를 비난해선 안 돼!
 
(* 파견의원 Représentants du peuple en mission, Commissaires en mission : 국민공회가 지방에 파견하고 전권을 위임한 의원. 혁명정부를 완전히 따르지 않고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던 지방의 행정을 중앙에서 통제하고, 군대 장교들의 반反혁명정부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월권 행위, 봉기자들에 대한 지나친 학살 같은 권한 남용, 파견의원 간의 다툼, 의원들의 개인적 착복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혁명정부가 인민의 정부라는 증거는 또 있어. 이건 너희 군인들 마음에는 안 드는 것이겠지만 말이야... 군대에 파견한 파견의원 말이지. 아까 말했듯 권한 남용이 있는 건 사실인데, 혁명정부가 인민의 정부가 되고 군대가 인민의 군대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제도야. 총사령관이 조국을 배신하고 외국과 연계해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시도한 것이 두 번이나 있었지. 92년에 라파예트가, 이듬해에는 뒤무리에가 말이야. 조국의 인민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또 그런 장군의 음모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어? 물론 많은 귀족 장교들이 망명하거나 숙청되어서 너희 같이 믿음직한 평민 장교들로 상당수 대체되긴 했지만, 공을 세워 새롭게 떠오른 장군이 야심을 키울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인민의 대표가 군대를 감시할 필요가 있는 거야. 민간인 출신 파견의원들의 개입이 좀 부적절한 일이 가끔 있고, 자유를 지키기 위한 불신이 지나쳐서 귀족 출신 장교들을 납득 가지 않게 체포하는 일도 가끔 있지만... 부디 이해해줘. 그럴 거지?"
"응...그럴게."
장교들이 대답했지만 시원찮았다. 그들이 직접 보고 있는 혁명정부의 폐해라서 그럴 것이다. 부오나로티는 그렇게 파악하고 짧게 한숨을 쉰 뒤 말을 이었다.
 
"이런 극도의 위기 상황에서는 강한 정부가 온 나라의 규율을 잡아서 온 국민이 일사분란하게 행동해야 해. 자유는 좋은 것이지만 국가의 각 부분들에 자율성을 허락할 수 없단 말이지. 군대도 예외일 순 없어. 하지만 혁명정부는 이 전쟁을 빨리 끝내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민주공화국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 <정치도덕의 원리에 관한 보고서>에 '우리 안에 민주정의 기초를 닦고 강화하기 위해, 헌법의 평화로운 지배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폭정에 대한 자유의 전쟁을 끝내야만 하고 혁명의 폭풍울 뚫고 나가야만 합니다'라는 구절이 그래서 있는 거지. 국내의 위기를 모면하고 승리를 확보한 뒤 대불동맹에 평화조약을 강요할 수 있는 순간까지라는 한시적이고 수단적인 자유 억압이지, 우리가 개인들의 자유를 무시하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그렇게 인민의 독재가 확실한 승리를 획득한다면 군사 지도자들에게 더 작은 권력만을 남겨줄 것이고, 그러면 로베스피에르 씨가 혁명전쟁 선전포고를 반대하며 염려하신 군사독재는 오지 않을 거야.
 
혁명정부가 정복과 팽창에 대해 경계하고 있는 것도 전쟁이 길어질 수록 자유의 잠정적 억압도 길어지고 군사독재의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야. 나폴레옹, 네가 공화국 군인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이탈리아 원정을 제안했을 때 로베스피에르 씨가 탈취를 당하는 것은 귀족들이어야지 민중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반대하셨댔지? 너 그에 대해 불평해서는 안 돼!"
"안 해. 걱정 마."
"그래야지! 착하다, 우리 나폴레옹 ㅋㅋ"
"....;;"
 
"또 캉봉(Pierre-Joseph Cambon, 1756~1820) 씨가 정복지를 정기적으로 착취하고 새로운 시장으로 삼고자 하니까 로베스피에르 씨가 공화국을 공고히 하고 영토를 라인 강까지만 확장하는 것으로 족하다며 반대했대. 이것 때문에 엄청 싸웠...아, 아니야. 어...그래, 로베스피에르 씨가 '단일하고 보편적인 공화국에 대한 시의 적절치 못한 설교자보다 더 연방주의의 사도와 비슷한 자도 없다'라고 하신 것도, 지롱드파가 혁명전쟁을 시작하며 내세운 명분이기도 한 '혁명의 수출'은 외국의 인민들이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이 시점에서는 불가능하고 조국을 위태롭게 만들 뿐이라는 맥락이지.
 
아무튼 이런 것은 혁명정부가 전쟁을 지휘하고 있지만 정복하여 다른 나라의 민중을 착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승리하여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임을 증명하지. 그러니까 결론은, 혁명정부는 폭군에 대항하는 자유의 전제이고, 인민을 대리하는 정부에 의한 인민의 독재라고!"
 
