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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735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픈형★
추천 : 13
조회수 : 2914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4/10/14 23:04:50
처음 사람이 죽었다는 신고 전화를 받았을 때에는 솔직히 설마하는 느낌이었다.
그다지 잘 와닿지 않는 마음이었다.
뉴스나 신문 혹은 그 외의 매체에서 자살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기는 했으나 실제로 그 현장에 가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직접 찾아가 겪어본 자살의 현장은 막연한 나의 상상보다는 크게 잔인하거나 놀라울 것이 없었다.
그저 다른 누군가가 살았던 평범한 집이었다.
자살자의 집은 도시의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짓 조용한 변두리의 단독 주택이었다.
도심은 아니지만 근처에 역도 가깝고 적당한 편의시설은 모두 갖취진 주변환경이 깨끗해서 살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그 집 안도 역시 굉장히 깔끔했다.
보기 좋다 못해 조금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로 숨막히게 딱 맞춰 정돈된 느낌이었다.
바닥은 거의 광이 날 정도로 잘 닦여 있었고 전체적으로 먼지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잘 청소되어 있었다.
자살자는 욕실에서 발견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30대 초반 쯤으로 보였다.
잘 정돈된 올백머리에 30대 남성의 피부라기에는 지나치게 좋은 잡티 하나 없는 피부, 남자답게 오똑하게 솟은 콧대, 잠을 자듯 살며시 감은 눈, 전체적으로 아주 잘 생긴 미남형의 남자였다.
그는 자신의 손목을 긋고 물을 가득 채운 욕조에 팔을 담근 채 죽었다.
물과 피가 섞인 액체로 가득 찬 욕조는 붉은 색의 잉크를 풀어 넣은 듯 진하지 않은 색조로 잔잔히 찰랑거리고 있었고 자살자는 온 몸에 피가 다 빠져서인지 아주 창백한 모습으로 죽어있었다.
그러나 그 시체가 혐오스럽거나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핏기 없는 안색은 그의 전체적인 인상과 결합되어 젠틀하면서도 아주 깔끔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자살자는 자신의 집이 잘 정돈된 만큼이나 깔끔하고 잘 정돈된 상태로 죽어있었고 자살이라기 보다는 편안한 자연사로 생각될 정도로 그의 시체는지나치게 깨끗하고 평온해 보였다.
시체를 회수하고 나서 나는 현장의 증거를 찾았다.
자살에 쓰인 칼 이외에 다른 특별한 도구는 보이지 않았다.
신고자인 자살자의 여자친구는 요 근래에 들어 연락이 잘 되지 않아서 집으로 직접 찾아왔다가 현장을 발견했다고 진술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자살자는 근 2주 정도를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서는 그녀도 딱히 아는 것이 없어 보였다.
이것 저것 찾아보다 내가 발견한 것은 가죽으로 된 표지를 가진 두꺼운 일기장이었다.
나는 일기장을 펴고 앞장부터 빠르게 넘기며 대충 확인했다.
일기장에는 사소한 사건부터 자살자의 옛 고민 등 여러가지가 적혀 있었다.
한참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넘기자 내 눈이 번쩍 뜨일 쓸만한 이야기들이 쓰여있었다.
*****
2014년 7월 27일
오늘은 아주 재수가 없었다.
출근하는 도중 구걸하는 노숙인에게 바지 자락을 잡혔다.
그 노숙자는 도대체 언제 씻었는지 새까만 손으로 염치도 없이 내 양복 바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짜증이 솟아서 걷어 차고 싶었지만 더 달라붙을까 싶어 얼른 돈을 꺼내자 그놈은 씨익 웃으며 손을 놓았다.
계속 바지가 신경쓰여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더러운 쓰레기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
2014년 8월 1일
지난주에 그 더러운 노숙자를 다시 보았다.
여전히 더러운 몰골이었다.
그놈은 나를 알아보았는지 실실 웃으며 다가왔고 나는 못본척 빨리 자리를 옮기려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잡혔다.
이번에도 역시 바지의 끝자락이었다.
오늘은 화가 나서 그대로 그 면상을 차버렸다.
그놈은 코피를 쏟으며 뒤로 넘어갔고 나는 그 틈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저번과 달리 쓰레기를 치웠다는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
2014년 8월 6일
지하철 안에서 구걸하는 장애인을 보았다.
일을 할 생각도 안하고 편하게 동정심에 빌붙어 돈을 쉽게 얻으려는 쓰레기이다.
그는 자신이 더 불쌍해 보이려는 듯 제대로 씻지도 않았다.
장애인은 객실을 돌며 승객들의 무릎 위에 코팅된 종이를 놓아놓고는 다시 순서대로 회수했다.
