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가 이봉창의사와 윤봉길의사가 사형당한 해이므로 이색히도 항일운동이 뭔지는 알고 있었을거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쪽바리의 군인이 되고 싶어한 창용이는
쪽바리에게 추천을 구걸해 일본 헌병부대 군속으로 들어가게 됨
요때부터 요색히가 쪽바리들 밑에서 일하며 헌병이 되기 위해 손이 발이 되도록 뛰어다님
25살때 드디어 관동군 소속 헌병 보조원이 되고맘
참고로 헌병보조원은 이완용이가 쪽바리에게 건의해 만들어진 제도로
일본 헌병보다 조선인에게 더 무서운 존재였음
헌병보조원으로 창용이가 한 일을 들어보면
1. 3.1운동 저지 2. 만주에서 독립군을 색출 고문
만주에 독립운동가들은 거의가 김창용이를 알만큼 악질이었음
심지어 중국인 독립운동가들도 창용이를 싫어했음
하지만 그렇게 천년만년 갈거 같던 쪽바리가 전쟁에서 패함.
창용이는 조땜
해방 후 고향으로 온 김창용은 45년 11월에 만주에서 같이 있던 친일파 김윤원에게 반민족행위자로 고발당함
창용이는 여기서 사형 판결을 받지만 함흥으로 이동하던 중 탈출.
이후 소련군에 다시 붙잡혔으나 소련 장교를 죽이고 또 탈출.
더이상 북쪽에 못 있을거 같다고 판단한 창용이는
친일파의 파라다이스인 남한으로 잽싸게 튐
남한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창용이를 구해준건 다름아닌 만주군 소속이었던 박기병.
박기병의 추천으로 원용덕이가 소개장을 써 줘서 김창용이 한국군이 됨(ㅆㅂ)
하지만 반민족행위 특별법 상 창용이는 군인이 될 수 없는 인물이었음(일제에 헌병으로 근무했기때문에)
서른한살의 나이에 육사 3기로 입교
김창용은 군인으로 있으면서 총을 든 적이 없고
오로지 고문도구와 채찍만으로 군생활을 했음
창용이는 여순반란사건, 4.3사건등 빨갱이 잡는데 앞장서서 대활약을 함
특히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군 출신 군인들을 잡아 족치는데 대단한 공헌을 세움
오동규, 최능진, 송우성장군을 북괴와 내통했다하여 잡아들여 사형시키고(모두 독립운동가)
서울 수복 후 부역자를 처단한다 하여 민간인을 학살했으며
사형수들을 동원하여 빨치산으로 조작하여모두 사살
금정산에 공비가 있다하여 국군을 죽인 후 조작
부산 조병창 화재 사건 조작
동해안 반란 사건 조작
등등... 실제 빨갱이를 잡아 들인것 보다는
독립운동을 했거나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아군들을 잡아 족치는데 공헌을 세움
가장 대표적인 예는
김재호, 이범윤, 김동운, 나재학, 민영수, 김병호 등 9명(모두 독립운동가)이 월북한 조소앙의 지령을 받아서 이승만 암살을 기도했다 조작하여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한 사건임
하지만 이렇게 잘나가던 창용이는 결국
허태영대령(일본군 출신)이 보낸 신초식, 송용고, 이유해에게 저격당함
허태영 대령의 변 :
김창용이는 자신의 상관을 모독하고 자신의 영달을 꾀했고 수없이 많은 사건을 조작해서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켰고 고위장성들의 비행을 조사해서 군을 이간시키고 단결을 저해했으며 군 통수계통을 문란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암살했다. (창용이가 얼마나 많은 사건을 조작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