 
"지X하네. 인민의 독재? 로베스피에르의 독재겠지!"
별안간 뒤에서 들린 낯선 목소리가 부오나로티의 장광설을 끊었다. 그 테이블에 앉은 모두가 놀라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봤다.
얼굴이 새빨개지고 눈빛이 흐리멍텅하게 풀리고 술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초라한 상퀼로트 복장의 30대 초반 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성미 급한 장교 한 명이 발끈했다.
"방금 뭐라고 했지?"
"로베스피에르의 독재라고 했다! 왜?"
"뭐야, 이 놈이!"
 
분위기가 험악해질 찰나, 역시 상퀼로트 복장을 입고 있고 조금 더 나이 들고 더 진중해 보이는 남자가 달려왔다.
"여기 있었구나! 너 많이 취했어. 얼른 가자."
"오, 우리 '그라쿠스*'!"
그는 나중에 달려온 남자를 반기며 목을 끌어안기만 할 뿐 끌려가지 않았다.
나중에 온 남자는 그를 끌고 가려고 애쓰면서도 어색하게 웃으며 부오나로티 일행에게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많이 취해서... 원래 안 이러는데 왜 이러는지... 하하."
'그라쿠스'라고 불린 이의 노력이 오히려 술 취한 남자를 자극했다.
"'그라쿠스'가 왜 사과를 해! 거짓 호민관 로베스피에르와 다른 우리의 진짜 호민관**이 말이야!"
"뭣이 어쩌고 어째! 이 놈이 끝까지 혁명정부를 모욕해?"
발끈했던 장교가 '그라쿠스'의 사과에 가라앉았다가 다시 화를 냈다.
 
(* 그라쿠스 Gracchus : 고대 로마 공화국 시대의 인물인 형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와 동생 가이우스 그라쿠스를 일컫는다.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으로 많은 로마 자영농들이 자주 자신의 농지를 버리고 종군하는 바람에 농사를 망치고 파산했고, 그런 농지와 정복으로 얻은 새로운 토지들을 매입한 귀족 및 부유층은 대농장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라쿠스 형제는 차례로 호민관이 되어 이런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 국유지 소유의 상한선을 정하고 무산자들에게 농지를 나누어주는 '농지법'을 추진했으나, 원로원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차례로 살해당했다.) 
(** 호민관 tribunus : 호민관에는 군단의 하위부대인 코호르스cohors의 지휘관인 군사 호민관 tribunus militum도 있으나 여기서는 평민 호민관 tribunus plebis을 의미한다. 평민들이 모이는 입법기구인 민회에서 선출되어 평민 계급을 대표하며 평민만이 선출될 수 있었다. 로마 평민들의 권력이 커지면서 평민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요구해 생긴 직책이다. 한 번의 선거에 10명이 선출되었고, 신체에 대한 신성불가침권을 가지며, 민회를 통해 법률을 제정할 수 있고, 귀족들의 입법부인 원로원의 결의에 거부권을 가지는 등 상당히 강력한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호민관 임기가 끝난 후 원로원 의석을 얻었기에 그라쿠스 형제 전까지는 원로원과 대립해가며 이런 권한들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일이 없었다. 그라쿠스 형제 이후 형성된 민중파들은 호민관의 권한을 사용하여 원로원과 대결하는 일이 잦았다.)
 
'그라쿠스'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체념한 듯 말했다.
"...이 친구가 하는 말은 모두 제가 주입한 생각입니다."
"응! 그라쿠스는 내 스승이지! 똑똑하고 애국적인...흐아암...."
술 취한 남자는 너무 취해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지 쾌활하게 말하고는, 그라쿠스에게 매달린 그대로 늘어져 잠이 들었다.
그라쿠스는 잠든 남자를 받치면서 발로 빈 의자 하나를 겨우 끌어와 그를 의자 위에 걸쳐 놓았다. 그는 의자 위에 늘어져 앉아 세상 모르고 잠에 빠졌다.
그라쿠스는 다시 결의를 다지고 굳은 얼굴로 말했다.
"모두 제가 주입한 생각이고 이 친구는 죄가 없습니다. 그러니 처벌해야겠다면 저만 처벌해 주십시오."
화를 냈던 장교까지 포함해 부오나로티 일행은 모두 침묵하고 말았다.
 