대부분 승객들은 무시했으나 몇 사람은 그 쓰레기의 더러운 손에 돈을 쥐어 주었다.
참 비위도 좋은 사람들 같았다.
나는 따로 돈을 주지 않았다. 그 더러운 손이 무릎에 닿았을 때 무척이나 기분이 나빠서 동정심보다 분노가 더 크게 느껴졌으나 사람들이 많아서 참았다.
언젠가 날을 잡고 쓰레기들은 치워야 할 것 같다.
*****
2014 8월 12일
아침에 출근해서 회사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웬 거지가 몰래 들어와 씻고 있었다.
그 몸에서 나온 검은 구정물을 보자 속이 메스꺼웠다.
청소부와 관리인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지만 그들은 크게 신경쓰지도 않고 나중에 치우겠다는 소리만 했다.
역시 스스로 청소를 해야 할 것 같다.
점점 주변에 보이는 쓰레기들을 참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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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15일
첫번째 쓰레기를 치웠다.
역 앞에서 채이던 쓰레기였다.
쓰레기는 역시 쓰레기통이 어울리는 법이다.
주변에서 거슬리던 단 하나의 쓰레기를 치웠을 뿐인데 무척이나 상쾌하고 공기가 맑아진 기분이었다.
역시 사람은 주위 환경이 깨끗해야 한다.
앞으로 주말에는 꼭 청소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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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4일
지난주에 치운 쓰레기와 어제 치운 쓰레기의 양이 조금 많아서 쓰레기통이 가득 차버렸다.
특히나 지난주의 쓰레기들은 부패가 진행되어 역겨운 냄새를 풍겼다.
아무래도 처리 방법에 있어서 변화를 주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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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7일
쓰레기들을 모두 묻었다.
집 앞에 마당은 그다지 큰 편이 아니지만 쓰레기들을 묻을 정도는 되었다.
쓰레기들을 묻고 나서는 그동안 냄새가 베어버린 쓰레기통을 다시 정리했다.
냄새는 아직 그대로지만 곧 없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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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30일
조금 방심했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도중 쓰레기가 깨어나서 덤벼들었다.
다행히 재빨리 진압해서 처리했지만 팔뚝을 잡혀버렸고 얼굴에 피가 튀었다.
너무 불쾌하고 찝찝해서 살가죽이 벗겨질 정도로 강하게 문질렀다.
그럼에도 아직 찝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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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일
팔뚝과 얼굴에 알 수 없는 기포가 생겼다.
아마도 전에 쓰레기를 처리던 중에 쓰레기와 접촉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날 분명 살가죽이 벗겨질 정도로 씻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것은 그만큼 쓰레기가 더러웠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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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4일
얼굴과 팔뚝에서 시작된 기포가 점점 번지고 있다.
팔에서 시작된 기포는 오른쪽 팔 전부를 덮었고 얼굴에서 내려온 기포는 목을 넘어 가슴까지 번졌다.
그리고 너무나 가렵다.
하지만 더욱 악화될 것 같아서 긁을 수가 없다.
내일은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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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5일
피부과에 다녀왔다.
의사는 나를 정신병자 취급했다.
그는 내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며 건강한 피부를 가졌다고 칭찬하며 거울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거울속에는 온 몸이 기포로 뒤덮혀 피부가 파충류의 가죽 같은 못난 사람만 비춰지고 있었다.
역정을 내며 화를 내는 나에게 의사는 정신과 진료를 조심스럽게 추천했다.
돌팔이 같은 새끼가...
혹시 내가 정말 미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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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2일
입맛도 없고 아무런 의욕이 없다.
곪아버린 피부에서는 누런 진액이 흘러나온다.
내 온 몸은 고름과 기분나쁘게 끈적거리는 액체로 범벅이 되었다.
거울을 볼 때면 자괴감이 들어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
씻어도 씻어도 이 더러운 고름과 피부병은 나아질 생각을 않는다.
오히려 더 역겨운 진액을 뿜어대며 몸을 더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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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4일
쓰레기는 더럽다.
쓰레기는 그 자리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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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7일
마지막으로 목욕을 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나에게 정신병이 있기를 기도한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보는 내 모습을 볼 수 없기를 바란다.
이제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쓰레기를 치울 것이다.
*****
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일기의 내용대로 자살자의 집 앞마당에서는 실종되었던 노숙자들로 보이는 훼손된 시신 몇 구가 발견되었고 회수 되었다.
결국 사건은 노숙자를 연쇄 살인한 30대 남성이 죄책감에 우울증을 겪다가 자살한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지만 나에게는 작은 의문이 남게 되었다.
대체 자살자는 자신의 모습을 어떤 모습으로 보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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