부오나로티가 침울해진 채 말했다.
"아니요, 이 일에 대해 고발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라쿠스는 그 말을 믿지 못하고 표정을 풀지 않고 있었다. 부오나로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라쿠스'가 본명입니까?"
"아닙니다. 제 본명은 프랑수아 노엘 바뵈프(François-Noël Babeuf, 1760~1797)입니다. 그라쿠스라는 건 최초로 귀족들에게 맞서 평민들에게 부를 분배하고자 한 그라쿠스 형제를 존경해, 그들처럼 민중의 보호자로 일하고 싶어서 자칭하고 벗들이 불러주는 이름입니다."
부오나로티는 잠시 침묵에 빠졌다가 다시 말했다.
"혁명정부가 왜 인민의 독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바뵈프는 이미 각오가 되어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혁명정부가 인민을 대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뭘 보고 그렇게 생각합니까?"
"정말 당신은 혁명정부의 정책이 상퀼로트의 열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우선 당신이 인민의 독재라고 한 공포정치는 자코뱅 당신들이 우리에게 준 것이 아니라, 우리 상퀼로트가 요구했고 혁명정부는 자신들의 권력을 보장해주는 선에서 최소한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당신은 공포정치가 너무 잔인하게 보일 수 있는 점을 염려하지만, 우리 상퀼로트가 염려하는 것은 그 반대 지점입니다. 혁명정부가 정말로 인민의 적과 싸우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인가, 그저 자기 권력을 위해 상퀼로트의 무력을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바뵈프는 반혁명에 대한 투쟁과 공포정치를 더 강화해서라도 상퀼로트의 권익을 그대로 반영하려 하는 '과격파'의 입장이었다. 그는 계속 자신의 논리를 이어갔다.
"우리 상퀼로트는 93년 5월 31일과 6월 2일에 봉기하여 국민공회에서 지롱드파를 몰아내고 산악파에게 권력을 맡겼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요구 중 그 어느 것도 산악파는 즉각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지롱드파 인사들을 체포할 것, 봉기에 항의해 상소한 모든 인사들을 국민공회에서 제명할 것, 혐의자를 체포하고 파리에 생활필수품을 확보케 할 책임을 지는 유급의 혁명군을 창설할 것, 양곡의 최고가격제를 실시하고 모든 생활필수품의 공정가격제를 도입할 것, 군대와 행정을 특히 귀족들의 파면을 통해 쇄신할 것. 하지만 산악파 국민공회는 혁명군을 조직하지 않았고, 공채의 강제 발행에 대한 토의도 중지했고, 감금되어 있거나 탈주한 지롱드파 의원에 대해서도 너무 물렀습니다. 산악파가 이 당연하고도 공공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즉각 실시하지 않은 것은 자신들을 그 자리에 올려준 상퀼로트에 대한 배신이었습니다!"
부오나로티는 처음으로 반박했다.
"혁명정부는 상퀼로트에게 만족을 주고자 진정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그런 조치들을 한꺼번에 실행했다가는 혼란이 닥칠 수도 있고 이렇게 위험에 빠진 공화국에는 조금의 혼란도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혁명정부는 반대 의견을 자극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신중하고자 했던 것뿐입니다."
 
바뵈프는 지지 않고 다시 응수했다.
"결국 자신들의 정치 권력을 안정시키기 위해 반혁명적인 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거란 말이군요. 그럴 거라면 상퀼로트의 봉기를 호소하지 말았어야죠! 상퀼로트의 기수를 자처하지 말았어야죠! 푀양파*와 지롱드파에 이어 이제 산악파도 민중을 배신하겠다는 말입니까?"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화국을 안정시키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그 배신자들과 다릅니다! 지금의 혁명정부만큼 민중의 요구를 많이 수용한 정부가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에서도 유례가 있었습니까? 혁명정부는 생활필수품을 쌓아두고 팔지 않는 매점자를 처벌하고, 지구(섹시옹sention)마다 공공의 곡물 창고를 설치해 곡물 공급을 안정시키고, 최고가격제를 모든 물품에 대해 전국적으로 실시하고, 국민총동원령(1793년 8월 23일, 한국어 해석)으로 인민을 조직해 외국 침략군에 맞서고, 반혁명 혐의자를 규정하는 혐의자법을 제정해 혁명재판소를 활성화시켰고, 군 지휘부를 숙청해 군대를 인민에게 복종시키고 군대에 혁명 정신을 불어 넣고 있습니다. 정책 하나하나를 얘기하자면 하루종일 예를 들어줄 수 있을 정도입니다."
 
(* 푀양파 Feuillant : 자코뱅 클럽이 국왕의 탈주 사건과 샹 드 마르스 광장 사건 이후 특히 로베스피에르의 영향을 받아 민중적으로 변함에 따라, 그들로부터 이탈되어 푀양 클럽에 자리잡은 분파. 라파예트파와 바르나브, 뒤포르, 라메트가 주도하는 삼두파Trimvirat가 통합한 것으로, 입헌군주제와 1791년 헌법을 지지했고 상층 부르주아지와 그들에게 동조하는 귀족 계급의 지지를 받았다. 1792년 8월 10일 봉기 무렵 전까지 국정을 주도했다.)
 
"그건 우리 상퀼로트가 유례없이 강력하기 때문이겠죠! 당신들은 상퀼로트의 압력에 마지못해 굴복했던 것이지, 결코 상퀼로트를 먼저 위해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증명하는 예도 하루종일 들 수 있습니다! 이미 말했듯 산악파는 혁명정부와 공포정치를 조직하는 데 미적거렸습니다. 그리고 공포정치를 조직한 뒤에는 민중운동을 당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에서 제한시키는 데 공포정치를 사용했습니다. 로베스피에르는 순수하게 인민을 대변해 온 앙라제의 자크 루와 바를레(Jean-François Varlet, 1764~1837) 등을 외국 첩자에 반혁명 분자라는 말도 안 되는 중상을 가하며 체포했고, 결국 자크 루는 절망에 빠져 얼마 전(1794년 1월 20일) 감옥 안에서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또 비(非)기독교화 운동에 대한 탄압은 어땠습니까! 비기독교화 운동은 지극히 정당했습니다. 선서 거부 성직자*들이 왕당파 및 귀족들과 함께하고 방데 반란을 선동하는 반혁명의 선봉인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1792년) 8월 10일 봉기와 루이 카페(루이 16세)의 처형에는 입헌파 성직자들까지 반발하고 있잖습니까. 이런 가톨릭교의 위협에 맞서서 민중이 자신의 이성을 믿기로 한 것이 잘못이란 말입니까? 더군다나 가톨릭 성직자들은 앙시앵 레짐의 제1신분으로서 오랫동안 민중을 착취해오지 않았습니까. 인민에게는 예배를 포기할 권리와, 가톨릭의 광신의 도구인 예배용 귀중품과 교회 종 등을 공화국 방위를 위해 징발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로베스피에르는 프리메르 1일(1793년 11월 21일)에 '예배의 자유'를 말하며 비기독교화 운동의 주도자들을 외국의 첩자로 몰았고, '미사를 방해하고자 하는 자들도 미사를 올리는 자들만큼이나 광신적'이라는 궤변을 늘어 놓았습니다."
 
(* 선서 거부 성직자 : '성직자 민사 기본법 Constitution civile du clergé'에 따른 선서를 거부한 성직자. 이에 동의한 성직자들은 선서파 또는 입헌파 성직자라고 불렸다. 성직자 민사 기본법은 약 150개였던 교구의 수를 데파르망 수에 맞추어 83개로 개편하고, 주교와 사제를 일반 공무원처럼 선거 위원회에서 선출하도록 한 것이었다. 이 종교헌장은 모든 성직자에게 헌장 준수 서약의 의무를 규정하였으나, 많은 성직자들이 서약을 거부하고 혁명정부의 반대진영이 되었으며, 프랑스 가톨릭교계는 선서거부파와 선서파로 분열되었다. 로마 교회에 대해 프랑스 교회의 독립과 자유를 지키려는 갈리카니즘 gallicanisme은 주교의 임명권 등 중요 권리를 프랑스 국왕이 보유하는 것을 정당화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제헌의회 의원들이 세속적 국가 권력이 교회를 개혁하는 것을 주장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로베스피에르 씨와 혁명정부도 가톨릭교에 호의적인 건 아닙니다. 바로 그 자코뱅 클럽 연설에서 '국민공회는 평화롭게 예배를 집전하는 성직자들에 대한 박해를 허용하고 있지 않'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의 직책을 이용해 시민들을 기만하고 공화국에 대한 나쁜 의견이나 왕권주의를 고취하려는 모든 성직자들을 철저히 징벌할 것'이라고 했잖습니까. 하지만 비기독교화 운동은 위험합니다. 스위스와 미국 같은 몇 안 되는 중립국들까지 반(反) 프랑스 진영으로 몰아넣을 수 있고, 가톨릭교에 대한 탄압에 자극받아 일어난 방데 반란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민들도 가톨릭 전통에 집착하고 있지 않습니까."
 
"진정 책임 있는 혁명 지도자들이라면 그런 무지한 인민을 계몽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야 했습니다. 상퀼로트 운동을 제한하며 공안위원회의 권력을 키워왔으면서 인민을 끌어들이다니 비겁하군요. 그건 그렇고 제가 분노하는 것은 비기독교화 운동 탄압 자체보다 그것을 통한 상퀼로트 운동의 탄압입니다. 앙라제에 이어 그들의 상퀼로트적 강령을 이어받은 산악파 내의 에베르파까지 비난하고 탄압하고 있잖습니까. 데물랭(Camille Desmoulins, 1760~1794)의 신문 <비외 코르들리에(Vieux Cordelier, Old Cordelier라는 뜻)>가 2호까지 과격파를 비판하는 것에 동조하며 '관용파'의 힘이 커지는 것을 방치했다가, <비외 코르들리에> 제3호가 과격파를 넘어서 혁명정부를 비난하기 시작하자 그제야 부랴부랴 관용파의 공세를 막기 시작했죠.
 
로베스피에르가 <혁명정부의 원리에 관한 보고서>에서 과격파와 온건파의 중간에 서겠다 하면서도 과격파의 편을 더 들었지만, 그건 말뿐이었습니다! 93년 9월 9일에 벌써 각 구(섹시옹sention)마다 민중이 모여 의사를 결정하던 구 총회를 상설화하지 못하게 하고 주 2회만 열 수 있게 해, 민주주의의 장을 탄압했습니다. 최고가격제를 실시하고 감독해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책임지는 식량위원회를 브리메르 6일(93년 10월 27일)에 설치했으면서, 군대를 위한 징발에만 권한을 사용하고 민간의 소비자에게는 무심했습니다. 군수품과 밀가루만이 최고가격제를 지키고 있고 다른 모든 물품들이 최고가격을 어기고 있는데, 공안위원회는 상인들에게 아첨하느라 지방당국이 징발하는 것을 금지했잖습니까! 최고가격제는 이토록 실패해 민중이 물가 상승과 물품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사업가들의 눈치를 보느라 도입한 최고임금제만이 엄격하게 적용되어 가난한 임금생활자들을 조여오고 있습니다!
 
상퀼로트는 혁명을 위해 온몸을 바쳐 싸웠건만 그 대가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불만을 혁명정부는 참으로 교활하게 가라앉혔지요. 열정적인 상퀼로트 투사들을 각 구 혁명위원회의 간부로 삼아, 자신들에게 순응하는 공무원으로 길들였지 않습니까. 그 여우 같은 유인책에 넘어오지 않는 상퀼로트는 사자처럼 힘으로 누르고 말입니다. 이렇게 인민의 자발성을 거세하고도 감히 인민의 독재를 자처합니까? 단일 불가분의 인민만이 주권자이고 정부는 인민을 그대로 대리할 뿐 인민을 억누를 권리가 없습니다! 지금의 혁명정부는 인민의 대리인이 아니라 소수 로베스피에르파와 그들에게 충성하는 관료들만의 관료주의적 독재일 뿐입니다!"
 
점점 언성을 높이는 바뵈프에게 맞서, 부오나로티도 이제 흥분해서 응수했다.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민주주의'는 무엇입니까! 상퀼로트들이 원하는 대로 국민공회 의원들에 대한 직접적 감독, 합법적 권한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인민의 소환권, 함성이나 갈채로써 투표하는 방법, 이런 것입니까? 합법적 기구와 절차를 무시하고 그렇게 '직접민주주의'를 하겠다고요?"
"그렇습니다! 우리 인민은 그런 형식에 갇히지 않는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요구합니다! 우리 인민은 합법성을 내세워 자신을 제한하는 권력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그런 게 아닙니다! 민주 정부는 인민을 맹종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방금 쓴 표현대로 '무지한 인민을 계몽'하며 인민이 바른 길로 가도록 이끌고 질서를 잡는 정부입니다. 앙라제와 에베르파가 대변하는 상퀼로트의 강령은 사유재산제를 유지하되 모든 인민이 일정 정도의 농토나 하나의 상점이나 하나의 작업장만 가져야 한다며 사유재산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이잖습니까. 그런 모순된 요구는 실현될 수 없으며 공화국을 위태롭게 할 뿐입니다. 더군다나 직접민주주의라니요? 안팎에서 혁명의 적들이 공화국을 노리고 있는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 그런 '무정부주의'적 혼란으로 가자는 말입니까?"
 
"하, '무정부주의'라! 혁명 초부터 우파가 좌파를 비난하는 데 써온 말이잖습니까. 로베스피에르도 92년 10월에는 '정치체의 불치병은 무정부주의가 아니라 독재이다. 그리고 독재는 민중을 무정부주의로 고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폭동과 약탈이라는 관념을 민중과 빈곤이라는 관념과 결부시키는 이 변함없는 성향을 보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자가 혁명 초기에는 민중적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변절했다는 걸 당신이 분명하게 보여주는군요!"
로베스피에르의 말이 로베스피에르를 비판하는 데 사용되자 부오나로티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리고는 멍하니 물었다.
"꽤 오래 전에 한 말인데 그대로 기억하고 있습니까?"
 
바뵈프의 얼굴이 갑자기 슬픈 빛을 띠며 일그러졌다.
"...네, 저는 혁명 초기에 로베스피에르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저는 그가 정말 현명하면서도 성심을 다해 인민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혁명가인 줄 알았습니다. 국왕이 외국으로 도망치려다 바렌느로 탈주한 뒤 국왕 폐위를 요구하는 민중집회를 샹 드 마르스(Champs de Mars, 마르스 광장)에서 열기로 했을 때(1791년 7월 17일에 열림) 그는 반대하고 합법적 재판만을 주장했지만, 그것도 인민을 합법성의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막고자 하는 신중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푀양파가 빠져나간 자코뱅 클럽을 거의 혼자 재건하는 것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하고 그를 존경했습니다. 로베스피에르가 브리소의 비난에 대해 자신을 옹호하며 '나는 민중의 아첨꾼도, 중재자도, 웅변적 옹호자도, 보호자도 아닙니다. 나 자신이 바로 민중입니다.'라고 했을 때(1792년 4월 25일), 저는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만 민중을 대변하는 사람이라고 믿고 감동했습니다.
 
하지만 권력을 잡자 그도 변했습니다! 부패하지 않는 자? 돈을 받아챙기지는 않았을 뿐 그는 부패했습니다! 더 이상 하층 인민을 대리하지 않고 부르주아지와 상인들의 눈치를 보며 그 사이에서 권력을 보존하려 들고, 공익을 내세워 혁명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선에서 제한하려 들고 있습니다. 지롱드파도 삼두파도 한 때는 '좌파'로서 혁명을 고무했지만, 권력이 손에 들어오자 그걸 지키기 위해 민중을 자기 손 안에 제한시키려다가 민중의 손에 몰락했습니다. 산악파도 지금처럼 계속 민중을 배신한다면 곧 그 뒤를 따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입니다!"
 
부오나로티는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더 격렬하게 대응했다.
"아닙니다! 우리 자코뱅은 그들과 다릅니다! 우리는 혁명 제일 처음부터 항상 민중과 불가분하게 결합해 행동해 왔습니다! 그런 자코뱅까지 사라진다면 누가 혁명을 이끈단 말입니까!"
바뵈프도 격렬하게 맞섰다.
"하하하, 바로 그것입니다! 자코뱅까지 사라지고 나면 그 때야말로 민중이 위로부터 도와주고 억압하는 술책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혁명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왜 민중이 항상 누군가에게 이끌어져야 한다는 겁니까!"
"자코뱅은 민중을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던 '온건' 혁명파와는 다릅니다! 로베스피에르 시민도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바렌느 탈주 사건 후나 지금이나 인민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막으려는 것 뿐입니다. 로베스피에르 시민은 혁명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인민과 평등의 벗입니다. 저는 그분을 혁명 처음부터 존경해 왔고, 지금 그분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변함없는 그분이라는 걸 확신합니다."
"그 자가 이토록 인민의 가장 충실한 대변인들을 비난하고 탄압하고 있는데도 말입니까? 당신이 제게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당신도 그 자에게 속고 있는 것이겠지요!"
"뭐요!"
부오나로티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눈을 부릅뜨고 앞으로 한 발 다가섰다. 바뵈프는 물러서지 않고 역시 눈을 부릅뜬 채 부오나로티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싸움이 일어날 것 같아 부오나로티와 함께 있던 장교들은 움찔했다.
 
그러나 부오나로티는 더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바뵈프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부오나로티가 먼저 표정을 풀고 눈을 내리깔았다. 바뵈프는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다.
부오나로티는 진정하고 다시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은 프랑스와 혁명이 안팎으로 지극히 위태롭습니다. 프랑스는 단결해 빠르게 위기를 물리쳐야 하고, 그러려면 강한 권력을 지닌 중심과 규율이 필요합니다. '인민에 의한 정치'와 '인민을 위한 정치'가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때로는 자유의 나라를 살리기 위해 일시적으로 자유를 억압해야 할 때도 있는 겁니다."
"계속 안팎의 전쟁을 핑계로 삼는군요. 그렇게 인민과 떨어져 나가는 것이 결국 로베스피에르의 숨통을 조를 것입니다."
"흥, 당신이야말로 로베스피에르 님이 프랑스를 구하는 걸 보며 상퀼로트에게 가장 충실하다는 자들이 사실 틀렸단 걸 알게 될 겁니다!"
"훗, 두고 봅시다."
 
바뵈프는 계속 잠들어 있는 친구를 부축해 술집을 나갔고, 부오나로티는 장교들이 앉은 테이블로 돌아갔다.
보나파르트가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아?"
"응? 뭐가? 딱히 내가 이기지 못하고 논쟁이 끝나긴 했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승리가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머잖아 자코뱅 공화국이 승리하고 나면 내가 옳은 게 증명되는 거야! 아, 왜들 그리 심각해? 마시자, 마셔!"
부오나로티는 쾌활하고 확신에 찬 말투로 대꾸했다.
테이블은 다시 떠들썩하게 즐거운 분위기가 되어 술자리가 이어졌다. 부오나로티는 평소보다 더 많이 마시고 더 유쾌하게 떠들었다.
 
 
한참 술자리가 계속되던 중 부오나로티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한 장교가 말했다.
"취했어? 어쩐지 오늘 좀 달리더니 ㅋㅋㅋ"
"뭐? 이 정도론 끄떡 없거든! 잠깐 바람 좀 쐬다 온다~"
보나파르트는 복잡한 표정으로 부오나로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다른 장교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부오나로티와 몇 년을 알아온 그가 보기에는 과장되게 유쾌함을 가장하여 속마음을 숨기는 것 같았다.
보나파르트는 한동안 초조해 하다가 슬그머니 술집 밖으로 나갔다.
 
보나파르트는 술집 근처를 돌아보다가 근처 좁은 골목으로 걸어갔다.
참으려고 애쓰면서도 못내 새어나오는 남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분명 부오나로티의 뒷모습이었다. 잔뜩 웅크리고 쪼그려 앉아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필리프!"
보나파르트는 놀라서 달려갔다.
 
"나폴레옹..."
부오나로티는 여전히 웅크린 채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자기 옆으로 달려와 쪼그려 앉은 보나파르트를 올려다 보았다.
"왜 그래, 필리프! 넌 항상 확신이 있었잖아. 왜 그런 말에 속상해 하는 건데! 그냥 고발할까? 바뵈프라고 했지?"
"아니, 아니야, 그러지 마... 바뵈프 한 사람이 문제가 아니야. 그런 생각은 이미 널리, 깊이 퍼져 있어..."
"...상관 마. 네 말대로 곧 자코뱅 공화국이 승리할 테고, 그럼 그런 중상들은 싹 사라지고 모두들 자코뱅을 찬양할 거야."
"중상...... 아니야, 바뵈프의 말이 맞아. 우리 자코뱅은 점점 인민에게서 멀어지고 있어..."
"응?"
"미안해, 나폴레옹. 사실 나 확신 없어... 지금의 프랑스는...솔직히 폭력과 무질서가 만연해. 우리가 바랐던 바가 아니야."
"일시적 혼란이고 잠정적 폭력일 뿐이라며. 곧 우리가 원한 세상이 올 거야."
"그럴까? ...사실 자신 없어. 너무 힘들고 위태로워. 우리는 왜 이렇게 위기에 처해 원래의 이상을 접어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야 권력을 잡았지?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참으로 어떤 군주가 세상에서 영관을 얻고자 한다면 그는 부패한 도시를 갖기를 소망해야 한다. 하지만 카이사르처럼 전적으로 파멸에 빠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로물루스처럼 개혁하기 위해서 말이다.'라고 했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
 
"자코뱅은 늘 인민과 함께 하고 인민을 대변했어. 지롱드파는 살롱에서 저들끼리 어울렸지만, 우리는 자코뱅 클럽과 민중클럽들에서, 온 인민의 눈 앞에서 논의하고 그들에게 호소했어. 그런데 이제 인민이 우리를 욕해. 우리가 자신들을 대변하지 못한대. 하지만, 누가 인민이지? 바뵈프가 말하는 급진 상퀼로트들? 그럼 지방에서 반혁명 반란을 일으키고 선서 거부파 성직자들을 여전히 존경하는 가난한 농민들은? 산악파를 지지하고 있지만 통제경제는 마뜩잖아 하는 부르주아지는? 상퀼로트 중에서도 작업장이나 상점 소유주들은 최고임금제를 반기고 그들에게 고용된 임금노동자들은 불만스러워 하는데? 절대 동시에 들어줄 수 없고 서로 타협할 생각도 않는 이 요구들 사이에서 우리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지!"
보나파르트는 뭐라 해 줄 말이 없었다.
 
"있지, 나폴레옹, 나 어젯밤 꿈을 꿨어. 나랑 로베스피에르 씨랑 나란히 앉아 있었어."
"그랬어?"
"사형수 호송 수레 위에."
보나파르트는 놀라 눈만 휘둥그레 뜨고 말을 잃었다.
"누더기 옷을 입은 상퀼로트들이 환호하며 춤을 추었어. '폭군이 죽는다, 공화국 만세' 하면서. 로베스피에르 씨는 이상하게 얼굴 아래 절반을 천으로 감싸 가리고 있어서 표정을 알 수 없었어. 나는 너무 슬프면서도 억울하면서도...공화국이 망했다는 생각에 미안하고...온갖 감정이 휘몰아쳐서 숨이 막혔어."
"......"
 
보나파르트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부오나로티가 보나파르트의 어깨를 잡고 매달리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나폴레옹, 어떡하지? 너무...너무 외로워!"
"......"
"코르시카에서 같이 피신 다닐 때, 내가 가족과 의절한 건 더 큰 인류, 인민과 형제가 되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잖아. 가족들에게 비난받을 때도 괜찮았어. 온갖 비열한 무리들에게 비난받을 때도 괜찮았어. 인민과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다 좋았어. 그런데 인민에게서도 떨어져 나오고, 심지어 누가 인민인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속해 있다고 느끼고 내 모든 걸 바쳐온 이들에게서 떨어지는 건 정말 사무치게 외로운 일이야!
로베스피에르 씨가 혁명 전에 쓴 시를 봤어. '올바른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죽음의 순간에 자신의 삶을 바친 사람들의 증오를 깨닫게 되는 것'이래. 아니, 내가 뒤져본 건 아니야. 그냥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거든. 왜 그걸 보고 계셨던 걸까..."
 
보나파르트는 자신에게 매달린 부오나로티의 등에 손을 올려 마주 안아주었다. 가슴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부오나로티는 보나파르트의 어깨를 더 꼭 잡았다. 부오나로티는 더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리며 절규했다.
"정말 그렇게 되면...모든 오류와 죄악은 자코뱅에게만 씌워지고, 자코뱅은 두고두고 혁명을 협박하는 낙인이 될 거야! 너무 두려워! 너무 외로워...!"
부오나로티는 한참이나 그렇게 보나파르트에게 안겨 울었다.
 
 
~~~~~~~~~~~
 
제가 뭘 잃어버렸는데 찾는 것 도와주시겠어요? '재미'라고 하는 건데요...
죄송합니다. 원래 없었죸ㅋㅋㅋㅋㅋ
 
부오나로티가 보나파르트의 <보케르에서의 저녁 식사>에 대해 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내세우는 데 급급해서 예술성이라곤 전혀 없어. 게다가 정치적 메시지도 비판적으로 깊이 파고들어서 정당성을 입증하는 게 아니라, 얄팍한 논리로 정당성을 그저 주장하고 상대는 너무 쉽게 납득하는 걸.'이라는 말은 셀프 비판 겸 자백입니다 ㅋㅋㅋ 저는 이 시기의 다양한 정치적 의견들의 대립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부오나로티나 바뵈프의 말이 정말 그 사람의 의견이라기보다는 그 부류의 전형적 담론을 대변하는 편입니다. 제가 전형적 담론을 잘 표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실존 인물의 의견을 그대로 쓰면서도 다양한 대립상을 드러내려면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는 대하소설이 나와야 할 것 같아서 적당히...ㅋㅋㅋ
 
바뵈프는 소설 본문 속에 썼다시피 반혁명에 대한 투쟁과 공포정치를 더 강화해서라도 상퀼로트의 권익을 그대로 반영하려 하는 '과격파'의 입장을 대변합니다. 부오나로티는 상퀼로트 수준에는 못 미치는 급진성을 지닌 일반적인 자코뱅주의, 즉 공포정치로의 양보를 최소화 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로베스피에르의 정책을 최대한 정당화한다면 할 법한 말을 했고요. 부오나로티 말대로 로베스피에르가 팽창주의를 경계하고 공포정치를 잠정적 수단으로만 생각했는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습니다. 공포정치의 실행을 미적거린 것을 보면 일반적인 자코뱅들은 공포정치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고 공포정치의 필요성을 제공한 전쟁도 내키지 않아 했을 것 같고, 로베스피에르도 군대의 힘이 커지는 걸 지극히 경계하긴 했는데요... 아무튼 등장인물들이 제 생각을 대신하는 건 아닙니다 ㅎㅎ
 
실제 <보케르에서의 저녁 식사>가 어떤지는 모르겠네요. 그 글이 오귀스탱 로베스피에르의 눈에 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과 식당에서 돈을 안 내고 튀었다는 것을 nasica 님의 블로그 글에서 봤는데, 그 글에서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후 <보케르에서의 저녁 식사>를 최후의 한 부까지 불태웠다고 하네요. 그 내용이 대강 어떤 주장을 담고 있는지는 찾았는데 원문 전체가 전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사실 그 글이 이 소설에서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 대충 넘어갔습니다 ㅋㅋ
 
베르나도트의 가슴 문신;;은, 엔하위키의 해당인물 항목에 베르나도트가 죽은 후에 몸을 검시해보니 "왕에게 죽음을!" 이라는 문신이 있었다는 야사가 나오더라고요. 그게 재미있어서 활용해 봤어요. 그러려고 베르나도트를 등장시켰고요. 문신이 어디 있었는지는 안 찾아 봤습니다 ㅋ 어차피 야사라 진위도 모르니까 대충...ㅋㅋ 보나파르트는 나중에 총재정부 시기 군사원정에서 베르나도트를 만났으니 사실 이 때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어요. 베르나도트가 부오나로티를 알았는지, 이 실존인물 셋이 이 때 파리에 있었는지는 안 알아봤고요^^;;
 
부오나로티와 바뵈프의 설전은 알베르 소불(소부울)의 <프랑스 대혁명사>(원제 La Révolution française, 1962년)에서 대폭 인용했습니다. 거의 짜깁기에 가까울 정도로요 ㅎ 이 책 정말 좋아요! 프랑스 대혁명의 정통주의 해석의 정통이랄까요. 오래된 책이고 많이 반박되었지만, 후의 많은 역사가들이 찬성하든 비판하든 짚어야 했던 문제들 및 해석의 틀을 제시했죠. 책 자체만 보아도 프랑스 대혁명 10년과 그 배경을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보여주고요. 프랑스 대혁명을 공부하고 싶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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